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변하고 있다
내 나이 어느새 불혹, 생애 첫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그동안 몸이 좀 무거워지면 의식적으로 식사량을 줄인 적은 있어도 기간을 정해놓고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본 적은 없었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는 몸무게 앞자리 수가 바뀔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인바디 검사에 복부 비만이라는불쾌한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네가 뺄 살이 어디 있어!"하고 황당해하는데, 가려지는 부분만 살이 찌기에 보이는 모습은 날씬한 편이라 그렇다. 실제로 체중, 체지방, 근육량 모두 표준 범위에 있긴 하다. 욕망의 항아리는 철저하게 나만 아는 걸로.
아토피 신약을 먹고부터로살이 찐 걸로추정된다. 꽤 오랜 세월 아토피로 고생했고,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게 늘 조심스러웠다. 재작년 말쯤, 아토피 신약(린버크)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고가임에도삶의 질을 위해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거짓말처럼 정상적인피부를 되찾았다. 기다렸다는 듯신나는일탈을 시작했다. 매운 떡볶이, 기름진 치킨, 빵과 케이크, 주말마다축제처럼 즐겼다. 그래도 피부는 잘 버텨주었다(신약 개발자분 노벨상 받으십시오). 덕분에 내 인품만큼 넉넉한 뱃살을 얻었다.녀석은주 3회 요가와 헬스가우습다는 듯꿈쩍도 안 했다.
점점 입을 옷이 사라졌다. 트레이닝복만 입게 됐다. 바지 후크가 잠기지 않는 것이다. 숨을 한껏 들이마신 뒤 지퍼를 억지로 끌어올린 후 후크를 잽싸게 채우면 뱃살들이 역류하여 벨트라인 위로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남편에게 보여줬는데 끔찍한 표정으로 나보다 더 괴로워했다. "으악, 그만해! 바지가 너무 불쌍해!"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다. 3월부터 함께 다이어트할 동지들을 모아 그룹채팅방을 만들었다. 혼자서는 의지가 약해질 것을 알기에 팀을 꾸린 것이다. 우리 넷은 비장한 각오로 30일 다이어트 카운트를 시작했다.
요즘 SNS와 유튜브에 자주 뜨는 건강 키워드 두 가지는 '저속 노화'와 '스위치온 다이어트'다. 각각 정희원 교수와 박용우 박사가 제시하는 건강법이다. 우선 통곡물과 콩을 꺼리고 포화지방을 즐겨 먹는 나와 '저속 노화' 식단은맞지 않았다. 단순 취향이 아니라 음식 철학의 문제다. 나에게통곡물과 콩이 몸에 해롭다고 믿고 있다(설명하자면 길다). 또 포화지방이 적당히 섞인 적색육이 몸에 해롭지 않고 도리어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 또한 나름 근거가 있다). 한편, '스위치온 다이어트'는 합성 감미료가 들어있는 단백질음료를 매일 챙겨 먹어야 한다는 점이 찝찝하긴 했지만, 딱 한 달만 할 테니까 이 점은 무시하기로 했다.
스위치온 다이어트의 창시자, 박용우박사는 누구인가. 바야흐로 10여 년 전쯤, 내가 방송작가로 일할 때 '천기누설'이라는 건강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전문의로 자주 출연하셨다. 실제로 일반인 다이어트 참가자를 모집해 8주(?)동안다이어트에 참가시켜 비포&애프터 실험을 진행한 적도 있다. 아마 그때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한참 개발하고 계시던 중이던 것 같다. 그때 많은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체지방 감량 효과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도 또 다른 증인이다. 3년 전쯤 회사에서 사내 직원 대상으로 스위치온 다이어트 참가자를 모집해 참여했는데 10kg 넘게 뺐고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나도 열심히만 하면효과를 보게 되리라.
스위치온 다이어트의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침은 단백질셰이크를 먹는다. 점심은 저탄수-고단백으로 식사한다. 간식으로 단백질셰이크를 먹는다. 저녁은 무탄수-고단백 식사를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14시간 공복을 유지한다. 매일 땀이 날 정도로 1시간 이상 운동한다.30일 프로그램인데 주차마다 조금씩 식단이 다르고 중간중간 24시간 단식이 끼어있다. 나는 이러한 식단이 무지 힘들 줄 알았다.단단히 각오했고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웬 걸, 아니었다. 하루 종일 배가 부르다.
