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추구미
최신식 김치냉장고는 다양한 기능을 자랑했다.냉장고 보관 설정에 따라 어떤 칸은 차갑게, 어떤 칸은 덜 시원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설명을들을때는 아~ 하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잊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3번째로 같은 질문이 나왔을땐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사님 목소리가 두 톤정도 높아지더니 말에 슬로우가 걸렸다.
"김치를 오래 두고 먹을거다 그러면 여기, 지금 바로 먹을 거다 하면 여기를 누르세요~ 모르면 건드리말고제가 설정한 그대로쓰세요. 제 말, 이해하시죠?"
문득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들 한석규가 아버지 신구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알려주던 장면.
거기선 끝내 못알아 듣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화를 냈었더랬지.
"제품에 이상 있으면 여기로 전화주세요~"
설명을 못알아 듣는거지 귀가 먹은건 아닌데 얼굴을 너무 가까이 들이대짜증이 났다.
사실 말이 나와 말인데 요즘은 아이들도 나를 답답해하는 눈치다.
사오정처럼 '갖다 주세요'를 '보고 싶어요' 같이 엉뚱한 말로 듣는가 하면했던 말을 처음 하는 말처럼 반복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엄마 그거 전에 한 얘기했잖아' 되닫아치면 무안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새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반감이 갔고 필요에 의해 뭔가를배울 때에도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내 나이 40대중반. 젊지도 늙지도 않았지만 점점 도태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육아가 이토록 고단한 일인줄 몰랐듯노화가 이토록 처절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서서히 오는 건 줄 알았더니 갑자기 와서 더 당황스러웠다. 몸뚱아리는 중력을 그대로 때려맞고 날마다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예보없이 무릎으로 날씨를 맞 출 수 있게 되었고 언젠가부터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어차피 안 나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병의 원인 8할이 노화였다.
몸이 늙는 것과 마음이 늙는 것중 어느카지노 가입 쿠폰 더 최악일까?문득 나이들어좋은것은 정말 하나도 없는 것인지 생각해본다.여기저기 고장나는 몸은 순리임으로 차치하더라도 살아온 세월의 연륜이란건 몸에 새겨지는 것이거늘,늙어서 좋은 것이 설마 하나쯤은 있겠지..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모든 감정이 극단적이었다. 좋을땐 너무 좋았지만 슬플땐 세상이 끝난것처럼 굴었다. 넘실대던 감정의 파도는 세상의 풍파를 맞으며 잠잠해졌다. 이제 웬만한일은'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로 귀결됐다. 그렇게 생긴마음 속의 여백은 젊을땐 모르던 평온함을 가져다 주었다.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반짝이는 것만 쫓던 시절에는 몰랐던 행복. 가족들과 먹는 따뜻한 밥 한끼, 햇살좋은 날의 산책 ..가끔은 좋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
취향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더는 눈치보느라 억지로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카지노 가입 쿠폰 나를 편하게 하는지분명해졌다.
연륜은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할 줄 알게 되었고 모든 삶 앞에 겸손해졌다. 나로 사는 인생만큼 누군가에게 쓰임 받는 인생도 가치있단 것을 아이를 키우며 배우게 됐다.
그렇게 영원히 크지 않을 것 같았던 내 안의 소녀는 천천히,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늙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일이다.
혹 여든즈음 이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귀엽다고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여전히 내일의 기대로 가슴 두근거리는 사람이기를,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