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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운 Apr 01. 2025

그 해 바다에 놓고 왔지

1.


부표를 넘어오는 파도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몰아쳤다. 흔들리는 부표를 바라 보고, 누나에게 전화를 걸지 고민했다. 바다에서는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 처럼 되지는 않았다. 죽은 동생이 저 부표처럼 외롭게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구조를 기다리는 건 아닐까. 오른쪽 팔이 찌릿했다. 미처 약을 챙기지 못했다. 약이 없으니 아플 때마다 참아야 하는 건 내 몫이온라인 카지노 게임. 급한 마음에 왼팔로 아픈 부위를 감쌌다. 부표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파 도에 몸을 맡긴 듯 편안해 보였다.


파도가 잦아들었다. 부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동생이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도 된다 는 허락 같아 보였다. 누나에게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신호음이 울렸다. 신호음은 울릴 때마다 내 목을 조이는 것과는 달리 파도는 아무렇지 않게 부표를 흔 들고 있었다.


그럴 순 없겠지만 누나에게 신호가 닿기 전 약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신호음은 끊어지지 않았 다. 내 기억 속의 누나와 동생, 엄마도 끊어지지 않고 선명해졌다. 이제라도 통화를 끊은 후에 연락이 오면 잘못 눌렀다고 메시지를 보내면 될까. 신호음이 지속될수록 내 안의 어떤 떨림이 진동하였다. 곧 내 안의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신호음이 끊기며 어떤 공간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보세요.”


바다 한복판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나의 목소리는 바다 위에 떠다니던 나를 다시 이곳 모래사장으로 끌어다 주었다.


“새벽이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누나는 내 이름을 불렀다. 누나도 긴 적막 속에서 겨우 꺼낸 목소 리였으리라는 걸 가족이라면 알 수 있는 걸까. 긴 시간이 지나 처음 듣는 목소리는 내가 생각 한 젊고 기운 있는 누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짧은 목소리 하나로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했 다. 분명 누나에게도 내 목소리는 그렇게 들릴 터였다.


“엄마랑 동생 보러 가려고 해. 그래서 전화했어.”


누나는 내 말을 삼키는 듯했다. 누나의 침묵이 무슨 뜻일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 렇게 느낀 것이리라는 것도.


“그래. 잘 지냈지?”


20년 만의 안부 인사치곤 간단한 인사말이었다. 잘 지냈다고 하면 혼자 잘 지냈다며 원망을 받을까? 잘못 지냈다고 하면 겨우 그렇게 살아가려고 떠났냐며 원망을 받을까? 잘 지냈지란 물음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어떻게 하면 누나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그리고 20 년 만의 어울리는 인사말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분명 수많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쓴 침 만 삼켰다. 전화와 전화 사이엔 무형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안을 채우는 건 나의 죄책감과 분노와 원망이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이기심이 한 움큼 차지하기도 했다. 제 발로 원망 어 린 말을 들으러 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미움과 설움을 전부 받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2.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와 만든 윤슬이 발끝을 아슬하게 건드렸다. 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강릉으로 왔다. 어느 바다인진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를 봐야겠다는 마음, 혼자 강릉으로 떠나온 것, 파도를 보는 일 모두 평소 하지 않을 일이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거 아시죠? 안타깝게 들리는 거 압니다. 저는 대표이사로서 이런 결 정을 했습니다. 안정화 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내심 기다렸다는 듯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려하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보다는 나았다. 괜찮아지면 연락을 주겠다던 회사에선 연락이 없었고, 시간이 지나도 회 사는 긴 침묵을 택했다. 돌아보면 오랜 시간 회사에 다녔다. 나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본격적으로 쉬려 했을 땐 쉬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시간이 지나며 불 편한 마음은 익숙해졌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 아닌가. 어쩌면 내가 살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한계가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런 생각에 접어들자,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지기도 했다.


