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갑자기 "지금 상무님한테 가면 사람 많으려나"와 같은 퀴즈를 내기도 하고, "오늘 날씨 춥다던데 생각보다 따듯하네, 지구온난화인가"처럼충청도 시골 바닥에서 범 지구적인 걱정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본사 얘네는 공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 메일을 보내고 있어"라며 그의 현장 경험을 뻗대기도 하고, 오늘 점심엔 가방을 뒤지면서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라며 영양가 없는 말도 읊조렸다.
처음엔 그의 혼잣말이 어려웠다. 내가 대꾸해야 하나 싶었다. 살면서 저 정도로 혼잣말이 많은 사람은 처음 보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사무실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이미 모든 동료는 그의 혼잣말에 만성이 돼있어서 그냥 흑색소음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나도 적막에 동참했다. 사무실 안에서 말 한마디라도 아끼고 싶었고.
나는그의 혼잣말이 적응되지 않았다. 팀장이 괴짜스럽고, 불편했고, 조용했으면 좋겠다.
그러던 여느 목요일 3시, 나는 팀장이왜 혼잣말을 하는지 깨닫게 됐다.
회사 일이 널널한 날이었다. 사무실은 다들 미팅으로 자리를 비웠다.나는 졸음을 쫓고 근무시간을 죽이고 싶었다. 단톡을 열었다. 그리고여러 화제를 던졌다. 다음번 우리 약속 모임을 언제로 잡을지, 그때는 지난번에 못 쓴 회비를 쓸지, 저번 모임은 구월동이었으니까 이번은 부평에서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종류의 말을.
그런데 일은나만없었나 보다.답이 늦었다. 평소였다면 시끌벅적 알람이 쌓여갔겠지만 그날은 조용했다. 나는 더 관심을 끌고 싶어서더 실없는 말과 미끼를 던졌다. 몇 명이 간간히 답장을 줬지만 그 정도 관심은부족했다. 한참 씩씩대다가다른 방으로 옮겨가 떠들던 중 팝업 창 위로 알람이 왔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너 왜 이렇게 혼잣말이 많아"
어..?
그거 내가 늘 우리 팀장님한테 궁금하던 거였는데?
그때 깨달았다. 혼잣말은 자립하고, 독립적으로 결정지어질 수 없다는 걸. 누군가말을 했는데 대답이 따라오면 그때부턴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니다. 대화의 물꼬다. 그런데대답이 없으면 그것은 그제야 혼잣말이 된다. 그러니까 혼잣말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가 아니라, 태어난 뒤에 누굴 만나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운명이 결정된다. 무슨 시의 한 구절 같다.
"내가 그것을 대답해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혼잣말에 지나치지 않았다"와 같은.
아아.. 위대한 개츠비 선생께선 남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까지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했던가. 역시 역지사지가 되어야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혼잣말이어떻게 결정되는가를 깨달았다고 하여 팀장이 귀여워 보이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혼잣말의 작동 원리는 작동 원리고, 대화하기 싫은 상대는 여전히 대화하기 싫다.
그래도 10번 중 1번 정도는 체력이 허락한다면 그의 혼잣말을 대화로 바꿔줘야겠다. "지구 온난화"얘기 꺼내면 "에이 팀장님 너무 가셨다"정도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