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파
품종: 파
나이: ?
파 한 단 사서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보관해 두는 건 우리 집 연례행사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딱 그 정도 빈도다. 즐겨 먹진 않지만 가끔은 필요한 재료. 그게 우리 집에서 파가 지닌 지위다.
손질할 때 눈이 매운 채소로는 단연 파가 최고가 아닐까 싶다. 양파도 마늘도 고추도 따라오질 못한다. 그래서 파를 다룰 때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 바로 물안경이다. 예전에 수영을 배우겠다고 샀다가 서랍에 처박아 뒀던 것을 파 다듬을 때 쓴다. 일 년에 한 번, 평소엔 하지 않는 특별한 복장을 갖추고 하는 일이니 더더욱 연례행사처럼 느껴진다. 손질이 끝나면 환기도 해야 한다. 환기가 충분히 되기 전에는 물안경을 벗어서는 안 된다. 공기 중에 여전히 매운 성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래 큰 행사에는 여운이 있는 법이다.
파를 화분에 심으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는 이야기는 벌써 오래전부터 들어 왔다. 타고난(?) 식집사인 나는 호기심이 끓어올랐지만 한 번도 파를 화분에 심은 적은 없었다. 첫째로 직접 먹을 만한 파를 길러낼 건강한 흙이 없었고, 둘째로 심기만 하면 쑥쑥 자란다니 먹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를 못 따라갈 것 같았고, 마지막으로 파 뿌리가 육수를 내는 데 그만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전냉동실을열어보니작년에다듬어둔파뿌리가냉동실에그대로들어있었다. 나는파뿌리로육수를낼역량이못되는것이다. 어차피파뿌리는쓸줄을모르고자라는속도가너무빠르면지금처럼냉동실에넣어두면되니이번에는파한뿌리만심어보기로했다. 건강한흙이없는건여전하지만너무따지지않기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