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작년 이맘때쯤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다. 영화는 흥행했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영화를 보다가 열이 받아서 심장박동수가 올라가는 바람에 애플워치가 울릴 정도였다", "너무 화가 난다"라는 반응들이 넘쳐났다.
나는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수선한 마음에 더한 어수선함을 보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는 자들이 판을 치는 꼴을, 그 끝엔 언제나 힘없는 자들의 피눈물이 예정된 결말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는지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 누구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얘기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알려져야 하는 사실들이 있으며 절대적으로 지켜내야만 하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누군가는 마땅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참하게도 지난 십이월 삼일, 과거는 반복될 뻔했다.
한국에 친한 언니가 최근 이사를 하게 돼 안부도 물을 겸 문자를 보낸 어느 날 아침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밤 열 시를 조금 넘긴 시간, 언니에게서 답장 대신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지금 이사가 문제가 아니야!" 언니의 격앙된 목소리에 무슨 큰일이 생긴 건가 싶었다.
"응?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카지노 가입 쿠폰나라 큰일 났어"
"왜요?"
"지금 미친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대..."
비상계엄령.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제대로 알게 된 단어. 그런데, 방금 비상계엄령 선포, 라니. 이 세 단어가 한 문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소설이지만 명백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였다. 진짜로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은 총소리와 울음소리, 자꾸만 떠오르는 잔인한 잔상들의 생채기가 아직 아물기도 전이었다.
소설은 오월의 광주, 날것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몰려 들어오는 주검들의 유족을 찾아 장례라도 치를 수 있도록 돕는 시민들 속, 한 소년(동호)이 있다. 독자는 소년의 관점에서 광주로 끌려 들어간다. 중학생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은 사살된 친구(정대)의 시신을 찾으며 죄책감으로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시취에 대한 묘사가 특히 많이 나오는데, 마치 그 냄새가 종이를 뚫고 나오는 듯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한 글자 한 글자 짚어 읽어가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더해지는 책임감의 무게가 손가락 끝에서 느껴진다. 폭력의 실체는 잔인하다 못해 참혹스럽지만 소설의 목소리는 폭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비폭력적이지만 정확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작가는 그 무엇도 외면하지 않는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pg.17)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반쯤 웃으며 너는 말했다. (pg.29)
반쯤 웃으며 말하는 소년의 말이 슬펐다. 부끄러워서 밑줄을 그었다. 소년의 말이 맞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뭘까. 무지성도 폭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카지노 가입 쿠폰 어느새 흑과 백 사이에서 스스로 회색의 자리를 만들어 그 자리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게 된 것일까. 어린 소년의 눈에도 보이는 것을, 어른인 카지노 가입 쿠폰 왜 자꾸 눈을 감으려 드는 것일까.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카지노 가입 쿠폰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pg.117)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고심 끝에 내가 찾은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내게 사랑은 그렇다. 내가 믿는 사랑의 끝에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투표를 앞두고 여의도로 몰려나간 시민들의 시위현장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자꾸만 이유 없이 마음이 벅차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를 삼킨 것 같았고 보고 있기가 감정적으로 힘들어지기도 했다. 이 마음은 무엇일까 하고 들여다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선과 사랑을 선택한 이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시위현장의 모습은 소설과 닮아 있었다. 여기저기 높게 들어 올려진 깃발들은 놈들과 똑같이 맞서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놈들은 또다시 총구를 겨누었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을 했다.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총알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 깃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거부하고 정의와 최소한의 선을 선택한 사람들의 횃불처럼 보였다.
신형철 작가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소개되어 읽었던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시가 떠올랐다.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고대의 아폴로의 토르소(torso, 몸통만 있는) 조각상을 보고 쓴 릴케의 시 마지막 문단을 꺼내어본다.
그 모든 가장자리에서마다 마치 별처럼
빛이 비치는 일도 없으리라.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카지노 가입 쿠폰 안 된다.
신형철 작가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릴케가 몸통만 있는 조각상을 보며 '온몸이 눈'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토르소에게는 입이 없으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데, 릴케에게는 그 '침묵의 말'이 이렇게 귀에 들려왔던 모양이라고 말한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침묵의 말은 단순한 무언의 전달이 아니라 어떤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 시와 소설이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 작가는 노벨수상 기념강연에서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며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하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다고 말했다. 희생자로 남은 사람들은 비록 얼굴이 없고 말을 하지 못하는 죽은 몸이지만 영혼의 눈은 살아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그들의 고통과 기억은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침묵의 말을 전한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폭력은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파괴해 버리는, 세 개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카지노 가입 쿠폰 우리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도 우리에게, 소년이 온다.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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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빠져나가는 어린 새는, 살았을 땐 몸 어디에 있을까. 찌푸린 저 미간에, 후광처럼 정수리 뒤에, 아니면 심장 어디께에 있을까.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 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카지노 가입 쿠폰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달은 밤의 눈동자라고 했다.
연행되지 카지노 가입 쿠폰려고 몸부림치다 벗겨진 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열여섯 살 난 그 애는 무엇이 자신을 울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신들을 가슴에 안고 이층 노조 사무실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방으로 걸어 올라갔을 것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카지노 가입 쿠폰, 빛이 비치는 카지노 가입 쿠폰, 꽃이 핀 카지노 가입 쿠폰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