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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Apr 28. 2025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해부

진실: 내가 믿고 싶은 것의 선택


관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너의 성공은 나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우리 가족은 눈 덮인 산아래프랑스 산골 마을에 산다. 어느 날,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갔다가돌아오니집 앞마당에 아빠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다.

아빠가 죽은 것 같다. 경찰이 오고 엄마가 아빠를 죽인 살해용의자라고 한다. 나는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위로받을 사이도 없이, '자살한 엄마'와 '아빠를 죽인 엄마' 둘 중 하나의 진실을 결정해야 한다.

아빠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한 번으로 끝났는데 엄마와 나는 매일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고 해부된다.


당신이라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법정 스릴러물,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의 실체 규명이라는 외피로 시작한 영화는 심리극, 작가론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해부'는 단순히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의 해부만이 아닌 부부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족의 붕괴, 작가론과 표절 등 예술과 창작(자)의 윤리관까지 다층적카지노 게임 사이트 묻고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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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특히 같은 직군에서 일하는 부부의 재능과 사회적 성취도가 다를 때 발생하는 가정 내 힘의 불균형과 좌절감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남편 살해 용의자가 된 산드라는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했고 성공한 인기 작가다.감성적이고 감정형인 F형 남편과 달리 그녀는이성적이고자기 일 우선의,공감 능력이 부족한 T적 성향이다.(영화에선 '프랑스 남자'와 '독일 여자'로 표현된다.)

이런 묘사는 관객이 주인공에게 이입할 감정을 차단한다. 형사나 검사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한다. 심지어 오랜 지인인 변호사와 아들도 산드라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듯하다.


영화 초반, 관객은 남편의 시선과 정서로 산드라를 보게 된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가정, 가족에 더 헌신적일 때 그것은 자발적인 것만은 아닌, 누군가의 더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남편의 눈으로 본다. 그러다 영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새로 묻게 된다.

산드라가 자기 일에 충실하고욕망에 솔직하다고 해서 남편과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남편이 글을 못 쓰는 것은 부인의 성공과 다친 아들 탓으로만 돌리는 무력한 핑계아닌가.자신을 따라와이방인으로 사는 부인의 외로움을 방관한 건 아닌가.


영화상 역할 설정을 서로 바꾸어 다시 보자. 남편 사무엘을 자기 일이 최우선인성공한 작가로, 부인 산드라는 자기 꿈보다 가족이 우선인 가정적 주부로.

사무엘도 산드라의 원래 역할을 볼 때처럼 이기적이고 냉정하게만 보일까? 자기 직업에 투철하고 섬세한 예술가 남편과 아버지 정도로 수용하며 봤지 않았을까.

검사가 이기적이고 야망 있는 부인이 희생적인 남편과의 불화 끝에 계획 살인을 했을 거라 주장하자 변호사는 이렇게 반박한다.


산드라의 유일한 죄는 실패한 남편 옆에서 성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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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의 가정 내 역할과 사회적 성취도의 성별 구조역배치하는것은,감독의 전작 <시빌에서도 보인다.

영화에서 남자 직업으로 많이 나오는 전문직인 의사, 작가, 감독 모두가 여성으로 그들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축이다. 남자들은 선명하고 입체적인 여자 캐릭터들과 비교해 배역상의 직업, 비중과 상관없이 매력 없고 부수적으로 표현된다. 또, 두 영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남편이 아닌 부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해부에서는 연인, 부부간의 사회적 성취도와 실패로 발생하는 열등감과 좌절을 <시빌에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남편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보다 살아있는 가족들이 더 심층적으로 해부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한다.


죄책감: 희생과 원망 사이

영화 속 남편을 보며 어떤 책 속의 인물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J가 한 말이 생각났다.

"죄책감은 어떤 결정, 실행지금 하지 않는심리적 핑계, 회피일 수 있다."

