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바이에른 스위스 기행 (4)
노블레스 매거진 2025년 3월호 개제
<질스마리아의 구름 Clouds of Sils Maria은 신구 세대 여배우 세 사람의 현실적 존재감이 극 중 극과 치밀하게 얽히고설키는 영화이다. 연기파 대배우 마리아(쥘리에트 비노슈 분)는 20년 전 데뷔작인 연극의 재공연에 출연 요청을 받고 취리히에 도착한다. 그녀는 고인이 된 작가의 알프스 시골집에서 수행 비서 밸런타인(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과 지내며 연극을 준비한다. 극 중 극은 우울증에 빠진 선배와 당돌한 후배가 직장 내에서 갈등하는 내용. 초연 때 후배를 맡았던 마리아는 이제 선배 역이다. 까마득한 후배 역의 조앤(클로이 모레츠 분)은 할리우드 신인인데 분방한 사생활로 벌써 주변이 시끄럽다.
연습 중에 마리아와 밸런타인은 ‘말로야(Maloja)의 뱀’이라는 귀한 자연 현상을 보려고 하이킹에 나선다. 알프스의 찬 공기와 호수의 습기가 만든 구름이 바람을 타고 협곡을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뱀과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마리아를 시중들다 지친 밸런타인은 하이킹 도중 말없이 사라진다. 그녀가 간 줄 모르는 마리아 앞에 때마침 그 보기 드문 장관이 펼쳐진다.
‘말로야의 뱀’이 지나가는 엥가딘 계곡(Engadin)에는 장크트모리츠(St. Moritz)와 질바플라나(Silvaplana), 질스 마리아(Sils Maria)가 제 얼굴을 고스란히 비출 호수를 끼고 이어진다. 지난 가을 독일 남부, 스위스 여행의 종착지이자 궁극적인 목적지가 이곳이다. 나를 후미진 이곳까지 이끈 두 사람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카지노 게임 사이트(Friedrich Nietzsche, 1844~1900)와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1899)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스물네 살 나이에 박사학위도 제대로 밟지 않고 바젤 대학 교수로 부임해 스위스에 왔다. 그의 뛰어난 학업에 고무된 라이프치히 대학은 박사 논문 없이 학위를 주었다. 그는 바젤에 10년 동안 머물며 뒷날 사상계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생각을 싹틔웠다.
이 시절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쓴 가장 중요한 책은 <비극의 탄생. 아폴론의 이성과 디오니소스의 감성이 조화를 이룬 고대 그리스 비극이야말로 참다운 예술의 본보기이며, 현대 예술이 나아갈 길이라는 요지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리하르트 바그너를 바로 그런 예술의 수호자라고 생각했고, 작곡가가 사는 루체른을 예고도 없이 찾아가 책을 헌정할 정도로 그를 존경했다. 그러나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의 반지 초연을 본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바그너의 보수적이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결별을 선언한다.
바젤에 오기 직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처음 관람했다. 바그너가 작곡한 유일한 희극의 내용은 이렇다. 뉘른베르크의 기능공 조합이 주관한 노래 경연에 뜨내기 기사가 도전한다. 좌충우돌 끝에 우승한 기사는 아름다운 조합장의 딸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기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조합에 가입할 생각은 없다고 선언한다. 앞서 그의 숨은 재능을 알아보고 지도한 마이스터 한스 작스가 나서 조합이 가진 전통과 권위를 무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일동이 예술의 수호자인 작스를 뉘른베르크의 자랑으로 칭송하는 결말은 예술가 스스로 자기 장르의 주인공이 되는 ‘메타 예술’, ‘자기 성찰 예술’의 절정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뒷날 바그너에 등 돌린 뒤에도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 대한 평가를 뒤집지 않았다. 그는 <선악의 피안(1886)에서 “<마이스터징거는 장엄하고 육중하고 엄숙하고 현대적인 작품이기에, 그것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생명력을 지닌 지난 두 세기의 음악을 전제로 해야 하며, 그것이 이 작품의 자랑이다”라고 평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바그너와 결별한 이유도 더는 이렇게 현실에 발을 디딘 작품을 쓰지 않고 신화와 종교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바그너와 불화 탓인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극심한 건강 악화 끝에 바젤을 떠나 유랑자가 된다. 그는 여름은 알프스 고산지대로, 겨울엔 지중해 연안으로 옮겨 다니며 몸을 추슬렀다. <마이스터징거 예찬을 한참 이어가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단락을 이렇게 마친다. “독일인은 그제의 인간인 동시에 모레의 인간이지만 그들에게는 오늘이 없다.”
