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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민 Feb 17. 2025

여행한량의 카지노 게임일기(1)

프롤로그 - 다시 카지노 게임을 위해


“민승이 전화 오네 집을 나서네 돈 더 필요해

난 카지노 게임할 거야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민승이 전화 오네 옷을 갈아입네 멋도 필요해

난 백 프로 믿어 백퍼 백퍼”


금요일 새벽 5시, 유일하게 내가 부지런해지는 타임이다. 무심한 알람소리가 방전체에 울려 퍼진다. 힘들지만 나에게 늦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스스로 주입하며 졸음을 뒤쫓아 본다. 차에 시동을 켜고 팔로알토의 ‘카지노 게임’을 들으며 오늘 방송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되짚는다. ‘내가 돋보여야 할 텐데.... ’, ‘반응이 좋아야만 하는데’, ‘다음 스텝의 기반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1시간 30분 동안 다짐 끝에 방송국으로 들어와 애써 여유 있는 척을 한다. 아침 방송이라 적막한 대기실 안에서 대본을 숙지해 본다. 정확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이왕이면 유머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해.... 어느덧 고정 3년 차 크게 돋보이진 않지만 성실함과 꾸준을 무기로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에 간편한 추리닝 차림으로 동네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는 나는 어느 순간 동네에서 제일가는 백수가 되었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도서관이나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바람이 선선하게 비출 때 책 한 권 들고 벤치에 앉아 하루를 지새우니 그 누구라도 팔자 좋은 한량이라 생각하리라. 웬만하면 동네 사람들과 말 섞는 걸 피하는 편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눈썰미 좋게 생긴 미용실의 아주머니가 나의 직업을 알기 위해 이래저래 답을 던져본다. “공장? 배달? 취직 준비생? 자영업?” 그들의 세계 속엔 나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들을 이해시킬 자신도 없었고 허풍처럼 보이기도 싫었다. 괜시리 쓴웃음만 지으며 이 상황을 얼버무린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불안하다. 그늘이 가슴팍까지 닿으면 지평선 너머로 도망치고 싶다.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핑계로 하루하루를 유예하고 있지만 내일의 먹거리는 신기루처럼 아득하다. 하루하루 밥벌이를 해야 사람노릇을 하는 이 일은 스스로 안주하거나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도 모르게 깨달을 때 그건 곧 직업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작년 연말 흑백영화필름처럼 그 순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생존하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의 확실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변곡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 나를 되돌아보고 생각하고 규정해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속에 든 생각이 무엇일까? 험하고 치열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없이 게으르고 나태했던 나에게 채찍질을 날려 본다. ‘쓰자, 쓰자, 쓰자’ 장수가 전장에 나가기 전에 카지노 게임를 쓰는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의견, 평가, 혹은 질투와 의심, 갈등과 희망, 편견까지 가감 없이 기록하려고 한다.


더 이상 껍데기를 방패 삼아 도망 다니기엔 절벽이 머지않았다. ‘작가’로 카지노 게임하기 위해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여물을 되새기짐 하며 벼랑으로 떨어질 준비를 하려고 한다. 쓸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 동안 쉼 없이 기록하며 나만의 우주를 마음껏 유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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