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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Feb 05. 2025

질문으로 배운다 <클래스

마이크 돌려주기

라캉의"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논제를 정신분석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 속에 예시된 한 대화를 읽다가 <클래스라는 카지노 게임를 알게 됐다. 어려운 철학, 정신분석 이론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 챕터마다 책, 카지노 게임, 일상 속 대화 등 여러 예화가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다.

여자에게 요구되는 이중적, 다층적 여성성을 설명하는 도구로카지노 게임 속 장면들을 비순차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면서'반항적 문제아'와 '사유하는 소녀'의예시로 에스메랄다의 말과 태도를 인용한다.

중학생 에스메랄다는 커서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사람들이 하도 경찰관 욕을 하니까 좋은 경찰이 한 명은 있어야 하니 내가 경찰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도 라캉도 잘 모르는 나는 저 예시가 베를랑이나 비전체 개념으로서의 수용보다는 소녀의 말에 흥미가 먼저 일어 카지노 게임를 찾아봤다.

2008년 61회 칸 수상작이다. 칸 수상작을 다, 많이 보진 못했어도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면 제목이나 감독명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로랑 캉테'도 <클래스도 생소했다.

클래스가 친근하고 직관적이라면프랑스 타이틀인 Entre les Murs는 좀 더 철학적인 늬앙스다.

학교 카지노 게임의 외피 속에 교육 문제 외에도 계급, 인종 차별, 여성 비하등을두루다루는데카지노 게임에서도 에스메랄다는핵심을 짚는 중요한 말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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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언어가 나의 차별을 반영한다.


프랑스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어떤 단어나 문법설명하는 예문을 말할 때 습관적으로 백인 프랑스인의 이름만 쓴다. 그날은 '빌'을 썼다. 에스메랄다는 왜 선생님은 항상 '빌' 같은 이상만 이름만 쓰느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선생님은 이상한 이름 아니다, 프랑스 이름이고 '미국 대통령' 이름도 빌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는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랍 등 수많은 인종의) 다양한 이름, 다른 성별의 이름도 많은데 왜, 늘 '백인(남자)' 이름만 사용하느냐고 되묻는다. 선생은 그녀에게 너는 프랑스인 아니냐? 라며 학생의 질문보다 못한 반문을 한다. 그녀는 대답한다. 맞다, 프랑스 사람 맞는데 별로 내세울 건 없다고.

그녀의 질문은 늘 선생을 당황하게 하고 그 대답은 대체로 질문보다 무능하거나 비겁하다.


좋은 경찰이 한 명은 있어야 하니 내가 경찰이 되겠다는 에스메랄다는 '래퍼 메딘'의 팬이다. 카지노 게임 속 그녀는 배역 중 가장 시니컬한 캐릭터인데 그런 소녀가 좋아하는 음악/음악가는 누구,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검색에 딱 하나 걸린 위키디피아에서는 메딘이 아랍계 이민 2세대인 무슬림 프랑스 래퍼로 이주민, 억압받고 소외되는 소수자와 개인에 대한 가사를 주로 쓰는 '정치래퍼'라고 소개한다.

'프랑스적인' '프랑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작업을 꾸준히 하는데, 미국 911 테러와 2005년 프랑스 알제리 방화 사태를 전후해 공권력 과잉과 시민들의 우경화, 자국민 최우선주의자가 되는 배타적인 프랑스를 보며 타임지에 쓴 한 기사의 제목이 "내가 얼마나 더 프랑스인이 될 수 있을까?" 였다고 한다.

"프랑스인인데 내세울 건 없다"라는 그녀의 말이 한층 더 깊게 이해됐다.

글이든 카지노 게임든 한 작품을 더 풍요롭게 이해하기 위한 길은 작품 속의 미시적인 파편, 상징을 놓치지 않고 잡는 일 아닐까. 책 속의 카지노 게임, 이 카지노 게임 속에서 언급되는 책 이름이나 낯선 래퍼를 흘리지 않았더니 서로 다른 성격의 글과 카지노 게임가 유기적으로 서로 잘 이해되었다.

