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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Apr 25. 2025

무지개카지노 게임 흩어진 듀이

<월간 오글오글 : 4월호 몰입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4월호 주제는 '몰입'입니다.




카지노 게임이 문제였다.


이사 후에 거실을 서재화 한답시고 텔레비전을 작은 방으로 보내고,거실에큰 카지노 게임 소파, 아이의 장난감 수납장을 놓았다.


업체에서는 카지노 게임이 거실 인테리어의 핵심이라 생각했는지 책 정리에 심혈을 기울여 마무리해 줬다.


덕분에 매우 화려한 카지노 게임이 탄생했다.

빨간색 노란색으로 시작해서 검은색으로 끝나는 한 칸

하얀색책으로만 꽂힌 한 칸

미니북부터 시집까지 사이즈가 점점 커지는 사이즈별 카지노 게임 한 칸


이 예술적인 모양새는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배열이었다.


작은 책부터 큰 책까지 사선으로 꽂힌 모양이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켰고

빨간색에서 옅은 주황, 그리고 노란색으로 넘어가는 책들이 무지개 같았다.


거실 속에 퍼져나가는 이 무.지.개.같.은. 배치는 짝꿍책들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


색깔이 흑백으로 서로 대비를 주며 두 권으로 나온 '선의 나침반' 1권과 2권이 저 멀리서 서로 견우와 직녀를 바라보듯 멀리 떨어져 있었고


논문을 쓰느라 모아놓고 흐뭇해했던 존 카지노 게임의 책들이 여기저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박혀있었다.


'민주주의와 교육'은 덩치가 큰 김용옥의 '논어 1,2,3'과 '성리학의 개념들'과 함께,

'경험과 교육'은 키작은 시집들과 수줍게 꽂혀있었다.

속이 꽉 막혀왔다. 카지노 게임책의 이런 신선한 배치라니.

도서관학의 아버지 멜빌 카지노 게임가 통탄할 노릇이었다.



흐린 눈으로 살아보려 했으나 이대로 지나칠 수가 없어카지노 게임을 새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딱 한 시간만 할게. 끝내고 생일주 한잔 합시다."

불혹이 되던 날,혼란한 카지노 게임의 유혹에 빠져 책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가장 양이 많은 철학책들을 한데 모은 후 도덕교육, 문학, 사회과학, 육아책들로 분류했다.

한강, 유시민, 신영복의 책은 작가별 섹션으로 집어넣었다.


책 정리는 짝 맞추기 같았다.

신영복의 '담론'과 '강의'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나무야 나무야'를 찾아서 나란히 놓았다. 네 권을 모아놓고 바라보니 속이 시원했다. 거대한 화투를 치는 느낌이었다. 같은 거 세 장을 싸놓고한 장을 뒤집었을 때 싹쓸이 한 기분이랄까.


같은 계열로 분류한 책들의 규모를 어림짐작해서 분야 별로 카지노 게임에 끼워 넣는 순간 묘한 카타르시스가 밀려왔다. 테트리스를 하는 것 같았다. 작은 덩어리, 큰 덩어리를 한 칸에 밀어 넣어서 딱 맞았을 때의 기쁨이란.


오래된 책을 만지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나랑 잘 어울리는 시집이라며 지나간 그가 빌려준 '입 속의 검은 잎'이 어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며 한 장도 펼치지 않은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십 년 동안 고독하게 닫혀 있었다.


그렇게 짝 맞추기, 테트리스, 추억놀이를 하며 책을 정리해 나갔다.


눈에 가장 거슬린 부분만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벌써 네 시간이나 흘렀다니.


잠시 멀리 떨어져 카지노 게임을 둘러보는데 그제야 손목이 아팠다.

이사하느라, 아이를 들어 올리느라, 진작에 고장이 났었더랬다. 통증도 잊고 연신 책을 빼고 꽂고 있었다.

옆으로 움직이려는데 엄지발가락이 화끈거렸다. 물집이 잡히기 직전이었다.

첫 번째 칸에책을 집어넣느라 까치발을 해대서 실내화를 신고 있었는데도 발가락이 빨개졌다.


뭔가에 이토록 집중한 시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생일도, 아픔도, 약속도 잊고 책만 꽂아댔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는 순간을 얼마 만에 맞이한 건가.

나를 망각하는 기쁨이 이런 건가.


아니다.


나를 잊은 게 아니라 나를 찾은 거였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를 쫓아다니고

아이 물건을 검색하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며

아이만을 위해 존재하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쓴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지며 저절로 그곳에 빠져들었다.

그건 나에게로의 방문이었다.

과거의 사랑,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바람까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와의 짧은 만남이었다.




꼭대기 층에 동양철학, 서양철학책이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매우 찝찝한 채로 꽂혀있지만

언젠가 또 느낄 카타르시스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아직 손대지 못한색깔별 책들이 아랫 칸에 남아있었다.

다시 보니, 그 무질서한 배치가 썩 괜찮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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