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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pr 21. 2025

식은땀 나는 카지노 게임 한마디(feat. 드릴 말씀)

안 들린다 안 듣고 싶다

"팀장님, 저.... 카지노 게임 말씀이 있는데요."

카지노 게임 A가 내 책상 옆으로 쭈뼛쭈뼛 다가오며, 힘겹게 한 마디를 꺼냈다. 반쯤은 침통하고 또 반쯤은 비장한 표정이다. 팀장 N연차가 되니, 얼굴과 몸짓만 봐도 무슨 얘기를 꺼내려나 대충 짐작이 된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이번만큼은 제발 내 예상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속으로 빌며, 조용한 회의실로 이동했다.

A는 다시 한참을 뜸 들이다가, 내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실은.... 제가.... 이번 달까지만...."

어이쿠. 로또 당첨 예감은 한 번도 맞은 적 없으면서, 쓸데없이 이런 슬픈 예감은 백 프로 적중이다. 팀장님한테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팀원을 보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다른 회사에 합격했으니, 인수인계 얼른 하고 퇴사하겠습니다."이다. 이걸 어쩌나. 말릴 수도 없고 잡을 구실도 없다. 가뜩이나 부족한 인원으로 팀을 꾸려가고 있는데, 나 큰일 났다.


예상컨대 팀장들의 PTSD 유발 문장 1위는 바로,'드릴 말씀'으로 시작하는 카지노 게임 말이 아닐까 싶다.

십중팔구 부정적인 주제가 훨씬 많다. 퇴사나 이직, 부서 이동 등을 통보할 때, 인트로(intro)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다. 드릴 말씀이라는 두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며 이런 생각이 든다.

'제발 제발 그 카지노 게임 말씀 좀, 안 드리면 안 될까? 안 들린다~~ 안 듣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드릴 말씀으로 시작한 문장은 깊은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작던 크던 팀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퇴사에 대한 내용만은 아니다.

"카지노 게임 B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요즘 불면증까지 와서 잠도 잘 못 자고 업무 집중도 못 하겠어요."

팀원 입장에서는 혼자 엄청 고민을 하다가, '드릴 말씀'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설명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얘기들을 꺼내기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다.B와 카지노 게임 잘잘못 여부를 떠나, 팀장에게 얘기하기까지 고심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줘야 한다.


드릴 말씀으로 시작하는 대화에 대한 팀장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적극적으로 팀원의 퇴사를 말리는 팀장, 육아휴직을 지금 말고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가는 게 어떻겠냐 권하는 팀장, 불화의 원인이 된 팀원과 다른 팀에 배치해 준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팀장 등등. 겉으로는 차마 팀원 앞에서 화는 못 내지만, 자신의 동료들과는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는 팀장도 있다. 팀장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팀원의 표현에 서운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되돌려 놓고 싶기도 하다. 특히나 그동안 마음속으로 에이스라고 점찍은 팀원이 갑자기 이직한다고 하면, 배신감까지 들 정도다.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갑자기 헤어지자 말하는 연인을 보는 느낌이 든다. 네가 어쩜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악을 쓰고 싶어진다. 물론 여기는 회사라, 속으로만 피눈물 흘리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고? 이건 나도 직접 겪었던 이야기이자, 동료 팀장들로부터 자주 듣는 푸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퇴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드릴 말씀의 이야기들은 팀장에게는 대부분 충격이 세게 온다.


카지노 게임 말씀에 대한 팀장의 적절한 대처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일단, 팀원이 어떤 말을 꺼내던 들어야 한다. 말을 중간에 끊지 말고,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도, 그냥 듣는다. 듣다가 어느 순간 정적이 흐르면, 그때는 궁금했던 것들을 한 개씩 물어본다. 비난이나 추궁이 섞인 질문은 금지다. 잔소리 역시 금지다. 팀원이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어떤 것들이 힘들었는지 듣는 것이 중요하다. 비단 내 속은 문드러지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가 이직한다는 회사가, 우리 회사보다 100배는 안 좋은 곳이라도 말이다. 만약 진심에서우러난 조언을 하고 싶다면, 모든 대화가 끝난 뒤 동의를 얻어서 해보자.

"김대리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충분히 그 상황에 공감하고, 결정 내리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네. 괜찮다면 내가 한 마디만 조언을 해도될까?"

마음을 다한 대화에도 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결과가 그대로라면, 그때는 정말 렛잇 꼬우다. 나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이고, 앞으로의 행복을 빌어줘야 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이런 식의 대화를 할 줄 아는 팀장이었다면, 미연에 이 상황을 방지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 아무리 바빠도 팀원과 정기적으로 1:1 대화를 하며, 그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팀장의 모습 말이다. 만약 팀장이 경청을 잘해, 팀원의 의견이 수용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드릴 말씀'의 대화는 줄어들지 않을까. 팀장이 팀원을 평소에 인정하고, 그의 성장을 위해 같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게 어려워서 나 역시 잘 못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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