거시적인 것, 거대담론 앞에서 미시는 자주 무시된다. 나무를 봐라, 숲만 보지 말라는 말 등으로. 거시가 결과에 주목한다면 미시는 과정을 만들어 가는 일 같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미시가 우위 아닐까.

이 카지노 게임도 자잘한 미시의 수다로 무거운 담론들을 어렵지 않게 표현한다.



프랑스라고 별다르지 않아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에 대한 이상, 우호적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 선진국이라는 외피 외에도 예술과 패션, 미식, 노동, 인권, 교육 등 사회, 문화 예술 전반에서 우리보다 앞선 나라라는 선망 같은. 이 카지노 게임도 '클래스'란 직설적인 제목과 교실 안의 선생과 학생이 보이는 포스터만 보면 카지노 게임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몇몇 장면 같은 걸 쉽게 연상할지 모른다.

수업시간에 시의 원관념과 주제를 일률적으로 주입받는 우리와 달리 한 권의 책, 작가를 정해 철학과 문학을 심도 있게 논하며, 사지선다형 위주의 외우고 찍기식 시험이 아니라 에세이 제출로 시험을 치며,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대하며 거리 시위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대카지노 게임도 아닌 고등카지노 게임인 장면들을 보며 '프랑스는 역시 다르구나?' 같은.


그런 일면도 나오지만 129분에 달하는 이 카지노 게임를 12분만 봐도 그런 이상은 곧 깨진다. '프랑스라고 별다를 게 없구나.' 뒤이어 되바라지고 통제가 힘든 프랑스 중학생들을 계속 보노라면 '우리 중2병은 애교구나. 그래도 아직 우리 학생들이 순하구만' '오히려 한국 학교의 선생님들이 덜 힘들겠다' 싶은 면도 있다. 프랑스 부모 역시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고,선생님에게 반항적이고 수업 분위기 흐리는 도 엄마에겐 좋은 자식이며자식이 삐뚤어지면 자식 대신 고개 조아리고,아버지는 거기나 여기나 권위만 가득한 불통의 존재다.



대개의 일상 속엔 영웅도 빌런도 없다


카지노 게임는 학교에서 시작해 학교에서 끝난다.

선생님들은 늘 훌륭하지도 늘 비겁하지도 않다. 조직 안에서의 개인적 실존, 성실한 직업인과 존엄한 개인 사이의 충돌, 회의와 후회, 보람과 부끄러움 그 사이를 수시로 교차한다. 어느 때는 사명감 있다가 어느 때는 때려치우고 싶다.

깐족거리는 학생들과 한 시간 내 씨름하다 수업이 끝나면 속에 욕을 품고 교(무)실의 의자를 발로 차기도 하고, 여러 잔 사 마시는 커피값이 부담되니 돈 거두어 커피머신 사자는 건의를 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학생들 개개인에 관심 있고 열정적이지만 어느 순간엔 학생의 말을 무시하거나 흘려듣고 막말도 내뱉는다. 수업 분위기 흐리고 선생을 무시하는 학생을 교장에게 상담 요청, 인계했지만 퇴학 결정에는 반대하고 불법체류자 학생이 학교에서 추방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고 제 화를 못 이겨 학생들에게 막말도 하는, 우리와 같은 다면적인 사람들이다.


학생들 역시 모두, 늘 나쁘거나 계속 착하지 않다. 어느 때는 선생님들보다 더 날카롭고 바르지만 자주 삐딱하고, 말 안 들으면서 말대답은 잘하고 대체로 통제 불능이다. 수업 중 선생님에게 "동성애자냐?"라는 희롱을 하다가도 작은 칭찬과 관심에 좋아하고 몇 분 뒤에는 선생님들의 무의식적 차별, 위선을 건드린다. 저희끼리는 싸우고 대립하다가도 선생이 친구들의 잘못된 행위보다 과한 처벌과 차별을 하면 맞서 항의하던 학생도 수업시간엔 딴짓하고 선생을 조롱하는 분위기에 동참한다.