죄책감을 가장 자주 발생시키는 대상이 가족 아닐까. 그런 감정은 때로 희생이나 헌신이라는 이름카지노 게임 사이트 포장되지만, 결국 주변인에 대한 원망카지노 게임 사이트 발현, 투사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 남편이 그런 죄책감으로 자신과 부부관계를 망치는 유형이다. 그는 아들의 사고 이후 '내가 그때 ~했더라면, 하지않았더라면'이라는 죄책감에 빠져 산다. 의무감과 속죄 의식으로 살고, 자발적이었던 선택은 원망과 회한으로 남는다. 하지 않은, 못한 많은 일의 원인과 핑계가 된다.

반면 부인은 죄책감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들의 장애를 남편이나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대신 '시각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들이 불편한 몸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욕망 또한 양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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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남편의 시선으로 부인의 이기적인 모습이 부각된다. 그러다 극이 진행되면서 둘 사이의 서로 다른 입장을 보게 된다.

부부, 가족 간의 문제는 외부, 멀리서 본 단면만으로 누가 일방적으로 더 희생적이다, 아니다로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 저울과 무게 값은 일부만 본 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걸 다각도로 드러낸다.

남편은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 삶'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했다. 그게 자살이든 타살이든.


남편 글은 이야기라기보다 미완성의 문장들입니다. 삶도 미완성이었죠. 첫 소설도 중단했고 공사도요.



말, 글-불완전한 진실


'말, 언어'는 이 영화에서 '글'과 함께 사건을 끌고 가는 중요한 도구다. 작가인 부부 갈등의 이유가 '글을 써서'와'글만 쓰느라'의 대립이다. 또, 재판은 '말'의 공방전이다. 법정에서 살인의 주요 증거 자료로 제시되는 것도 사무엘이 부부간의 대화, 싸움을 녹음한'말'과 산드라의 '글'이다.


우리는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흔히하고 듣는다. 이 말의 뉘앙스가 주는 정서적 불통뿐 아니라 다른 언어 사용자끼리의 물리적 불통도 있다.

영화 속에서도 부부 불화의 요인 중 하나는 프랑스인 남편과 독일인 부인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다. 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은 언어 소통의 불통뿐 아니라 문화와 정서의 이질감이 만드는 소외까지 가중시킨다.

사무엘이 산드라가 프랑스에 살면서 영어로 얘기하는 것을비난하자산드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서로의 언어를 못하니까 '재판 중간'에서 만난 거지,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니야. 난 여기서 당신 고향이란 사실을 매일 안고 살아야만 해.


이 대화를 들으면서도 관객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소외감과 패배감으로 살아가는 남편에게 감정 이입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런데 남편은 부인의 언어인 독어를배우려는 노력은?", "왜 독일이 아닌 프랑스로 이주했을까?"라며 이방인으로 사는 산드라의 외로움을 볼것이다.

산드라는 남편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도 자기에게 편하고 익숙한 독어나 영어가 아닌 불어로 말하라는 지적을 수시로 받는다. 외국인인 그녀에게언어의 억압과 강요는일상이다.


말이 청각적 도구라면 글은 시각적 도구다. 말과 글이 극의 중심 소재가 되는 영화에서 사망자의 주요 목격자가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과 말 못 하는 개라는 설정은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그날 사건의 전모를 본 개는 말을 할 수가 없고, 중요한 단서가 된 소리를 들은 아들은 볼 수가 없다.



진실-믿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것


사건의 전모, 완전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의 진실이란 결국 여러 가정 중 하나를 진실로 '결정'해야 한다. 그 선택은 내 경험과 인생관이 반영된, 내가 보고 싶거나 믿고 싶은 모습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진실, 실체의 단면일 뿐 전면, 전부는 아니다.

이는 법정 신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정에서 신랄하게 폭로되는 녹취록마저도 들려지는 소리로 상상할 뿐 눈앞에 재현할 수는 없다. 재판을 지켜보는 방청객, 배심원, 법관,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 결국 불완전한 파편적 진실 밖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진실로'선택'한다.



영화 속 법정에선 산드라가 범인인지 아닌지가 판결 나지만, 감독은 끝까지 그 진위를 보여주진 않는다. 최선을 다해 변호하는 변호사도, 최후의 진실을 결정한 아들 마음의 진실도 다 드러내지 않는다. 한 겹의 의심을 끝까지 남겨둔 채 이렇게 묻는 듯하다.

