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카지노 게임
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촉촉히 젖은 도로 위로 흙냄새가 스며오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땅과 공기가 뒤섞인 차분한 냄새가 폐 깊숙이 내려앉았다.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고, 기온은 5월 답지 않게 선선하다. 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쌀쌀하다. 하지만 그 낯선 서늘함 속에서 오히려 봄이 더 오래 머물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반갑다. 이렇게 봄이 길어지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매년 뉴스에서는 어김없이 ‘역대급 폭염’ 이니 ‘최악의 한파’니 하는 말로 겁을 준다. 그런데 막상 떠올려 보면 정말 그랬던 해가 있었나 싶다. 지난겨울은 유독 길었다. 4월까지도 눈이 이어졌다. 보통 눈도 아니고 함박눈이 내렸다. 그렇게 요란했던 겨울의 끝에서 봄은 조용히 기지개를 켰다. 조금씩 기온이 오르더니, 거리에 색이 돌기 시작했다. 개나리도 목련도 벚꽃도 서로 앞다퉈 피어올랐다. 마치 봄을 알리려는 듯 한날한시에 거리에 생기가 가득해졌다.
보통은 꽃이 질 무렵,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그 바람을 따라 여름이 성큼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봄도 그렇게 물러갈 줄 알았다. 며칠만 선선하겠지, 금세 후끈해지겠지 싶었는데, 이번 봄은 조금 달랐다. 이상하리만큼 길고, 서늘하다. 아침 공기에, 젖은 흙냄새에 자꾸 마음이 간다. 어쩌면 이 기분 좋은 냄새와 온도가 조금은 더 오래 머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괜한 기대지만, 그조차도 좋다.
이 감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 말랑하고 또렷한 기쁨을, 내 언어로 조용히 카지노 게임하고 싶었다. 익숙한 말일지라도 내가 직접 고른 단어로 지금의 온도를 써 내려가고 싶다. 쓰는 일은 어쩐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었다니, 올봄만큼이나 낯설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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