14시간 공복을 지켜야 하니 먹을 수 있는 시간은 10시간, 그 안에 네 끼를 챙겨 먹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한 끼는 사워도우빵을 먹었고 한 끼는 고기나 생선을 구워 먹거나 귀찮을 때는 라면을 때웠다.물론 주말에는 위에서 말한 대로 방탕한 식사를즐겼지만말이다. 아무튼 매일 두 끼를 먹다가 네 끼를 먹으니,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말 그대로 주부들이 말하는 '돌밥'이다. 뭐 좀 하려고 하면또먹을 시간이다. 배고픔을 느낄 틈이 없다.
매일 아침 땀을 흠뻑 흘리면서요가나 달리기를 하니 초저녁부터 눈꺼풀이 무겁다. 야식은 원래 잘 먹지도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고 금세 잠이 들었다.
요리도 간단하다. 샤부샤부용 저민 고기, 버섯,두부,알배추, 청경채, 숙주 등이 주재료다. 찜통에 넣어 익힌 후 초간장소스에 찍어먹는다. 닭가슴살이나 소고기,새우도 구워 먹는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서 40% 할인하는 자숙문어가 있길래 사 와서 얇게 슬라이스해먹었다. 달걀을 먹으면 식비를 아낄 수 있는데 아쉽게도 나는 달걀에지연성 알레르기가 있어 소화를 잘 못한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고 배부른 게진정 다이어트란 말인가. 영양 가득한 자연재료를 매일 먹고 있다. 반찬이 필요한 한식에 비해 설거지 나올 것도별로 없다.
단점은 식비가 꽤 든다는 점. 집에서 해 먹는데도식재료에 따라한 끼에 5천 원~ 1만 원꼴은드는 것 같다. 라면이나 빵으로 때울 때와는 확실히 무게가 다르다. 하지만 '건강'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나로서는 다른 걸 줄여서라도 자연식재료를 먹기로 했다. 그 좋아하는 뮤지컬도꾹 참고 있다.
체중 2kg이 빠졌다. 아직 인바디 검사는 해보지 않아 체지방과 근육 중 무엇이 빠진 지는 알 수 없다. 근육이 빠진 것 같지는 않다. 거울을 봤는데 마침내복근이 존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3년 전만 해도 나에게는 복근이 존재했었다. 녀석이 영원히 도망간 줄 알았는데 뱃살 속에서 꺼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던 것이다.
어제 요가를 마치고 나오는데, 함께 수련하신 분이 조심스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몸매가달라지셨어요, 혹시 다이어트하세요?" 겨우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알아보시다니! 달라붙는 탑 아래로 나의 하찮은 복근을 발견하신 걸까.
운동이야,주 3회 하던 것을 매일로 바꾼 것이라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참고로나는20대 때부터 운동을 쉰 적이 없다. 그런것에 비하면 참 근육이 없는 편이긴 하다. 단백질을 충분히 챙겨먹지 않은 대가다. 다른 멤버들도현재2~3kg 감량 효과를 봤다. 2주 차인데 기대 이상이다.
그동안 배가 안 고픈데도습관적으로 주전부리를 먹었다. 입이 심심해서 새우깡이나 생라면 같은 것을 빠드득빠드득씹어먹고는 했다. 두 끼를 제대로 챙겨 먹고, 단백질셰이크를 중간중간 보충하니희한하게도 과자나 빵 생각이 전혀 안 난다. 24시간 단식을 한 날에는 기운이 좀 없기는 했지만 허기지지않았다.
더 놀라운 점은 먹방 영상을 봐도 아무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SNS를 하다 보면 종종 짜장라면에 파김치를 올려먹는다거나,엽떡에 치킨을 한 상 차려놓고 흥겹게 먹는 숏츠가 뜰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혀밑 옹달샘에서침이 솟으면서 애가 닳았다. 지금은 그런 영상이 떠도무감각하다. 맛있어 보이지않는다. 애초에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서 그런 것인지, 충분한 영양소가몸에 공급돼서 인지 잘 모르겠다.
아직은 섣부른 짧은 기간이지만 긍정적인 신호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30일 다이어트가 끝나면 보건소에 가서 인바디를 해보려고 한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