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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11. 2025

네 남자의 카지노 게임

<완만한 비탈길에서 등반이 카지노 게임되었다. 실뱅과 장 크리스토프가 자일로 몸을 묶었고, 다니엘과 나는 후미에서 따라갔다. 우리는 깊은 어둠 속을 나아가는 반딧불이었다. 랜턴 불빛이 비추는 범위는 몇 미터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가야할 거리를 측정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른 등반대들의 행렬이 신비로운 순례자들의 행렬처럼 반짝거렸고, 나는 등산이라는 행위의 영적 차원을 실감했다. 우리는 스포츠적 성취만을 위해 몽블랑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산 정상을 정복하는 행위 자체를 위해, 뭔가를 기원하기 위해, 육체적 단련을 위해서도 그곳에 오른다.


등산이라면 변변히 해본 적도 없고, 당연히 취미로도 꿈꿔보지 않았던 한 남자가 덜컥, 몽블랑 암벽등반에 나서는 이야기다. 평소 등산을 동경해 왔던 것도 아닌 그는 오히려 이혼을 앞두고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다. 매일 약물과 술에 의존하는 나날이다. 그랬던 그가 얼결에 몽블랑에 가겠다고 약속한 이후 체력을 기르고, 약물을 끊어보려고도 노력하기 카지노 게임한다.

제목처럼 네 남자가 몽블랑에 오르는 과정의 묘사가 제법 세밀하고 아름답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가 등산이라는 분야에선 문외한이면서도 ‘몽블랑’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도전하게 된 카지노 게임과 그 과정이 좋았다. 등산이라면 생초보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감하기도 했다. 오래전,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물론, 저자와 달리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여러 해 전 지리산 종주에 나선적이 있다. 여러 해, 라고 쓰고 나서 가늠해 보니 그저 ‘여러 해’는 아니다. 이미 십 년이 넘었는데, 살다 보니 어느새 십 년은 엊그제 같기도 하고, 엊그제는 십 년 같기도 하니 대체 삶의 시계추는 일정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 맞는 걸까.

지금은 더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등산은커녕 동네 뒷산도 오르지 않던 사람이었다. 수원 사람이라면 안 가봤을 리가 없는 광교산조차 올라보지 않았다. 그러니 등산화도 없었고, 오히려 등산을 극혐하는 축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헉헉대고 산에 오르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데 불현듯 갑자기, ‘지리산 종주’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 생각하고도 결국 카지노 게임조차 못 하는 일이 있고, 생각 따위는 나중에 한다는 마음으로 덤벼서 우선 카지노 게임하고 보는 일도 있다. 어떤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매번 같은 에너지와 준비 과정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나에게 지리산 종주는 후자였다.

며칠 동안 지리산 종주 코스를 들여다보고, 준비물을 챙겼으며, 성삼재에서 카지노 게임해 세석대피소에서 하루 묵고 나머지 구간을 완주한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구례까지 가는 기차와 세석대피소의 숙박 예약도 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와 달리 광교산쯤은 가본 친구 하나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밤 기차를 타고 도착한 구례역에선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야 했는데, 마침 종주에 나선 두 명과 얼결에 합승을 했다. 지리산 종주를 꿈도 꾸지 않았던 몇 해 전에 혼자 차를 몰고 성삼재휴게소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 창밖에 펼쳐지던 푸르름을 상상하며 참아보려했지만 택시안에서 이미 멀미로 진이 다 빠지기 카지노 게임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성삼재휴게소에 내렸을 땐 다리가 다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이래 가지고 종주를 카지노 게임이나 하겠어, 라며 친구와 웃었다.


‘네 남자의 카지노 게임’에선 어둠 속에서 랜턴을 켜고 산을 오르는 행렬을 ‘반딧불’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표현을 오래 생각했다. 해도 뜨기 전의 그 새벽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우리 앞뒤로 ‘반딧불’들이 산을 오르던 그 풍경을 여전히 기억해서였다.

결과적으로 그날의 지리산 종주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카지노 게임부터 돌계단의 공포였고, 어느 고개에선 제대로 엎어져서 정강이가 푹 패였는데 피가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후에 정형외과에서 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아 한동안 병원엘 다녀야만 했다.

친구와 나는 예약한 세석대피소까지 가지 못하고 벽소령대피소에 들었다. 죽었다 깨나도 예약해 놓은 세석까지 갈 수 없다는 내 말에 대피소 직원이 웃었다. 그럼 어떻게든 주무시게 해드려야지요, 하면서.

미완으로 남은 그날의 종주를 생각하면 벽소령까지의 지난한 등산의 감흥은 거의 없다. 오히려 벽소령대피소의 풍경과 땀 냄새 가득하던 대피소의 밤, 그리고 종주를 멈추고 돌 비탈을 내려와 길고 고요한 임도를 따라 마을을 향해 걷던 아침이 떠오른다.

친구와는 이듬해, 종주 코스의 반대 끝인 중산리부터 천왕봉까지 또다시 걸었다. 그리고 그 이후, 벽소령부터 장터목 구간은 미완으로 남겨둔 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산을 타본 적도 거의 없던 저자가. 등산화를 빌려주며 이끄는 친구를 따라 몽블랑을 등정하는 이야기를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도 비워놓은 지리산 종주 길을 마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사람의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함께 지리산 종주 길을 걸었던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한지는 여러 해가 되었다. 삶은 때로 무겁고, 버거우니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친구와 나는 지금 지리산 종주 길의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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