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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Apr 09. 2025

카지노 게임의 소원 3가지

카지노 게임과 행복

카지노 게임에게 3가지 소원이 있었다.

육지에서 사는 것, 대학에 가는 것, 시인이 되는 것.

관식은 그중에 하나는 이뤄주겠다고 했다.

3가지는 불가능하고 하나라도 이뤄주려 애쓰겠다고 했다.

거짓말이나 허튼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카지노 게임은 '빈말이라도 다 해주겠다고 해야지'라며 울었다.


카지노 게임의 소원을 살펴보자.


왜 육지에서 살고 싶었을까.

육지가 좋아서가 아니다.

바다가 두렵고 미워서다.

바다는 카지노 게임의 소중한 존재들을 다 앗아갔다.

그래서 바다를 떠나 뭍에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뭍은 고약했다.

첫 가출로 흑역사가 펼쳐졌고, 뭍에서 사는 사람들은 매정했다.

결국 노년에 카지노 게임가 쏟아낸 속마음은 바다였다.

하고 싶은 말을 쓰라 했을 때 그냥 바다를 칠해버렸다.

애증이 사라진 순간이었으리라.


왜 대학에 가고 싶었을까.

빛나고 싶었다.

가난을 벗어나 자신을 빛내는 길이 대학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적을 당하고 대학진학은 막히게 된다.

딸 금영이 서울대를 가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한다.

그러나 서울대에 가는 것으로 열릴 줄 알았던 영광은 착각이었다.

개천에서 나는 용은 현실에서 마냥 빛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욕망이 사실은 집단적인 착각이고 허망한 것일지 모른다.


시인이 되려는 꿈은 내면세서 솟아난 것이었다.

육지나 대학이 결핍을 거스르는 꿈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결국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의 시가 드라마가 된 것이다.

자아실현이다.


우리가 가지는 그 많은 바람에도 허실이 있다.

막상 이루고 보니 허망함만 남는 바람이 많다.

이루지 못하면 한이 남고 이뤄도 허망하기만 하다.

이것이 허망한 꿈이다.

실한 꿈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의미가 있고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내 어릴 적 꿈은 판사였다.

판사가 되어 약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위인전을 읽고 슈바이처 박사처럼 살고 싶었던 마음은 숨겨야 했다.

이미 꿈이 판사라고 주변에 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판사가 아닌 상담자의 길을 걸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사실은 더 확실하게 이룬 셈이다.

판사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만나며 꿈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꿈의 겉모양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카지노 게임의 삶도 애초에 꾸었던 꿈과 완전히 다르게 펼쳐졌지만 카지노 게임은 행복했다.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공감되는 이유다.

가상적인 드라마에 진심을 담으려 했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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