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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07. 2025

길의 카지노 게임

어제와 똑같은 오늘, 그리고 타임 루프에 갇힌 듯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이어질 뿐인 내일이 카지노 게임을 지배한다는 무기력이 인생 스케치북을 온통 무채색으로 변질시켜 버린 지 좀 됐다. 기상천외나 흥미진진이란 낱말이 성가시기만 한 지금 꼬락서니가 정녕 실체는 아닐진대 텅 비어 있는 궤짝마냥 휑뎅그렁한 심사를 어쩌지 못하겠다.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발방으로 짓까불었지만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는 현상現狀의 파노라마에 감응하기에도 모자랐던 그 젊은 시절 말이다. 때로는 벅차오르는 환희와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 사랑했던 격정의 향연. 그토록 역동적인 에네르기로 충만했던 청춘은 찰나에 잠깐 영롱한 아침 이슬처럼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고 척박한 물질계의 단두대에 목을 길게 늘어놓고 카지노 게임 이상理想만이 초라하게 그 자리를 대신한다. 덧없는 세월은 사람을 무디게 만드는 법이라서 세태에 순응하는 얼치기 보수주의자로 변절해 호구 연명에 매달리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 자여!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진저리가 나면 비정한 세상에다 미친 척 짱돌을 집어던지며 저주를 퍼붓고는 문뱃내 진동하도록 퍼마셔도 보지만 찜부럭 내던 꼬마가 제풀에 수굿해지듯 어느새 권태와 무기력한 카지노 게임으로 되돌아가고 마는 단세포적인 잉여인간. 과연 생동하는 감정이란 게 남아 있기나 한 걸까?

홀린 듯 밤산책을 나섰다. 마침 짙은 안개가 온 천지를 뒤덮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힘겹게 밤을 밝히는 꼴이 꼭 제 꼬라지 같아 영 내키지 않았다. 괜히 나왔다 후회가 들 무렵, 진원을 알 수 없는 묵직한 울림이 산책자를 도발했다. 온몸으로 지금을 느끼고 즐기라고, 은폐됐던 온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이 밤의 모든 물상과 교감하라 다그치면서.

- 경직되어 상처받은 영혼이여, 나에게로 바투 다가서라! 백주에 숨었던 길 위의 카지노 게임을 칠흑보다 어두운 이 어둠을 빌어 바야흐로 목도할지니. 이 밤이야말로 우리를 보듬는 요람어어라. 자, 눈을 감아라. 그리고 마음 가는 대로 바라보아라. 코는 뒀다 뭣하는가. 어서 가장 끼끗한 공기를 들이쉬게 맘껏 벌렁거려라. 가슴에 맺힌 온갖 독소를 내뿜고자 입아귀가 째지도록 크게 벌리며 세이렌의 치명적인 목소리조차 아름답게 들을 수 있게 두 귀는 쫑긋 열어둬라. 하여 이 밤 모든 것에 감응하도록 온 감각을 곤두세울지니 마치내 오감은 충만해지고 너가 소우주이며 너를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가 너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교감하리라. 나는 너와 더불어 함께 할지니 고되고 힘겹다면 너의 두 어깨를 나에게 기대어도 좋다.

길의 카지노 게임은 과연 있는가. 보기에 따라, 맡기에 따라, 내쉬기에 따라, 듣기에 따라 어디든 당신과 함께 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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