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으면 그땐 어떡해야 하나
오늘은 오랜만에 할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 했다.
도화선이 된 건 아마 아침에 유튜브로 본 설교였던 것 같다. 목사님께서 죽은 자는 듣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던 중이었다. 그 사실을 작년에 절절히 느끼셨다고, 부모님의 입관 때 아빠, 엄마, 하고 목놓아 부르짖었지만, 차갑게 식은 뺨에 얼굴을 가져다 대보았지만, 그분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요점은 그게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입관을 상상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할머니의 육신이 아직 이 땅 위에 남아있을 때 그걸 보고 만질 수 있었기를 갈망해 보았다. 허공에 부르고 그리워 하고 눈물 흘리는 대신에, 할머니의 본질은 이미 거기 없더라도, 빈 껍데기뿐이더라도, 아무리 싸늘히 식어 있더라도, 한 번만 만져볼 수 있다면. 차가운 뺨이라도 손끝에 느껴볼 수 있다면 무(無)보다는 따뜻하지 않았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할머니는 내게 정말 많은 사랑과 감사와 기쁨을 주셨지만, 평생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후회 또한 맛보게 하셨다. 마음을 언어로 옮기면 그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는 게 보통인데, 나의 후회는 간결하고 정확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문자 그대로가 나의 후회 그 자체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한 자 한 자 가슴 깊숙이 선명하게 새겨져 자꾸 되뇌이게 되는 나의 후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절대 오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비행기표를 바꿔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러 갈 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엄마와 이모에게 할머니가 깼을 때 전화해 달라고 부탁해서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텐데. 여기가 나성이라며 주변을 카메라로 비춰 보여드릴 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석사논문을 다 쓰자마자 코로나 따위는 무시하고 바로 할머니를 보러 갈 텐데. 남자친구도 데려가서 할머니에게 소개해 드릴 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대구에 갈 때마다 할머니에게 더 많이 말을 걸고 더 오래 손을 잡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텐데. 늘 드시는 꿀꿀이죽밥 같은 스무디 대신에 서로 어울리는 맛있는 과일들로 스무디를 만들어서 떠 먹여 드릴 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바보 같은 석사 따위는 집어치우고 대구에서 작은 회사에 다니며 매일 매일 할머니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살 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카지노 쿠폰 할머니가 크게 다치신 모든 순간들로 돌아가서 다치시지 않게 내가 꼭 잡아 드릴 텐데.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은 까닭은 우리의 시간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뿐 지금처럼 벼락맞은 듯이 알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죽음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이다.
그래서 죽음에 의한 이별 또한 절대적이고 압도적이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으면, 그때는 도대체
도대체 어떡해야 하나.
사실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이 후회의 바다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내가 붙잡은 지푸라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내 삶을 바꾸는 것. 내 삶을 극적으로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더 이상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이유가 할머니가 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의 이 처참한 이별에 최대한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직 특별히 변화하거나 특별히 행복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치 오래 전부터 할 일 목록에 적혀 있던 항목마냥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품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댓가를 치르고 시간의 유한성과 비가역성을 배웠으니, 그걸 잊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매 순간을 가치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 최대한 사랑하고 최대한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것. 할머니는 예수님을 믿었다. 나는 사실 그렇지 못하다. 천국이 있어서 할머니와 재회할 수 있을지, 내 모든 걸 바쳐서 소망하지만 확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만 확신하는 건, 천국이 있다면 할머니는 그곳에 계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할머니가 아니라 나에게만 신앙심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천만 배 더 힘들었을 거다. 천국에 가서 할머니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조차 없었을 테니까. 천국이 있기만 하다면 할머니는 거기 있을 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음에 새삼스레 감사하다. 아무튼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예수님을 믿고자 노력하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 신앙을 가지려는 나를 예수님이 어떻게 보실지는 잘 모르겠다. 부디 좋게 봐주셔서 신앙심도 주시고 천국에도 들여보내 주셨으면 한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으면, 어떻게든 그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이별을 견디어야 한다. 견디는 수 밖에는 없으니까. 나의 지푸라기들이 나를 이 바다에서 구해 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