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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brielle Feb 09. 2025

카지노 쿠폰 퍼펙트 데이는 없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를 보고, 카지노 쿠폰보단 인생을 살기로 했다.

2025. 01.31



영화 카지노 쿠폰 데이즈 (2024)


감독 빔 벤더스 / 출연 야쿠쇼 코지

줄거리 : 도쿄 공공시설 청소부의 잔잔한 카지노 쿠폰 속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닥친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힐링 영화라 말한다.


영화 초반부, 공공시설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걸 왜 그렇게 열심히냐”는 후배의 핀잔에도 묵묵히 일을 하고, 틈틈이 나무와 햇살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쉬는 날이면 중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빈티지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듣는 게 취미인 이 남성의 하루.


반복되는 카지노 쿠폰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요하고 평화롭고 어쩌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 잔잔한 카지노 쿠폰을 일렁이게 만드는 사건들이 생긴다. 가출한 조카 니코의 등장, 동료 후배의 갑작스러운 퇴사, 단골 술집 사장의 전 남편과의 만남. 작은 파동들이 모여 파도를 이루듯 주인공 히라야마도 우리가 알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목소리 한 번 듣기 귀하던, 표정의 변화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던 히라야마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미소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표정으로 출근길에 오르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게도 회사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때가 있었다. 이 시절 내 마음도, 인생도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내 카지노 쿠폰밖에 없었다. 눈을 뜨면 한강을 달렸고, 러닝 후 집에 오는 길에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사 온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매 끼니는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먹었다. 독서, 뜨개질, 꽃꽂이와 같은 취미로 시간을 보내다 저녁엔 매일 헬스장에 들러 다시 땀 흘리며 운동했다. 분명 그 시절 나의 카지노 쿠폰은 충만했고 이런 게 행복이라며 자위했다.


되돌아보니 당시의 불안과 아픔을 평화로운 카지노 쿠폰으로 잘 포장했는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카지노 쿠폰의 행동 하나하나를 벽돌처럼 켜켜이 쌓으며 방어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하나라도 깨어지는 날에는 괴로움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픔도, 슬픔도, 불안도 잠시 저 뒤편으로 미뤄뒀을 뿐 언젠간 마주해야 할 나의 몫이었다.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까. 무엇이 더 인간다운 삶일까. 히라야마의 카지노 쿠폰은 평화로웠지만 인생은 진정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반복되는 카지노 쿠폰의 소중함, 안온한 카지노 쿠폰 속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히라야마는 엔딩씬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상처받은 히라야마에게 한 번 더 상처받을 기회가 생기길. 희로애락을 느끼며 한 번 더 인생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길 용기가 생기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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