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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8. 2025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밤에'라는 시

박준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 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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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병원 장례식장에 정차합니까 하고 물으며 버스에 탄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가 운전석으로 가서는 서울로 나가는 막차가 언제 있습니까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한참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내일 첫차는 언제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박준 시인의 신작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를 펼쳐 제목들을 훑어 나가다가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밤에'라는 문장에 딱 꽂혔습니다. 예전에 MBC TV에서 성우가 프로그램 예고편 낭독하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은 성우의 목소리처럼 명랑하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아는 박석고개에 있는 일신병원 장례식장에 가는 남자가 운전기사에게 행선지를 묻고 거기서 늦게까지 문상을 하고 나오려는 듯 막차 시간을 묻고, 결국엔 밤을 새워야지 결심하고는 다시 첫 차 운행시간을 묻는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시였습니다. 시인은 이런 존재이죠. 장례식장에 들러 가는 평범한 버스 안에서 평범한 한 남자의 질문과 이어지는 감정의 변화를 무심하게 포착해 단박에 인생의 메타포로 밀고 들어가는 괴력을 지닌 사람. 더구나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밤에, 라는 제목의 가벼움을 배반하는 역설적 아이디어는 이내 멋진 시를 읽는 즐거움까지 선사합니다.


박준 시인은 이렇게 죽음 근처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잡아내는데 능하죠.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도 그랬습니다. 이 시집엔 어쩐 일인지 자살을 하려고 손목을 깊게 그었던 남자와 시인이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조용히 먹고 마시기만 하던 시인이 처음 던진 질문은 '왜 하필 봄에 죽으려고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참 사교성 없고 황당한 질문이죠. 그런데 남자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라며 웃거든요. 그리고 시인은 ‘마음만으로 되지도 않고 내마음 같지도 않은 일이 봄에는 널려 있다’라고 시를 끝맺습니다. 황당하죠. 아니,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순식간에 이렇게 처연한 계절로 만들어버려도 되는 겁니까.


박준 시인은 매번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시를 발견하기 때문에 전업 시인을 꿈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는 삶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봐야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시대와 동떨어진 채 보편의 지점을 찾아낼 혜안이 없다고 겸손해합니다. 기자나 작가가 취재하듯 세상과 딱 붙어서, 자신의 시를 읽어 주는 독자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같은 걸작을 쓸 수 있었던 거겠죠. 데뷔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박준을 시인계의 아이돌로 만들었던 이 시집 제목은 시인이 부산 영도의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를 생각하며 ‘당신은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썼던 시입니다.


참, 이번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엔 장례식의 슬픈 풍경과 사연을 독백으로 그린 '상'이라는 탁월한 시도 있습니다. 이 시도 참 좋은데...... 이건 책을 사서 읽으세요. 함민복 시인이나 이정록 시인이 얘기하듯 시집은 국밥 한 그릇값도 안 되지만 그래도 시집의 인세는 언제나 시인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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