뇌물 먹고 시험지 빼돌리고 학생 차별하고 무시하는 <스카이캐슬 속 선생, 사재 털어 불법체류자 학생의 변호사 비용을 전담하는 이상적인 선생, <글로리의 연진이 같은 학생도 없다. 대체로 대립하지만 가끔 화합하기도 하고 같이 운동하는 순간은 즐겁다.

어느 날 돌발적 상황에서 학생은 학생대로 선생은 선생대로 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실언, 잘못된 행동을 하고 서로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상황에서 때를 놓친 시인, 후회하면서도 방황하다 도착하지 못한 사과 속에서 각자의 민낯이 드러난다. 카지노 게임에서 사제지간의 갈등, 선생의 위선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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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목소리를 찾아주기, 마이크의 분배


카지노 게임 속에서 선생님도 아이도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만 배경은 학교를 벗어나지 않아 아이들의 가정적, 경제적 배경을 직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생과 학생들 사이의 대화, 글쓰기 숙제에서 엿보이는 단편적 얘기, 학교로 찾아온 학부모 상담, 선생님들 사이의 공지 사항 공유 같은 '대화'를 통해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계급, 가정환경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 학교 학생들은 선진국 프랑스에서도 경제적 하층 계급, 아프리칸, 무슬림, 중국인 등 다문화, 이주민 가정의 자녀들이 많다는 걸. 그 안엔 프랑스에 살지만 일상적 불어도 못하는 엄마가 있고, 몇 년째 이 학교에 다니는 모범생과 그 가족은 불법체류자이며, 전 학교에서 퇴학당해 전학 온 학생의 형은 감옥에 있다.


사는 동네와 집, 그 안의 살림살이 같은 미장센이나 부모들의 직업 같은 명사적 묘사로 학생들의 계급과 가정환경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대사로 드러낸다. 인종 차별, 불법체류자, 추락한 교권, 가정 내 폭력적 상황 같은 현실을 개별 인물의 상황이나 사건의 직접 재현이 아닌 '말' '대화'로.

카지노 게임에 등장하는 사람 중 한마디도 하지 않은 사람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대사가 많다고 쓰다 보니 이 카지노 게임는 교육 카지노 게임의 외관 속에 각자에게 '자기 말을 찾아주는' 카지노 게임 같기도 하다.

어떤 인물의 계급과 상황, 심리를 미술적 요소나 한두 명의 주인공에게 집약한 스토리로 드러내는 건 당사자 대신 타자, 외부의 개입이 주도적이지만 대사, 대화로 그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보여주는 건 당사자인 너와 내가 직접 말하는 것이다. 마이크의 주체를 외부에서 내부로 돌려주는 것.


"내 얘기는 나만 아니까 말할 필요 없다"라고 입을 다물고 "70살 넘은 할머니 자서전은 읽을만한데 13살밖에 안 된 우리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다"라며 삐딱선 타던 아이들도 "사실 위주로 나열하면 인생은 지루하지만 어떤 느낌으로 사는지가 중요해"라며 나는 너희들 얘기가 궁금하고 듣고 싶다는 선생의 말에 하나, 둘 자기 얘기를 한다.

카지노 게임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과 플라톤의 '국가론'이 언급되는데 카지노 게임의 큰 축도 대답을 능가하는 질문들이다. 감독이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관객에게 '자, 내 생각, 만든 것들을 잘 구경하세요."라는 게 아니라 마이크를 바꿔가며 이 말도 저 말도 다 들려주면서 '자 이런데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 여기서 당신은 어떻게, 무엇을 하겠어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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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투탑 주인공처럼 특정 인물 몇을 부각하는 카지노 게임는 아니지만 감독의 작가정신, 카지노 게임의 사회적 고민을 잘 표현한 인물은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에스메랄다, 시니컬한 바른 소리 담당. 한 학기를 마치는 마지막 수업에서 담임은 '각자 이번 학기에 배운 것 하나씩 말하기'를 시키고 그녀는 "배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퇴장한다.