티브이에선 남자 배우가 쉬는 날 집에서 쉬는 방송이 나오고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남자는 일어나 요리 재료를 손질한다. 칼질이 서투른지 요리 재료가 도마 밖으로 튕겨 나간다. 그것을 주워 손질 한 재료에 합친다. 이후 요리 과정은 능숙하게 이루어진다. 요리가 다 될 때쯤 남자 배우는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아마 남자 배우와 친하거나 미리 섭외된 것으로 보인다. 문득 남자 배우의 가족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책임질 가족이 없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족을 떠나 서인시로 떠나왔다. 20년 이 지난 지금 내게 남은 건 집과 기력을 다해가는 나 자신이온라인 카지노 게임. 몇 년 전 정이 암으로 떠났 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작정 올라온 서인에서 어떤 일이든 했다. 그러다 자리 잡은 회사에서 만나 결혼으로 이어졌다. 아이는 유산이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족을 버렸던 내가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도 되는 걸까.


그리고 정이 암이란 걸 알게 된 날, 첫 항암치료가 잘 되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날,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날. 정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한순간의 꿈처럼 스쳐 갔다. 정의 죽음 이 현실이 되어갈 때 우리는 한참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 하던 것이 생각났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말,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 이 넓은 우주에서 생명 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들. 그땐 고갤 끄덕이며 그 말을 하는 정을 좋아했다. 한참이나 부표 를 넘어서 지평선까지 바라봤다. 지평선은 하늘과 이어져 끝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바다 는 계속해서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신발 위까지 몰려온 파도에 바지 밑 단까지 내주었다. 마치 죽은 동생이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이 말했다.


그러니 이 넓은 우주에서 외로움을 한번은 껴안아 보도록 해봐. 우리 가족 생각하는만큼 새 벽 씨의 가족을. 내가 죽기 전에 살아 있는 누나도 찾아뵙자.


그러나 그때의 내겐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만 했다. 그러 나 그때의 정은 자신이 죽으면 내가 그곳을 찾아가기라도 할 것을 알고 있는 듯 웃어 보였다. 정이 죽은 후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젠 완전히 혼자가 되온라인 카지노 게임고 여긴 나는 습관처럼 혼 잣말을 했다. 정이의 그 말은 어쩌면 내가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정인 그런 내 마음도 알아봤던 것 같다.


3.


단순함은 욕망이 되었다. 올라가고 싶었다. 나무를 오르는 동생처럼, 아빠가 죽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처럼,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누나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가족을 벗어나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다. 누군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보다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알 수 있다. 그때의 선택은 떠남이 아니라 도망쳐 왔다는 것을.

떠나기 전날, 어김 없이 나무를 오르는 동생에게 왜 자꾸 나무를 오르는 거냐고 물었다.


“바다가 보인대.”


“여기 바다는 없어. 새명아.”


“바다 있는데. 나무 위에선 보여.”


그때 동생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뭐라고 말했어야 했을까. 나도 나무 위를 올라가 동생이 보는 바다를 봐야 했을까? 강릉에서 떠오르지 않던 기억은 주평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 선 수많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주평으로 가까워질수록 잊고 있던 감각에 내 몸은 얼어붙고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쩌면 이러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애써 외면해왔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커지는 죄책감. 이 건 내가 가족을 떠난 것 때문이리라는 것도.


마음에 남아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곳을 떠날 거야. 그런데 이것 하나는 했을 것 같아. 너와 바다를 보는 것 말이야. 널 보기 전 본 바다는 끊임 없이 펼쳐졌어. 보고 싶구나.

기차에 몸을 실은 지 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세 시간만이면 오는 거리였다. 나는 지친 몸 을 일으켰다. 주평 시는 2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닳아버린 간판, 역 주변의 낡은 가로등과 보도블록까지. 달라진 건 에스컬레이터 정도였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듯 보였다. 곧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이상하도록 날씨가 맑아 화창했다. 며칠째 비가 오지 않는 날씨가 지속되온라인 카지노 게임. 날씨가 좋아서 이상했다. 날씨가 좋으 니, 기분도 좋아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차라리, 비가 오길 바랐다. 아니면 해가 구름에 가려 온종일 흐린 날씨가 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아무 의미 없온라인 카지노 게임.


