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ec 2024
처음에는 카페에 있었다. 노트북 모니터가 고장난 것에 대해 짜증내고 있었을 때였다. 카톡이 재난문자처럼 울렸다. 계엄령이 한국에 발표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잘 와닿지 않았다. 내가 지금 한국이 아닌 영국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비상 계엄령’이라는 다섯글자가 주는 무게가 잘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 사람 죽이는 계엄령이 24년도에 발표될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빠르게 채팅방과 기사를 번갈아보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소름끼치는는 현실이 등 뒤에서 서서히 다가왔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나를 카페 사장님이 걱정하기에,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와이파이가 터져서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신났다, 고 카지노 쿠폰했다. 친구들과 느낌표가 가득한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텔레그램을 파서 혼란에 가득찬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공중파 생방송을 보는 것도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일이라고 카지노 쿠폰했다. 잔뜩 허공에 떠오른 뇌를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국회에서 해제안을 가결해 일이 일단락되고 비를 맞으며 중국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찬물을 맞은것처럼 뇌의 가스가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번도 신나지 않았다. 떨리는 몸이, 굳은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팔다리가 신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무서웠다. 무서운 일을 신난 것처럼 위장해 피하는 버릇이 있다는걸 그때 알았다. 공황이 올까봐 자낙스를 먹었다.
대자보를 써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차피 글 쓰는 건 익숙하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익숙하지 않은건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1학년때 선배가 자꾸 시위하자고 불러대는 게 무서워서 도망을 갔다. 사회운동 동아리에 호기심에 가입해놓고 단 한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나는 활동가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운동권’도 아니다. 아마 일주일에 세 번씩 시위를 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사회에 관심없는 일반 대중으로 카지노 쿠폰할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무심한 것도 아니다. 9시 뉴스 외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나를 광폭한 시위대쯤으로 카지노 쿠폰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은 많지만, 행동하는 것보다 관찰하고 카지노 쿠폰하는 것을 좋아한다. 말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꼭 누군가에게 들려줄 필요는 없다. 부정의에 분노하지만 부정의를 바로잡을 기력까지는 없다. 결국 내가 진짜 중요하다고 카지노 쿠폰하거나 흥미가 있는 일에만 가끔 발을 슬쩍 들이밀고는 한다. “아, 이건 진짜, 누구 죽을지도 몰라” 라고 카지노 쿠폰할 때 말이다. 웃기는 말이다. 모든 광장에서 누군가가 죽고 있는데 어느게 중요하고 어느게 덜 중대할 리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나한테 그걸 판단할 권리가 있으면 안된다. 하지만 내가 모든 걸 신경 쓸 수는 없잖아. 난 그런 성격도 아니라고. 그렇게 부드럽고 자비로운 변명으로 말을 피하고는 한다.
그건 어쩌면 카지노 쿠폰한 걸지도 모른다. 카지노 쿠폰한 나는 모난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기 마련이니, 나는 모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어떤 부분은 사정없이 짓밟힌다. 카지노 쿠폰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회의 군홧발에 뭉게지고 찌그러질 때 부조리함을 느낀다. 부조리함이 내 안에 쌓이고 엉키지 않도록 목소리를 낸다. 너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고, 나는 지금 잘못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소리친다. 비겁하게도 그때가 되면 보인다. 지금 밑바닥에 깔려서 같이 짓밟히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사실 전에도 보고 있고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라고 같이 깔리고 싶었겠는가. 도와주다가 같이 깔리는 것 까지는 별로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당하더라도 네가 침묵하는 것은 특별히 악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비정하고 비겁한 현실은 네게는 자비롭고 부드러운 것이라는 것을.
언제까지 이렇게 되어야 하는가?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시위에 참여할 생각도 없고 활동가가 될 생각도 없다. 그건 너무 지치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대로 우리 모두가 군홧발에 짓밟혀 깔려 죽을때까지 그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너를 짓뭉게는 어떤 현실이, 나를 짓뭉게는 어떤 현실이, 형태가 전혀 다르고 이유가 전혀 다르다는 것은 안다. 우리의 고통에는 각자의 이름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너와 같은 공간에 서는게 너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각자의 이름을 훼손하지 않고도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너의 고통을 모두 이해하지도 도와주지도 못한다. 하지만 대자보에 같이 서명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 피켓을 들고, 같은 연설대에서 발언을 하는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이게 너를 어느정도 위한 일일까. 그것에 카지노 쿠폰 나는 답을 할 수 없다. 네가 답을 해주면 참 좋겠다.
나는 변화에 대한 열정이 그렇게 없다. 가끔 죽을 것 같을때 아, 하고 죽어가는 소리나 낼 뿐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열정도 의리도 없는 사람이 광장에 나오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열정 가득한 투쟁가의 수는 한정되어있다. 열정 없는 머릿수는 의외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변혁의 성공 여부보다도, 네가 그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서 함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카지노 쿠폰 같은 공간에서 비명을 지를 수 있다. 그게 너를 조금 더 잘 살게 할수 있다는 것은 내 오만일까. 우리는 다음날도 밥을 먹고 일터나 학교에 가고 샤워를 해야 한다. 그럴 때 내가 너를 위한 일을 하고 네가 나를 위한 일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결국에 해방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특정인을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