' 모두에게 단일한 완벽한 진실은 없다. 믿고 싶은 것의 선택이 진실이다. 당신은 무엇을 믿고 싶은가?'

그것은 다니엘의 증언과 뉴스를 흥미로 소비하는 기자의 대사로도 표현된다.


-진실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보이는 여러 모습 중 하나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실재 사망 원인은 중요하지 않아요. 작가가 남편을 죽였다는 그 사실 자체가 어느 교수의 자살보다는 더 흥미진진하니까요


영화는 결국 '진실을 찾는'것이 아닌, '진실을 선택하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내가 보고 싶은 믿음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예술은 독자,관객의 개입카지노 게임 사이트 완성된다


영화에서 진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검사도 판사도 아니다. 아들 다니엘이다. 아버지의 죽음 자체만으로도 충격인데, 그 죽음이 '자살'인지 '엄마의 살해'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결정을 자신이 해야 한다.

두려운 진실을 알고 싶어서 재판 전 과정에 다 참여한 다니엘은 부모의 민낯을 그대로 마주한다.자신을 두고 탓하고 원망하며 싸우는 부모, 무너진아빠와 엄마의 불륜까지.

당신이 다니엘이라면 '자살한 아버지''살인범 엄마'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어떻게 죽였냐'가, 누군가에게는 '왜 죽였냐'가 더 중요하거나 흥미롭다. 믿고 싶은 이유나 대상은 제각각 다르고, 결국 각자의 선택이 진실이 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은 '산드라는 범인인가 아닌가'를 계속생각하고 얘기하게 만든다.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 결론은 감독의 작가론 같기도 한데, 극 중 산드라가 작가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한다.


-소설은 독자의 개입카지노 게임 사이트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쓰는 책에 독자가 들어가는 거야. 책의 일부가 되는 거야


'소설'과 '독자' 대신 '영화'와 '관객'으로 대입해도 무방하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전작인 <시빌에서도 작가론과 창작의 윤리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러 차례, 비중 있게 나온다.두 부부의 직업인 '글쓰기'는 살인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밝히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며, 소설의 개입은 사건을 사실보다 상상으로 흐르게 만든다.

검사와 변호사, 산드라의 다음 대화는 글쓰기를 자기주장의 창과 방패로 삼는 동시에 '허구와 사실의 경계''예술의 윤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예전에 ‘내 모든 소설은 내 삶과 연결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살인의 증거라고 봅니다.
-허구가 현실을 무너뜨리도록 하면서, 그 흔적을 지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작가의 경험이라면, 스티븐 킹은 연쇄살인범이어야겠죠.


어떤 소설이 지나치게 사실적일 때, 독자는 작품 속 얘기가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경험인지 궁금해진다. 등장인물의 직업, 행동, 성격 묘사에서 특정 실존 인물을 연상하기도 한다.

작가 대부분은 실존 인물의 상처와 명예훼손 등의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허구'나 '각색'이라는 방어막을 친다. 간혹 '실화', '실존 인물'이라고 밝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 글 속 에피소드만 화제가 되고 글은 뒷전이 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남편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의 실체, 진실 규명이 작가 산드라의 사생활 스캔들이 되는 것처럼.


'소설 속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작가는 자신이 쓴 글 속의 상상과 현실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로 시작한 질문은 표절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특정 문장을 똑같이, 몇 페이지에 걸쳐 복제한 경우처럼 명백한 외형적 도용부터, 다른 작가가 수집하고 설계한 자료와 일부 소재만 차용하는 문제까지, 표절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작가와 창작 윤리성에 대한 질문은 전작인 <시빌에서도 제기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해부가 '표절''아이디어 차용'의 범위 문제를 제기한다면, <시빌에서는 최근 한국에서도 종종 사건화 되는 '사적 대화를 허락 없이 소설로 옮겨 쓰는 것'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묻는다. 정신과 의사인 시빌은 유명 배우를 상담하며 얻은 개인적 사연을 본인 허락 없이 녹음하고 소설로 옮긴다. 소설가로서, 또 의사로서의 직업윤리를 모두 위반한 것이다.

