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큼 작지만 소중한 여유, 일상의 틈새였다. 제주 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해 김포 공항으로 돌아오는 3박 4일의 여정 사이사이에 책을 읽었다. 여행 중에 하루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있겠다고 선언했다.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입이 뾰로통 튀어나온 남편은 할 수 없이 두 돌 손자와 에코랜드로 기차를 타러 갔다. 그럴 만큼 손에서 놓기 싫은 책. 제주를 떠나 김포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장을 덮은 책. <미오기전이다.
서평가 김미옥의 <미오기전을 읽으며 “나도 그런데…”를 연발했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얼굴이 창백해져 말똥거리는 체질이라든지, 한 작가에게 흥미가 생기면 그가 쓴 책은 다 읽어버린다.’라는 대목이었다. 희한하게 그녀는 살면서 귀신도 자주 만났다. 조폭같이 생긴 남자가 따라다녔던 이야기는 남도 사투리 가락까지 더해져 구수하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닌 이야기도 맛깔스럽게 빚어내는 능력을 갖춘 작가가 부러웠다. 바로 앞에서 실감 나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은 책이었다. 나도 그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읽으며 몇 번이나 공감하고 깔깔 웃다가 뭉클해졌다. ‘누군가 울면 가슴부터 미어졌다. 혼자 우는 눈물이 어떤 것이지 알기에 가끔 무방비가 되어버린다.’는 글은 그녀가 매우 따뜻한 사람이자 아파본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12살 여자아이의 공장은 밤 11시도 불사하는 가혹한 곳이었다.‘는 글에 목이 꽉 메었다. ‘나도 누군가 왜 우는지 물어봐 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사는 게 억울했다.’는 부분에서는 급기야 카페에서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나도 그래 본 적이 있었으니까. 사는 게 억울하거나 누가 왜 우는지 물어봐줬으면 했던 때.
갓 결혼하고 부천 오종구 원종동의 작은 빌라에 살 때였다. 그 당시에 여직원은 결혼을 하게 되면 사표를 써야 했다. 그 시절 들어가고 싶은 직장 1위로 손꼽히던 항공사였다. 자랑으로 여기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만 있으려니 갑자기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신혼집은 남의 집 같았고 서툰 결혼 생활은 침봉 위를 걷는 것처럼 가슴이 따끔거렸다. 할 일이 없어 하루에 한 가지씩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러 매일 동네 시장에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이화여대 앞을 지나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적을 둔 풋풋한 여대생이 부러워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내가 서러워서, 혼자 울기도 했었다.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고 몇 달 만에 어찌어찌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시식 판매원이었다. 부천에서 가락동까지 차를 세 번씩 갈아타고 출근을 했다. 왕복 세 시간에서 길이 막히면 네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얼마나 번다고 그 먼 길을 가는 거야” 남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버스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이렇게 먼 길을 오가면서도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 힘든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거야’ 속으로 돼내었다.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었다. 이제 막 밝아오기 시작하는 동쪽을 향하던새벽이었다.
“캘리포니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드셔 보세요.”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막 수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식품코너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잘게 잘라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식을 권했다. 영업시간 전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박스를 열어 매대에 산처럼 쌓는 일로 시작해서 온종일 선채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파는 일은 신체적으로 힘들었다.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시식을 권하는 일은 쑥스러워서 용기가 필요했다. 중간중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잘라 접시에 담고 물어보는 손님에게는설명을 해야 했다.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봉투에 담아 계산까지 하느라 분주했다. 하루종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더미에 파묻혀있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가는 저녁이면 다리가 퉁퉁 부었고 목이 쉬어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튼튼한 상자를 여느라 손톱 끝은 깨져있었고 손가락 여기저기 가볍게 베인 상처가 남았었다. 낮에 기운을 다 뺀 후라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야 한다는 생각에 간절하게 축지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붙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팔 수 있다면 사막에서 모래도 팔 것 같은 자신감과 긍정의 힘이었다. 덕분에 씩씩하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꽤 많이 팔았고 전부터시식 일을 해오던 아주머니들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파는 새댁은 항상 웃는 상이여서 그런가, 참 잘 팔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수입사의 관리자가 붙박이 아르바이트를 제안할 무렵, 전 직장에서 경력자 계약직 제안이 왔다. 그리운 옛 동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다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팔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을 다독여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배웠다. 긍정과 회복력.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태풍 속을 걷는 것처럼 힘든 날도,버티며 이겨내는 힘을 키웠다. 행여 길을 잘못 들어 서서히 물에 잠기는 모래탑 위에 선다 해도,뛰어내릴 용기와 이겨낼 마음이라면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덜 여문 새댁이 여무는 중이었다.
어떤 경험은 촛농처럼 쌓이고 단단해져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미오기전을 읽다가 떠올린 잊고 있던 옛일.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힘들었던 지난 일을 웃으며 이야기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고 있다. 가슴속에서 오래 묵힌 시간이 발효되어야 비로소 꺼내 보일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제법 평온한 나날이지만 혹여 다시 힘든 날이 온다 해도 이제는 여유롭게 마주할 마음이 생겼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팔던 새댁은 나이가 들어 천천히 익어가는 중이다. 낮은 돌담에 둘러싸인 작은 찻집, 창문으로 스미는 따스한 볕을 쬐다 가족이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