모든 지역이 지방소멸, 인구감소를 우려하는 시대에도 문화적으로 부상하는 도시들이 있다. 제주, 강릉, 경주, 전주 등 비수도권 도시들은 독보적인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방식을 찾고 있다. 반드시 관광도시만 부상하는 것은 아니다. '비수도권 인구 1위 도시' 청주는 '소리 없이 강한 도시'의 대표적 사례다. 화려한 관광도시와 달리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지만, 청주의 로컬 경제와 도시 재생 현장을 둘러보면 '조용한 부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청주의 부상은 개별 도시의 성장을 넘어 광역 경제권의 맥락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청주는 '大대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메가시티권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주-세종-공주-대전으로 이어지는 대전광역권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작동하며 한국 제2의 메가시티를 형성하는 가운데, 청주는 독자적 정체성과 경제적 활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청주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정체성의 성공적 진화에 있다. 도청소재지, 교육도시, 전통문화도시라는 역사적 기반에서 출발한 청주는 다양한 문화적 실험을 통해 현대문화도시, 골목도시, 일상도시, 디저트도시로 자연스럽게 변모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전통적 정체성의 현대적 재해석과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강한 로컬 정체성을 바탕으로, 청주는 '大대전' 메가시티 내에서 독자적인 문화경제 축을 담당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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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는 오랫동안 교육도시로 인식되어 왔다. 더불어 주목할 점은 춘천과 함께 도청사와 시청이 원도심에 남아 있는 유일한 도청소재지라는 독특한 특성이다. 이러한 교육과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청주 원도심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오송생명과학단지, 오창과학산업단지 등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에도 불구하고 원도심이 쇠퇴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교육·행정 기능의 존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청주의 문화적 정체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기록문화의 전통은 오늘날 청주의 도시 브랜딩의 근간이 되고 있다. 영운동의 복합문화공간 '터무니'가 동네기록관으로 선정된 사례처럼, 청주는 기록문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을 실현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토대 위에서 청주의 골목상권은 '조용하고 단아하게' 성장하는 독특한 발전 방식을 보여준다. 과시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기반을 갖춘 성장이 청주 로컬 경제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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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옛 연초제조창을 재건축해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청주의 문화적 위상을 한층 높인 대표적 사례다. 국내 최초의 개방형 수장고 미술관으로, 과천, 덕수궁, 서울에 이어 네 번째 국립현대미술관이자 수도권 외 지방에서는 첫 번째로 설립되었다. 1946년부터 2004년까지 청주 경제를 견인했던 대표 산업시설이 14년간 방치된 후 문화재생을 통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청주의 산업유산을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한 상징적 사례다. 프랑스의 옛 기차역이 오르세미술관으로, 영국의 화력발전소가 테이트모던으로 변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청주의 담배공장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변모하며 도시의 새로운 문화 명소가 되었다.
동시에 청주는 '大대전' 메가시티권 내에서 독자적 문화 도시로서의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대전광역권 내에서 청주는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광역 생활권 내 인구 이동과 경제적 교류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청주가 이러한 대도시권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골목상권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주요 고을이었던 역사적 배경을 가진 청주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경제적, 문화적 활력을 유지해 왔다. 성안길, 소나무길, 향리단길(대성로), 수암골, 중문, 운리단길 등 다양한 골목상권은 원도심 경제의 중추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골목상권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청주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장소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60년 역사의 학천탕을 개조한 카페 '목간'과 같은 사례는 근현대 건축물의 지속가능한 재생 방식을 보여주는 청주만의 접근법이다.
청주가 '디저트의 도시'로 불릴 만큼 로컬 카페와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주 시민들의 일상적 취향과 생활 방식이 지역 경제와 만나 만들어낸 결과다. 도청, 향교, 성공회성당, 중앙공원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집중된 원도심에 위치한 카페들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청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중앙모밀의 메밀우동처럼 지역 특색을 담은 음식 문화는 청주만의 독특한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각 골목마다 고유한 콘셉트와 분위기를 갖춘 카페들은 청주 로컬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수암골의 루프탑 카페들은 청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시민들의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을 더하는 동시에 골목상권의 경제적 활력을 이끌고 있다.
청주 발전의 핵심 과제
청주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서청주 테크노폴리스 3차 확장과 같은 신도시 개발로 인한 원도심 위축 가능성이다. 또한 SK 하이닉스의 LNG 발전소 건설 등 환경 이슈도 지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그러나 청주는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선도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전국 최초로 지방자치단체 재산을 국가에 무상 양여해 활용한 중앙-지자체 협업 모델로, 단순한 문화시설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를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다.
원도심과 신도시 간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원도심만의 강력한 앵커 시설과 프로그램 확충이 필수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를 시작으로, 청주의 정체성인 기록문화와 연계된 앵커 시설을 추가로 조성하는 것은 원도심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청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원도심에 로컬 콘텐츠 타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주와 충북 지역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활발한 활동은 이 지역의 창의적 잠재력을 보여준다. 특히 로컬 크리에이팅을 교육과 연계하는 혁신적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대학생 로컬 크리에이터 교육 교재 개발과 함께, 충주 지역 고등학교에서 '로컬 크리에이팅'을 정식 과목으로 채택한 것은 전국적으로도 선도적인 사례다. 이러한 교육적 기반 위에 원도심에 로컬 콘텐츠의 창작, 생산, 유통이 집적된 타운을 조성한다면, 청주만의 독특한 도시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한 부상의 지속가능성
청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지만, 충청도답게 소리 없이 할 일을 다하는 도시다. 역사와 현대, 전통과 혁신, 원도심과 신도시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청주의 '조용한 부상'은 지방 도시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개관 한 달 만에 약 3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으며, 산업유산의 문화적 재생을 통한 도시 정체성 강화의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청주의 경험은 도시의 경쟁력이 화려한 랜드마크나 대규모 개발보다 시민의 일상과 연결된 로컬 경제와 문화의 힘,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산업유산을 존중하는 재생 방식에서 나올 수 있음을 증명한다. '大대전' 메가시티 속에서도 청주는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광역 생활권의 핵심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 청주의 미래는 이러한 '조용한 부상'의 지혜를 계승하는 데 있으며, 도시의 규모나 개발 속도보다 삶의 질과 지역 정체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청주의 발전 방식은 앞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청주시는 2014년 인구 80만 명을 넘어선 후 단 한 번의 인구 감소도 없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역 소멸 위험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2020년 지역소멸 주의 단계에 진입한 이후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 2022년 3분기 현재 지방소멸지수가 0.86까지 하락했다. 지방소멸지수는 해당 지역 65세 이상 노인 인구 대비 20-39세 여성 인구 비율로, 1.0 미만일 경우 소멸 위험 단계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