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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굽남 Mar 20. 2025

"사장님! 저도 겨털 뽑히고 싶어요!"

술친구가 된 아르바이트생 H군의 사는 이야기

#1 _당황스러운 도발


"사장님! 왜 P 선배를 자르셨나요? 그래도 되나요?"

황당했다. 도대체 왜 이런 항의를 하는지. 아르바이트 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입이. 이제 20살 된 앳된 청년이. 길어야 3~6개월 일하고 군대 갈 녀석이. 본인의 생각에 부당 해고를 하는 악덕 사업주를 규탄하는 정의감의 발로인가? 동료에 대한 연대감의 발로인가? 어쨌든 당황스러운 도발이었다.

"그럴만하니깐 그런 거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정규직원 해고 사유를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우스워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저희에게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친구, 그냥 넘어갈 눈빛이 아니다. 자신이 이해가 될 만한 사유가 있어야 물러설 기세다. 청년의 기백이 강했다. 순간, 내가 움찔하고 살짝 위축되는 경험까지 한다. 정말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굳이 들어야겠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한발 물러섰다. 불나 있는 이 녀석의 가슴에 더 이상 기름을 끼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희도 알아야 일을 제대로 하죠"

원하는 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 자신도 그만둘 기세로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직원 P 군의 근무규정 위반 내용(잦은 지각, 만취 상태 출근, 고객 앞에서 짜증 표출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제야 "술 먹고 일한 것은 심했네요" 하면서 이해가 됐다는 표정이다. 그러고 나서, 이 친구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10분 전에 출근하고 맨 마지막에 퇴근한다. 바닥청소, 테이블 세팅은 물론, 물품 정돈까지 꼼꼼히 살핀다. 가끔은 "아야 대충 하고 빨리 퇴근해라"해도 말을 안 듣고, 자기 맘에 들 때까지 일했다.


#2_ '불안'한 자영업은 안 돼요


가끔은 사장인 나보다 더 사장처럼 일하는 이 친구.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진짜 내 아들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매니저급의 직원으로 탐났다. 어느 날 '삼계탕'집을 데리고 갔다.

"우와~ 가게에서 맨날 고기 주셔서 감사한데... 이렇게 외식까지"

"오늘은 지 말고 닭 먹자", "넌 진로 결정했냐?"

"네"

"전 00 전문대학 가서, 자격증 따서 00 회사 들어가려고요"

"공부 잘할 거 같은데, 왜 4년제 안 가고..."

"고2 때 아버지가 무조건 대기업 생산직으로 진로를 결정하셔서..."

"효자네~ 아버지 말씀 잘 따르고..."

"그게 아니라,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혹시, 나처럼 고깃집 사장해 볼 생각은 안 해봤냐?"

"했는데요, 형이 식당 쪽 일을 해서, 아버지가 저는 못하게 하셔서요"

"왜"

"불안하다고요. 안정적인 직업 가지라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매니저급으로 일하다가 추후에 가게 맡아서 경영해 볼래?'라고 제안하고 싶었는데. '불안'이라는 키워드에 전달하고 싶은 말을 집어삼켰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가위질, 칼질을 해야 하는 고깃집 육체노동이 60 넘어서까지 하기엔 녹록지 않다. 그래서 책임지고 일을 할 후계자(?)를 5년 10년을 내다보고 물색하다가, 그나마 가능성 있는 청년이었는데... '불안'이라는 키워드 앞에 한방에 무너졌다.



#3_ 누군가에게 지겨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


인근 공단의 대기업 생산직 직원들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사장님! 1,2,3번 테이블 손님들 어디서 왔나요?"

이 녀석 조용히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00 회사에서온 듯한데, 왜?"

"그냥요"

손님들이 가고, 저녁밥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 기울였다.

"너 아까 단체 손님들 왜 물어봤어?"

"사실은 저도 저 회사 가고 싶거든요"

"아 그래? 넌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야"

"사장님이 어떻게 아세요?"

"야! 너 정도면 충분히 가. 자격증 따고 준비하면 충분히 가"

힘주는 나의 대화에 이 친구 표정이 밝아지더니, 밥을 두 그릇째 뚝딱 먹는다.


주야간 교대, 업무 강도, 타 부서와 업무 분담 갈등, 상사의 가스라이팅, 불만족스러운 연봉과 복지 등. 다양한 주제로 회사 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하는 단체 회식 팀. 이들을 바라보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청년. 누군가에게는 힘겹기도 하고 지겹기도 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삶의 '희망'이다.



#4_ 카지노 쿠폰 겨드랑이털 뽑히는 것이 소원


5개월 정도 일하다가, 해군으로 간 이 녀석. 휴가 나올 때마다 가게를 찾는다. 친구와도 오고, 함께 일했던 아르바이트 동료들과도 오고. 어느 날, 마감이 다 돼가는 시간에 혼자 왔다.

"또 휴가 오셨어요?"

반가움 반, 놀림 반으로 맞이했다.

"사장님! 소주 한잔 사 주세요"

어~ 이 녀석 오늘 느낌이 싸하다. 세상이 무너질듯한 표정이다. 실연당한 사람 마냥.

"사장님! 왜 저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요?"

"왜 뭔 일 있냐?"

이 친구, 하소연이 시작됐다. 군대에서 상관이 버릇없는 신입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따라갔단다. 4명이 1명을 둘러싸고 '교육'을 빙자한 괴롭힘을 한 것. 상관이 신입의 겨드랑이 털을 뽑으며 괴롭혔단다. 괴롭힘 당한 신입이 형사고발까지 했단다. 자신은 옆에 서 있기만 했지만, 함께 피의자로 입건됐다고 한다. 결국, 합의금 1천4백만 원을 내야 했단다.

"아이쿠야. 세상에나~ 억울하고 힘들었겠다. 너 그동안 아르바이트하고 군 생활해서 번 돈 다~ "

했더니, 또 한 편의 비극적인 사연이 시작됐다.

"사장님! 예전에 사장님이 해고했던 그 P형이요. 그 형한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300만 원 빌려줬는데, 아직도 못 받았어요. 연락도 안 되고요"

"허걱! 아니 그놈한테 돈을 왜 빌려줘? 도대체 왜?"

"그러게요. 전 왜 이럴까요? 사장님이 그 P형, 형도 아니죠. 그놈 자를 때 그놈 편들고 사장님께 덤벼들었던 거 생각하면 진짜 ~ 와~ 진짜~ "

이 친구의 하소연에 나는 조언 겸 위로 겸 많은 대화를 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할 만한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정신 바짝 차리고 책임지고 대처하는 것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은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라. 돈은 잃어도 다시 벌면 되지만, 몸과 마음의 상처는 더 이상 깊게 파지 마라.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사기당한 사람도 있고, 무안공항 참사처럼 순간에 온 가족이 목숨까지 잃는 일도 있다. 네가 겪은 일은 아무 일도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소중한 교훈이자, 자산이 될 것이다. 등등. 위로 겸 조언 겸 코칭 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해 줬다.

술까지 마신 이 청년. 내 조언이 온전히 들릴 리가 없다. 자기 소원이라며 진지하게 말한다.

"사장님! 저도 겨드랑이 털 좀 뽑혀서, 수 천만 원 벌어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 그때 P 놈 편들고 대들었던 거, 정말 쪽팔리고 죄송합니다"


"아이쿠야~! 술이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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