20년 전 슈퍼마켓이었던 곳은 선물 가게가 되어 있었다. 매번 나는 슈퍼마켓에 들러 동생의 과자를 사곤 했다. 안면이 있던 아저씨는 내게 일자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대신 중개 수수료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날부터 선택에 대한 고민이 들 때마다, 엄마와 동생, 누나의 얼굴이 보기 어려웠다.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는지 최대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연기를 했지만, 누나는 이후 변한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쯤부터 계속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마음 안으로 삭혔다. 나는 그럴 때마다 피곤하다는 식으로 넘기곤 했지만, 그것도 연속으로 이어질 순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게 직면한 문제를 누나에게 솔직한 마음으로 털어놓기로 다짐했다. 그날도 역시 슈퍼마켓에 들렸다. 아저씨는 아직도 고민 중인 거냐며 내게 말했고, 오늘 저녁까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고민을 했던 가족을 선택한 나와, 내가 모르는 미지의 곳을 선택 해야 했다. 그날 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나는 여지없이 내 방으로 들어가는 날 붙잡고 잠깐 집 밖을 걷자고 말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맑은 날이었다. 너무나 하늘이 맑아서 어두운 밤이었는데도 밝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음을 기억했다.


“오랜만에 걷네.”


“그러게.”


“별 건 아니고 요즘 고민이 있니?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누나는 내 손을 잡았다. 꼭 열 살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살며시 손을 놓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힘들게 막고 있던 마음을 내비쳤다.


“내일 떠날 거야. 누나. 며칠 고민한 거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거야. 이렇게 갑작스럽게 무 책임하게 혼자 선택한 건 미안해.”


누나는 내 말에 충격을 받을 것 같았지만, 목소리는 의외로 덤덤했다. 오히려 내가 말하면 서 표정이 일그러지며, 목소리도 흔들렸다. 어렵게 꺼낸 말을 마칠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말 을 한 건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한 것만 같은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래. 알았어. 오랜 시간 고민한 거면 그렇게 해. 완전히 떠날 건 아니잖아. 하고 싶은 걸 해. 조금만 더 걷자. 새명인 잘 시간이야.”


그날 밤 누나가 날 잡았다면,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까. 누나는 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고 했지만, 누나도 후회하진 않았을까. 이 기억은 내가 기억하는 미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떠난 뒤로도 누나는 힘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4.


누나의 얼굴에 엄마가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들어와.”


집은 과거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오래된 가구와, 빛 바랜 사진들, 습기를 머금은 공기 와 곳곳에 스며든 냄새까지도. 나는 낯선 자세로 서 있었다. 누나가 이혼을 한 뒤,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누나가 안내하는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 여기 새명이 쓰던 거도 있어.”


“그림이네?”


“그림을 그렸어. 계속.”


“여길 그린거구나.”


“이건 나무. 이건 새명이. 나, 너. 엄마까지. 그리고 여기 파란색은 바다.”


동생은 내가 떠난 후에도 나를 기다린 흔적이었다. 떠나기 전, 동생에게 열 밤을 보내면 내가 돌아올 거라는 그 말, 그리고 같이 바다를 보자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떠나면 다 잊 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스케치북은 여러 개가 있었고, 그 스케치북엔 하나도 빠짐없이 나 무와 바다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이도 그렸다. 새명아.”


누나는 말없이 내 어깨에 손을 얹온라인 카지노 게임.


“배고프니. 배 안고프면 산책하러 갈까?”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무 보러 가고 싶어.”


나무로 가는 길 역시 변한 건 없온라인 카지노 게임. 변할 수 있는 건 변한 것 같은데, 심지어 나를 둘러 싼 것들은 변했는데 왜 이곳은 하나도 변함 없이 20년간의 세월을 담고 있을까. 모르는 일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온라인 카지노 게임. 밑에서 본 나무는 생각보다 작았다. 아무 말 없이 나무를 바라봤다. 나는 조금은 힘이 빠진 몸이지만 나무를 올라가려고 했다. 발 디딜 곳을 찾고 나뭇가지를 두 손으로 끌어당겨 높은 곳을 향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완전히 올라가기 위해선 한 번 더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래에서 봤던 작은 나무는 생각보다 크고 높았다. 이 건 기분 탓이 아니온라인 카지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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