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에서 왕가마타 숙소까지 150km를 달리는 동안 절반은 소와 함께였다. 동쪽으로 내달리는 고속도로 양쪽은 들판이나 낮은 언덕이 쭉 이어졌고 들판마다 한 무리의 소떼들이 띄엄띄엄 자유롭게 풀을 뜯었다. 얼룩소나 검은소가 많았고 한국소의 상징인 누렁이처럼 갈색소는 아주 드물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20년 2월에는 남섬인 퀸즈타운에 왔었고 가는 곳마다 한가로이 앉아카지노 게임 양떼를 보았는데 이번에 온 북섬에서는 소떼가 자연의 주인인가보다.
소떼를 바라보다 시선을 멀리 던져도 여전히 언덕과 들판 뿐이다.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고 언덕 너머 더 멀리에는 높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뿌연 안개가 가린 듯 희미하게 보이는 걸로 보아 아주 멀리 있다는 정도만 짐작해본다.
막힘 없는 풍경에 눈도 시원하고 마음도 편해진다. 이제야 비로소 실감한다. 카지노 게임에 다시 왔음을.
코로나가 막 터지기 시작한 2020년 2월 초, 카지노 게임라는 나라에 처음 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래쪽에 자리한 섬이라는 것 외에 별다른 정보 없이 남편을 따라 왔는데, 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카지노 게임에 홀딱 반하게 될 줄은.
퀸즈타운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 앞에 보인 아름다운 풍경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던 기억이 난다. 첫 눈에 반한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아름답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아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는 감동을 견디었다.
퀸즈타운 번화가 끝은 위 사진에서 보듯 호수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나타나서 신기하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휴대폰으로 찍었는데, 사진찍기에 아무 소질이 없는 내가 막 찍었어도 이렇게 잡지 속 사진같은 분위기를 가진 곳이 바로 퀸즈타운이다.
보행자 블럭은 너른 잔디밭과 숲 앞에서 끝나는데, 잔디밭에는 커다란 수건을 깔고 책을 보는 사람, 친구와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 책으로 얼굴을 가린채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등 편안한 현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볼 때면 평화로운 분위기를 위해 연출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실재하는 삶이었다니!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한 우리나라 대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면에 나는 부러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느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떤 분위기를 가진 곳이며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여유는 커녕 쫓기듯 사는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카지노 게임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 것이.
카지노 게임는 우리나라보다 두 배 넓은 땅에 고작 오백 만 명 정도가 산다. 우리나라 인구가 약 오천 만이니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셈이다. 인구밀도가 이렇게 낮으니 굳이 높은 건물을 올릴 필요가 없다. 인구 오백 만 명 중 백만 명이 산다는 수도 오클랜드가 조금 번잡하지만 그래도 5층 이상 되는 건물이 드물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수도를 벗어나면 인구가 적기 때문인지 대부분 넓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산다. 이런 곳에 살면 아이들은 뛰지 마라, 조용히 해라 하는 잔소리 걱정 없이 신나게 놀 수 있고 어른들도 층간 소음과 주차장 전쟁, 공용 시설 사용 매너로부터 자유롭다. 서로 신경을 긁어댈 일이 없으니 너그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나는 이런 곳에서 살길 원했다. 하늘이 숨어 있지 않고 흙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어느 곳을 봐도 초록색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그런 곳. 이웃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 얼굴 붉힐 일 없이 지낼 수 있는 여유로운 곳. 차량 정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빨리빨리를 입에 달지 않아도 재촉받지 않는 문화. 조금 느리더라도 마음이 편하고 문명 혜택을 누리기보다 자연을 벗삼을 수 있는 곳. 내 성향은 이런 곳을 향한다. 카지노 게임에 와서 정확히 깨달았다. 그저 일상을 떠난 관광객 신분이기 때문에 잠시 즐기는 생활이어서 좋았던 게 아님을.
누구는 말한다. 너무 한적해서 재미가 없다고. 택배도 다음날 바로 배송되는게 좋고 이것저것 즐길 것도 많은 한국이 좋다고.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성향과 취향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한동안 카지노 게임앓이를 겪었다. 카지노 게임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이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민 준비는 결국 포기했지만 카지노 게임를 향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어쩌다보니 다시 왔고, 6년 전 나를 온통 설레게 만든 모든 것을 또 느낀다.
하지만 6년 동안 동안 또다른 정보를 얻고 사랑에 빠진 마음에서 한발 물러나 생각해보자 카지노 게임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곳이지만 더 이상 나의 낙원이 아니었다. 언제나 2월처럼 찬란한 날씨이지도 않고 난방 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아 스산한 날에도 집에 온기를 채울 수가 없다. 생활물가가 낮지만 임금 또한 낮은 편이며 무상의료라고는 하지만 피가 철철 나지 않는 이상 의사를 만나기는 힘들다고 한다. 몇 년 후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인 내가 병원을 더 찾으면 찾았지 덜 가지는 않을텐데 의사를 만나기 힘들다라... 큰 감점 요소임에 분명하다. 무엇보다 호주에서 거의 십년 째 살고있는 동생이 툭 던진 한 마디가 울림이 컸다.
"언니, 외국사회에서 비주류로 사는 건 쉽지 않아."
왕가마타 지역에서 고른 우리 숙소 입구에는 집을 판매한다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집주인에게 우리가 이 집 산다고 할까? 얼마면 되냐고 물어봐바." 라고 했지만 우스개 소리임을 남편도 알고 나도 안다.
숙소에 오자마자 가장 가까운 한인마트부터 찾고, 한인마트에서 라면과 컵떡볶이, 김치, 양념깻잎 등을 잔뜩 사온 나는 타국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이다. 카지노 게임는 근사하지만 카지노 게임이 가진 장점 또한 크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인다.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가파른 물가 상승은 버겁지만 "이 나라에서 못 살겠네.'라는 투정을 카지노 게임에서 하며 살고 싶다.
아름다운 나라 카지노 게임에 두 번이나 다녀간 삶 자체로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곳은 내 마음 속 천연기념물로 간직하리라. 그리울 때는 휴대폰 속 사진을 찾아보는 걸로 충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