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정대건, 민음사, 2022)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될 때 찾는 책계정(@griming_write)이 있다.
작년 말,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던 책 <카지노 게임가 그리밍 님 계정에서도 보였다. 오랜만에 푹 빠져 읽고 있다는 감상에 주저할 것 없이 소설을 펼쳤다.
<카지노 게임라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이야기는 시작부터 휘몰아친다. 그날 밤, 그 사고는 도담과 해솔의 인생을 단숨에 집어삼킨다. 이들을 삼킨 ‘카지노 게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두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 간다. 술에 파묻혀 시간을 낭비했고,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하며 자신을 죽였다. 오해하고, 미워하고,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도 봤지만 이들을 삼킨 ‘카지노 게임’에서 빠져나오기엔 역부족이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인생은 점점 가라앉아 갔다.
그날 밤, 그 사고 이후 헤어져 살아온 두 사람이 우연히 재회했을 때, 서로를 향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하나가 되었을 때, 물결이 서서히 잦아들고 마침내 잔잔한 물가로 걸어 나올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큰 두 개의 물결이 만나면서 일어난 충돌은 두 사람에게 이전보다 더 큰 상처를 입히고, 더 멀리 떨어트리고 만다.
도담과 해솔의 삶이 그러했듯, 거센 물살을 만나면 휩쓸려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애쓴 수고가 무색하게 삶은 자꾸만 수렁으로 빠질 때가 있다. 답답한 관계, 할 수 있는 게 없다 느껴지는 무력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들은 카지노 게임에 떠내려갔을까?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드라마라면 분명 그랬겠지만, 소설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부디 이 험한 물살을 헤치고 나와주길, 그럼 나도 카지노 게임를 헤치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힌트는 처음에 있었다. 이야기 시작에서 소방관이었던 도담의 아버지를 통해 카지노 게임를 만났을 때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일러줬다.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해.”
두 사람은 마침내 카지노 게임를 빠져나온다.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노력을 멈추고, 기꺼이 사랑에 빠짐으로 깊고 깊은 밑바닥까지 함께 가라앉기를 택한다. 모든 게 끝난 최악이라 생각했던 카지노 게임의 밑바닥은 수면 위와 달리 고요하고 잠잠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천천히 방향을 찾아, 물살이 완만한 수면 위 쪽으로 올라왔다.
'카지노 게임'는 그렇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빠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빠짐’으로. 끝이 생각되는 마지막에 놓인 새로운 시작을 발견함으로 말이다.
내게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 지점은‘함께’하는 모습이다.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카지노 게임 밑바닥까지 왔으나,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엔 이들의 다른 손은 물속에 있던 타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내민다는 건 함께 빠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그러나 도담은 이제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이의 손을 잡고 올라온 수면은 소용돌이 가득한 계곡 웅덩이가 아닌 바다였다. 작은 일렁임은 물결이 될 뿐인 드넓은 바다였다. 인물의 회복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감정이 후련해지는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의미 있게 확장된 모습을 확실하게 전하는 엔딩을 보며 마음이 벅찼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카지노 게임에 빠진 인생을 이 이야기는 얼마만큼 구해낼까?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발이 묶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이 소설 속 두 인물을 떠올릴 것 같다.
<카지노 게임. 물이 빠른 속도로 흐름. 또는 그 물.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소설 내내 그려지면서 ‘빠진다’와 ‘빠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닥까지 깊이 빠져들 때 죽지 않고 오히려 살아나는 역설을 통해 오랜만에 제대로 된 <구원서사를 맛보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관계에 거리를 두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 ‘승주’라는 인물이 있어, 도담과 해솔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자주 승주였고,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승주였기에 초반에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지 못했다. 하지만 빗장을 풀고 빠져드니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 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꺼이, 빠져들리라!”하는 파장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