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 #작별인사 , #김영하
감정들이 뭉게뭉게 지나간다. 오래되고 낯선 구름 떼의 습격이다. 무작정 걸어본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내 발 끝뿐, 어디로 당도할지 나는 모른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를 배회카지노 쿠폰 것만 같다.
기다린들 지나갈까, 뛰어 본들 벗어날까.
선의 가면은 무엇을 가리고 있나.
인간다운 것은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한 인간은 포기를 모른다. 무사한 하루에도 끝내 만족하지 못한다. 어른의 인내는 고통의 유효기간을 재는 편협한 경험치에 불과할 뿐, 장막 너머에, 뚝뚝 끊긴 말 아래에, 원시의 감정들은 참아지지 않는다. 집착이나, 공허나 뿌리는 같다. 닿을 수 없는 열락, 연이은 소망, 소유했다는 망상. 그러므로 인간으로 사는 건 꽤나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김영하의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을 고집하는 인간 아닌 존재들의 이야기'다. 고통의 총량을 줄여 공동선에 기여하는 클론, 죽음으로 유한한 생의 이야기를 완결하는 기계, 인간의 욕심으로 태어나 인간이지도 기계이지도 못하고 폭력에 짓밟힌 애완용 휴머노이드, 고통 없는 단일한 우주의식을 살아가는 '달마'.. 이 모두가 계속해서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작가님이 변한 것 같다.
인간 창자 깊숙이 긁어내는 작가님의 글을 좋아했다. 고루한 세계여야 마땅할 사회적 위치에서 경박한 말도 서슴지 않는 지식인 특유의 회의주의, 그 부끄럼 없이 솔직하고 부조리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엘리베이터에 끼인 남자를 바삐 지나치며 자신이 본 것이 망상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지점에서 엘리베이터에 끼여 주객전도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던 소설도, 번개를 맞으러 다니는 괴짜들의 이야기도, 문신을 새긴 몸으로 연신 짧은 말을 내뱉으며 도망치던 어린 청춘의 이야기도 좋았다.
이 소설은 이전 소설과 다르다. 삶과 죽음, 인간성과 인간다움, 영적인 세계관이 담겨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소설의 시작과 끝이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점이다. 영원한 의식으로 살 수 있는 기술이 있는 데도 주인공은 육체의 죽음을 택한다.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육체의 감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축조한다. 단지 인간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그 완결된 이야기로 유일무이한 존재(개별성)가 되어야 비로소 인간다운 것이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관통카지노 쿠폰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천자문이다. 소설은 '천지현황(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우주홍황(우주는 넓고 거칠다)'으로 시작해 '일월영측(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진수열장(별과 별자리들은 열을 이루어 펼쳐져 있다)'으로 끝난다.
다시 말해,
'우주는 검고 밤은 하늘의 본질이다.
시공간은 넘치도록 크고 황량하다.
모든 것은 변하므로 영원한 것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에는 질서가 있다.'
어둡고 황량한 생의 혼돈에 만물의 질서가 있다면, 인생은 편도라는 것이다. 단 한 번 스치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한다. 단 한 번의 붓칠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 한 인간의 이야기가 완결된다. 그러므로 이 헛헛하고 광막한 구름 떼 속에서 아무리 제자리를 배회하는 듯해도 절망하지 말자. 원점은 없다. 한 번 지나간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듯, 모두에게 이야기는 단 한 번, 단 하나, 죽을 때까지계속된다.
* 다만 선이의 철학을 너무 이르게 선언카지노 쿠폰 것은 조금 김 빠지는 기분이다. 소설은 진리를 말카지노 쿠폰 것이 아니라 방황하고 배회하며 진리를 구현해야 한다.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내뱉기보다는, 장면과 묘사, 은유와 구조가 천천히 독자의 가슴에 파고들어 언젠가 발아할 생각의 씨앗 하나를 놓고 와야 카지노 쿠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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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그 무렵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 운동화를 꿰어 신고 나가 달렸다.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았다. 몸이 팽팽하게 조여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석 옆에 떨어져 죽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아직 어린 잿빛 직박구리였다.
p100 의식이 살아 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각성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인식카지노 쿠폰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인식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개의 의식이 찰나의 삶 동안 그렇게 정진할 때, 그것의 총합인 우주정신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그 무렵 선이가 만트라처럼 외우던 말은 이것이었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카지노 쿠폰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p165 마음은 기억일까요. 어떤 데이터 뭉치일까요? 또는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감정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나 그것을 닮은 연산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어지러운 환상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