나는 이것이 비단 당대 독일에 한정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제’는 떠나온 낙원, 곧 ‘아르카디아’(‘에덴’이라고 해도 되겠다)이며, ‘모레’는 다가올 이상향, ‘엘리시움’(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에서 말한)이다. 누구나 오늘을 살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엥가딘 계곡에 와서 깨닫고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며 세상을 향해 외쳤다. 삶은 극복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각성과 성장에 꼭 필요한 돌파구여야 한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여름마다 지내던 질바플라나의 소박한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그의 자필 노트에서 뜻밖에 ‘장크트모리츠의 생각들’(1879)이라는 유고를 발견했다.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었다’(Et in Arcadia ego)라는 제목이 단박에 눈을 사로잡는다.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이 그림에 적은 이 수수께끼 같은 문구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와 쌍을 이뤄 유한한 인간의 필연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를 비관적이 아니라 현실에 충실하고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는 뜻으로 풀이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리고 나는 웅장하고 고요하고 맑은 알프스에서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꼈고, 목가적인 풍경을 영웅적이라고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머문 자리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사람의 심미안을 가진 예술가가 도착한다. 세간티니는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북이탈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가 통일과 독립을 한 뒤에도 제대로 주민 등록을 하지 않아 평생 무국적자 신세였다. 여섯 살에 고아가 되다시피 한 그는 밀라노 소년원을 거쳐 뒤늦게 브레라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의 재능은 곧 돋보였고, 친구 카를로 부가티(아르누보 디자이너인 카를로의 아들 에토레 부가티가 바로 고성능 자동차 브랜드의 창업자이다)의 동생 비체(Bice)와 결혼한다.
가톨릭 혼례 성사도 거부해 배교자로 입방아에 오른 세간티니 부부였지만, 이들은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세간티니는 내가 유럽에 처음 발을 딛자마자 만났던 화가이다. 세간티니는 고흐 이상으로 치열하지만 평온하고, 클림트보다 눈부시지만 세속적이지 않다.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와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처음 그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고 밀라노 근대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그와 마주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가 생을 마친 장크트모리츠로 향했다. 세간티니 일가는 주위의 쑤군거림을 피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나려고 알프스의 험지로 계속 파고들었다.
아스타 샤이프의 전기 소설 <내가 본 가장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은 화가의 발자취를 따르는 최상의 안내서였다. 19세기말 엥가딘은 외지인이 거의 찾지 않는 오지였지만 세간티니는 직전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머문 곳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과연 보이는 곳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선악의 피안’과 같은 곳이다. 세간티니는 종종 한철을 가족과 떨어져 산속 오두막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그는 영혼의 눈으로 본 것을, 혈관에서 물감을 짜낸 듯 화폭에 옮겼다. 이곳에서도 불법체류자로 쫓겨날 위험에 처했지만, 그는 이제 대가였다. 지명보다 유명한 화가를 쫓아내는 것을 엥가딘 주민은 바라지 않았다. 세간티니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스위스를 대표할 그림을 출품해 달라고 청탁받았다. 그는 그때까지 그린 것 중 가장 큰 캔버스 세 폭을 주문해 ‘생명’, ‘자연’, ‘죽음’의 삼부작을 시작했다. 산꼭대기 샬레에서 그림에 몰두하던 세간티니는 아내가 모친상을 치르러 밀라노에 간 사이 복막염으로 쓰러졌다. 비체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그는 마흔한 살을 일기로 불꽃 같은 생을 마감했다. 묘지에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빈 분리파 회원들이 보낸 추모 화환이 걸렸다. 세간티니는 생전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이탈리아어판 표지를 그렸다. 그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주문대로 ‘운명의 사랑’을 실천하며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자신을 각인했다.
사흘 동안 엥가딘에 머물면서 ‘말로야의 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에 여행 중 만난 거장들의 이름이 서로 뭉쳐 구름을 만든다. 그들은 프란츠 리스트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에서 노래한 대로 후회 없이 사랑했다. 정말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