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별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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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Apr 07. 2025

카지노 쿠폰 받은 유산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나 외에 한 명의 자식이 더 있다.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른다.형은 운동선수였다. 어려서부터 합숙생활을 했기에, 나는 집에 홀로 있을 때가 잦았다. 학장시절 교과서만 읽었던 나는 안경 쓴 샌님이 되었고, 단체생활 속에서 서후배 관계가 돈독했던 형은 마당발이 되었다.자라면서 마주 앉아 하나의 주제를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흐릿하다. 형제지만관심분야도 달랐고 성장환경도 달라서,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다. 형이 친구들과 늦은 밤 동네 포차에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방학이라고 고향에 온 내가 온종일 집에 머무는 게 마음에 걸렸던지 맥주 한 잔 하자고 불렀다. 형 친구들과 인사하고 이런저런 기억나지 않는 얘기를 나누던 중 한 명이 형에게 말했다.

"이번에 동생도 데리고 가자!"

아마도 친구들끼리 여행을 계획했던 모양이다. 무료해 보였던 내가 측은해서였을까, 선의로 나를 포함하자는 말에 형이 버럭 답했다.

"'데리고'가 뭐냐. '같이' 가자고 해야지."

평소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형의 말투에서 형이 언어에 민감하다고 여기지 않았다.그런데 이 兄 뭐지?
아마도 내가 형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등학생이었을 때 형이 나를 창동 코아양과로 부른 적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고려당으로 가는 길 왼쪽으로 작은 사잇길이 있는데, 거기 경양식당에 갔다. 삐죽이며 수염이 나기 시작하던 남자 둘이서 돈가스를 주문했다. 나는 신기한 눈빛으로 국이 아닌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먹었고, 소스가 뿌려진 커다란 돈가스를 보고는 형의 움직임을 살폈다.포크와 나이프를오른손과 왼손 중디에 보내야 하는지몰랐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형을 통해 신문물 경험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만날 때면 항상,

"형제라고는 너희 둘밖에 없으니,
우리가 없어져도 잘 지내라."고 하신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서 살기도 하거니와 관계에 능숙하지 못한 내가 형에게 실수할까 걱정이신 모양이다. 조카들이 '삼촌'이라 부르는 이들 중 친밀도를 매긴다며 유일한 혈족인 나의 순위는 아래에서 찾는 게 빠를 것이다.그만큼 형에게는 동생들이 많다.


지만내게는 유일한 형이기에 부모님의 의도와는 다른 이유로 남은 생카지노 쿠폰도 형에게 좀 더 앵길 것이다.

부모님은 형제간의 애를 유언처럼 말씀하시나,
(쉿!현실에서 형은 부모님이 내게 주신 카지노 쿠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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