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Myeongjae Lee
OZ8971, A330-300
15:00, 탑승구 17, 좌석 42C
새벽에 얼굴이 따끔해서 눈을 떴다. 통증이 적잖이 강했고, 어둠 속에서 만져보니 살이 부풀어 올라와서 혹시나 지네 혹은 베드버그인가 싶었다. 뒤척이며 또 걱정. 거실에 나갔더니 아내가 모기 소리 못 들었냐고, 안 물렸냐고 묻는다. 한겨울에 웬 모기인가 싶으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한 시간의 숨바꼭질 끝에 침대 밑 벽에 붙어 있던 녀석을 찾아 잡아냈다. 겨우내 집안 어딘가에 살던 녀석인지, 어디서 숨어 들어온 녀석인지, 아무튼. 모기 양이 오자마자 여기가 제주라는 사실을 강하게 일깨워주었다.
표선해수욕장에서부터 신풍포구까지 7km를 걸었다. 제주올레길 3-A코스의 일부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아침바다는 포근하고 아름다웠다. 걷는 내내 길에서 마주친 다채로운 똥들에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왼편으로 보이는 많은 양식장과 수산물 가공공장(으로 추정)의 외관에 소소하게 디자인을 입힌다면 올레길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번 올레길에서 만난 제주어 중에서는 "간세다리(게으른 사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당분간은, 구정연휴만이라도, "심우젱이 궂은 놈"들을 피해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뽄닥사니광" 소리를 듣거나 말거나, "간세다리"로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