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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Apr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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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41) 엄마, 아프지 마요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감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웬만한 어른 주먹 두 배 정도는 돼 보이는 큼지막한 아이다호 감자다. 삼분의 일 가량은 잘게 썰어 볶음밥에 넣고 나머지는 채를 썰어 볶아먹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문득 어릴 적 먹던 감자전이 떠올랐다. 엄마가 직접 갈아 만들어주시던 그 맛이 나기를 기대하며, 나 역시 강판을 꺼내어 남은 감자를 갈기 시작했다.


얼마 갈지도 않았는데 팔이 아파왔다. 왼팔로 바꾸자 왠지 어색한 느낌에 손을 다칠 것만 같아 다시 오른팔로 감자를 넘겼다. 5분이나 되었을까, 꾹꾹 눌러 갈고 나니 손바닥 정도 크기로 두 장은 부칠만큼의 재료가 준비되었다. 걸쭉하게 갈린 감자를 보며 아픈 팔을 주무르다 보니 어릴 적 엄마가 감자전을 해주실 때면 왜 항상 직접 갈아 만든 거라고 강조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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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전에 밀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해주시는 감자전이 나는 참 좋았다.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좋아하는 나에겐 사실 그만한 간식도 없었다. 엄마는 감자전을 만드실 때면 믹서기를 사용하는 대신 꼭 직접 강판을 꺼내 갈아주셨다. 믹서기 날로 가는 것보다 강판으로 가는 게 더욱 식감이 좋다고. 믹서기로 갈아 만든 감자전을 먹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 둘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직접 갈아주신 감자전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갓 구워진 뜨끈한 감자전을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고는 맛있어요를 연발하면 엄마는 이게 직접 손으로 갈아 만든 거니 맛있을 수 밖에라고, 자동반사처럼 늘 해오시던 말씀을 역시나 또 하셨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 말씀을 꼭 덧붙이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직접 갈아보니 나 역시 그 말이 입에 쩍쩍 붙는다. 아이가 뜨거운 감자전을 호호 불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묻지도 않은 그 말이 내 입에서도 나온다.


"맛있지? 이거 아빠가 직접 갈아 만든 거야."


미국에 온 지 9개월, 찬장에는 늘 감자가 한두 알 정도는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감자전을 부쳐먹을 생각이 나진 않았다. 주로 깍둑썰기로 잘라 볶음밥이나 찌개, 카레 정도에 넣었을 뿐. 그런데 오늘, 왜 하필 오늘은 감자전이 떠올랐을까.






엄마는천만도시서울에혼자계신다. 그북적대는대도시에서, 여전히크고작은성당활동으로분주하게사람들과교류하고계시지만큰아들은영국에작은아들은미국에살고있으니엄마는혼자서울에살고계시는셈이다. 세상이좋아져언제든맘만먹으면영상통화를할수있기에일주일에한두번정도는얼굴을보며안부인사를드리지만, 그래도엄마는혼자계신다.


전화를드리면대개바로받으시거나못받는경우엔어떤사정으로못받으셨는지곧장문자를주시는데가끔은받으시지도, 문자를답을주시지도않을때가있다. 낮잠을주무시는줄만알았는데몇차례그런일이있고반복되고나서야알게되었다. 답을하지않으실때는대개엄마가어딘가편찮으실때였다. 목소리뿐아니라얼굴표정까지드러나는영상통화를하게되면그걸들킬까봐, 멀리서아들이걱정할까답을하지않으시고는내가잘시간에잘지내니나중에통화하자는문자를남기셨다.




지난주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셔 다음날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화면 속 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아 보였다. 1년 이상 엄마를 괴롭혀온 아토피가 나을 듯 말 듯하다가 또다시 심해진 모양이다. 괜찮다 말씀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정말로 안 괜찮아 보여 한 걸음에 서울로 내딛고 싶었지만, 내가 간다 한들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자조 섞인 한숨만 나온다. 전화라도 자주 드리자 생각해 보다가도 엄마도, 내 마음도 불편하기만 하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며칠엄마걱정에마음이좋지않더니, 그래서였을까? 엄마가해주시던감자전이떠오른것은. 강판에꾹꾹눌러감자를갈다보니팔이아프다가도문득문득헛웃음이새어나온다. 왜그렇게직접갈아만드셨다고강조를하셨는지, 나는또왜그말을반복하고있는지.


기계가아무리편하다한들직접손으로만들어야더맛있다던그말씀이맞는지틀린지는잘모르겠지만, 아무리세상이좋아져영상통화가쉬워진다한들직접만나손을잡아보고, 안아도보고, 마주앉아나누는대화가더맛있는지정도는이해하게되었다. 원래알던사실이라도어떤것들은종종더뚜렷하게알게되는기분이드는데요며칠이그랬고, 오늘감자전을먹다보니더욱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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