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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Mom)의 시절
기러기(Mom)의 시절
기러기.기러기라는 말이 왜 이토록 쓸쓸하게 들리는지.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 그 많은 철새 중에 왜 기러기일까. 앞으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기러기’ 대신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지 챗지피티에 물어봤다. 늘 똑같이 “정말 좋은 질문이야-” 라며 부엉이, 곰, 고양이, 늑대, 펭귄을 추천한다. 각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 의미가 있으니 ‘기러기’를 대체하기에 설득력이 없어 뵌다. 그럼 쓸쓸한 그대로 기러기엄마, 기러기아빠라 부르기로 하고 챗지피티에게 기러기의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한다. 또 좋은 질문이라며 좋아하는 AI. 말을 예쁘게 하는 특징이 있어서 자꾸 말을 걸게 된다. 여하튼 기러기로 다시.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수천km씩 이동하고, 부부가 평생 짝을 이루며 살고(일부일처제로 유명), 새끼들도 일정 기간 부모와 다니며, 공기 저항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V자 대형으로 난다고 하였다. 게다가 선두 기러기가 지치면 교대해 주고, 짝이 죽거나 다치면 다른 기러기들이 기다리며 함께 머물러주기도 한다고. 세상에 이렇게 매력적인 기러기를 왜 그토록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착했을까. 챗지피티는 신이 나서 스스로 동화도 써보겠다고 한다. 써보라고 했더니 뚝딱 써낸다. 내 창작의 욕구를 한 번에 꺾는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서둘러 대화를 끝냈다.
하여간 이렇게 기러기의 매력을 듣다 보니, 기러기 부모로 산다는 일이 엄청난 사랑과 충성과 상호협력과 전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 기러기 부모들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보호자는 소진,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간 것은 아마 두 번째 학기 부터였던 것 같다. 과제에 치여 허덕이는 것뿐 아니라 캐나다 일상을 무탈하게 보내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낯선 땅에서는 같은 일이라도 더 많은 힘과 가속이 필요하다. 안 들리는 영어에 더 기울여 듣고, 한 번 말할 거 두 번 말하는. 커뮤니티 센터 이용하고, 등록하고, 공과금 내고, 쓰레기봉투 스티커 하나 구매하러 다니는 것조차 전전긍긍하는. 지금은 그런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어느 날은 잠에서 깨 일어나려고 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마치 블랙아웃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어지러워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길 두어 번 반복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시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들을 학교와 집과 클럽에 실어 나르고,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고, 밤새 숙제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학교 안내문을 공부하듯 정독카지노 게임 사이트, 또 밥카지노 게임 사이트 빨래카지노 게임 사이트 청소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루 28시간처럼 살았으니. 둘째 아들이 “엄마 이번 주 힘들었잖아.”라고 담담하게 내 수고를 짚어주고 위로했을 때는 며칠 가슴이 묵직했다. 고통에 이름을 불러주고, 수고에 따뜻한 말을 더하는 일은 치유의 시작이다.
맞다. 정확히 말하면 나 홀로 분투한 건 아니었다. 분명 아이들은 나를 의지하며 나와 함께 했다. 우리는 하나의 배에 타고 밤새 불빛 아래 조업하는 어부들이었다. 아들들은 재활용쓰레기를 분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쓰레기통도 씻고, 함께 장을 보았다. 딸들은 밥을 짓는 법을 배우고, 두부 목욕을 시키고, 각자의 그릇은 각자 설거지를 하였다. 서로의 숙제를 도와주고 친구 관계나 고민에 대해 들어주었다. 우리는 점점 씩씩해졌고, 정말 엄청난 사랑과 충성과 상호협력과 전략적 삶을 살게 되었다. 남편도 태평양 건너에서 쌍대구리 조업방식으로 함께 그물을 내리고 길어 올렸다. 우리에게는 다행히 와이파이와 페이스타임이 있었다. 싸이월드와 편지지와 말린 꽃잎으로 사랑을 전하던 2004년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발전한 기술이 사람의 정서와 생각과 책임까지 헤아리고 대신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이 멀리 있으니 내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 아이들도 아프면 안 된다는 강박, 사고가 나면 큰일 난다는 불안이 더해졌다. 아들들이 처음으로 자기들끼리 버스와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메시 보러 BC스타디움에 갔다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올 때 잠을 못 이루었다. 무사히 조우한 다음 날 아침은 아이들에 대한 통제 욕구와 맞닿아있던 불안을 점점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듣고, 보고, 경험카지노 게임 사이트, 결정카지노 게임 사이트, 행동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었고 성장카지노 게임 사이트 있었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수고하고 생존하며 일상을 살고 공부를 병행하는 기러기맘의 이중의 무게가 유독 무거웠던 봄학기. 기러기아빠도 밥벌이하느라, 가족들 그리워하느라 고생 많았던 겨울과 봄. 이곳에서 적응하기도 힘든데 민주시민으로 나라 걱정하느라 산만했던 1월. 지난한 시절이 지나고 곧 5월이다. 비가 그치고 말간 공기와 볕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거미줄을 비춘다. 두부는 기지개를 켜고 동향의 유기견을 만나 마음의 정도 나눈다. 자기 속도로 가는 기특한 달팽이를 보고 사진도 찍고, 엄마보다 훌쩍 커서 스스로 놀란 아이들과 웃음을 주고받는다. 이런 장면들이 보인다는 것은 여유와 생기가 깃들었다는 증거겠지. 기러기 엄마는 이렇게 시절을 좇아 불안을 재우고, 숨을 돌리며,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열매는 작더라도, 아니 없더라도,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진짜 괜찮다. 지금도 충만하다.
“They are like trees planted along the riverbank, bearing fruit each season. Their leaves never wither, and they prosper in all they do.” _ Psalms 1:3, N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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