'허락받지 않은 사적 대화의 녹음'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해부에서도 중요한 증거 자료로 등장한다. 남편이 소설 자료 수집을 위해 습관적으로 녹음해 둔 것이지만, 본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비윤리적 행위다.




영화 속 여러상징-이층, 계단, 겨울, 개, 눈, 음악


겨울, 눈


영화의 공간은 장르적 특성상 산장, 법정으로 집중돼 있고 배경은 겨울, 눈이다.

순백의 눈은 깨끗하지만 잘 더럽혀지고, 잘 숨겨지면서 쉽게 드러나는 순수와 오염의 양면성이 있다. 표백시킨 것 같은 백색의 눈은 다른 불순한 색깔을 쉽게 드러내고 구분 짓지만, 눈 속에 묻(덮) 히거나 눈과 함께 녹아 없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붉은 피가 더 선명하게 두드러지다 눈 속에 스며들다 함께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겨울은 순차적으로 보면 사계절의 마지막 절기다. 사계절의 끝, 소멸에 해당하니 사람으로 치면 한 인생의 마감일 것이다. 사계절 중 '침묵'과도가장 가깝다. 육체적 종말이 죽음이라면 작가에게 정신적 종말은 침묵,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계단


영화 속에서 남편과 관련된 주요 공간은 이층과 계단이다. 인물대신그가 사는 공간만 보여준다. 이 층과 계단만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소통이단절된부부의 모습, 불안하고 위태로운 남편의심리 같다.

또, 건물의 구조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위로 갈수록 정신, 의식과 관련 있을 것이다. 그가 이층 공사 중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한 것은 그의 육체적 죽음이면서정신적 세계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같다.

녹취록의 상상 속 재연 말고 살아있을 때 남편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부인을 방해하기 위해 시끄러운 음악을 반복적으로 틀어놓는 사람, 집 이층을 공사하는 사람으로 간접적으로만 묘사된다. 그는집, 글, 자기 밖으로 못 걸어 나온 사람이다.



스눕


예전에 러시아 소설을 한창 재밌게 읽을 때 등장인물 이름에 성격이나 작품 주제를 넣는 '캐릭토님'이 흥미로웠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도 배역에 캐릭터를 상징하는 이름을 짓고, 영화 내용과 연결된 OST를 선곡하는 감각이 좋다.

영화에서 사람 못지않은 연기를 보여준 개 이름 스눕엔 '염탐꾼, 정찰'이라는 뜻도있다.

개는 한마디도 못 하지만 사건 현장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유일한 존재다. 인간의 동반자로 사람 가족이 뭐 하는지 염탐하는 게 개의 일이기도 하다.

죽은 사무엘과 산 가족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로, 가족들의 과묵한 염탐꾼이자 수문장이다. 염탐꾼 스눕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사무엘, 혹은 산드라 네가 그날 한 일을 알고 있다."


영화에서 남편 대신 큰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 거슬리는 음악이 몇 차례 반복적으로 시끄럽게 나온다. <R.I.M.P란 힙합 음악인데, 그 곡의 피처링을 맡은 래퍼 이름이 '스눕독'이었다.

가사가 궁금해 번역기를 돌려보니 '몸 헤픈 된장녀'를 노래한여성 비하다. 영화 속에서는 사무엘이 부인을 비난하거나 방해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프랑스 영화의 법정물로는 상당히 대중적이다. 두 시간 훨씬 넘는데도 지루함을 못 느꼈다. 흥미로운 문학적 공방에도 불구하고 법정 신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아쉬웠다. 검사와 변호사 간의 공방전이좀 더 치열하고, 편집은타이트하고 밀도 있게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리극에 강점인 감독의 성향과, 할리우드 범죄물과 다른 시니컬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대사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것.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지하철에서 우는 것보다는 차에서 우는 게 낫다."


남편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의 해부는 끝났지만 산드라에게도 다니엘에게도 상처만 남았다.승자는없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까지 해부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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