현실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한 소설, 카지노 게임는 많다. 충실한 현실 묘사에 감탄하지만 작가의 세계관은 없는 작품도 많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공을 묘사하다 '이게 다 잘못된 세상 탓이야'라고 원망만 하다 무책임하게 끝낸다. 사실적인 현실 묘사만 보려면 신문기사만 봐도 되지 않겠는가.

이 카지노 게임 속 인물들은 잘못된 사회, 학교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게 사회, 어른들 탓이라고 비난, 비관만 하진 않고 계속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게 맞냐고? 그건 잘못된 것 아니냐고? 질문하면서 시정을 요구한다. 선생님 말은, 학교 처벌은 틀렸다고.

그 요구가 녹록지 않아 보이고 카지노 게임 속에 그 요구의 결과가 나오진 않지만,타협하지 않고 요구하고 항의하는 것 자체가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실천해 가는일 아닐까.


영화는 두 시간 넘는 풀타임 내내 담임과 카지노 게임들의대립적 대화와 기싸움을돌아가며 보여주다 끝난다. 감독은 각자의 얘기를 공평하고 다양하게 들려주지만, 카지노 게임 속 문제의 결과나 정답을 끝까지 보여주지않는다. 카지노 게임 바깥, 카지노 게임를 보는 우리들의 질문과 숙제로 남긴다. 카지노 게임관을 나서면서 다시 시작되고 이어지는 질문으로.


비전문 배우 연합

선생과 학생들의 연기가 리얼하면서도 전문 배우들에게는 없는 신선함이 있었는데 포스터 문구를 보니 출연자 전부가 실지 선생님과 학생들이었다. 사회적 메시지를 카지노 게임 속에 자주 담는 리얼리즘 계열의 카지노 게임감독들은 현실성의 극대화를 위해서인지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는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켄 로치, 다르덴 형제…….

프랑스어 담임으로 나온 '프랑소와 베고도'도 실지 교사 출신이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로랑 캉테 감독에 의해 카지노 게임화되면서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연기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재현이 겪었던 일의 재생으로 팩트에 가깝고 체현이 관념 속 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픽션도 많다면 카지노 게임는 그 둘 사이의 션이다. 담임 역의 배우가 경험한 교사 생활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소설, 사회적 메시지를 카지노 게임로 체현한 감독의 합작.



세 감독

당대의 사회적 메시지를 다큐멘터리 톤, 직설적으로 담는 것은 켄 로치를 연상시켰지만 그 표현 방법은 오히려 홍상수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가까웠다. 켄 로치의 표현들이 좀 더 뜨겁고 비교적 갑을, 선악 구도가 선명하며 현실의 문제 제기와 함께 분노와 정의감을 촉발해 답을 내포하고 있다면 로랑 캉테는 차갑다. 그 차가움은 냉소나 비관주의보다는 감독의 어떤 소망과 정의감을 직접 드러내지 않기, 인물 간 선악을 극명하게 대비시키지 않기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표현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수다, 수다 대부분이 시니컬하거나 자조적유머인 것, 어떤 책의 언급이 감독이 카지노 게임로 하고 싶은 말과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 캐릭터 속의 부끄러움을 관객도 같이 느끼게 하는 것, 촬영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현장감, 즉흥적인 분위기와 대사 톤과 비교해 장소는 고정된 점 같은 건 홍상수에 가깝다.



그래도 프랑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프랑스 교육에 대한 환상을 우리와 별반 다름없는 현실로 돌리는 카지노 게임지만 한국의 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점은 분명 있다.17년 전에 개봉된 카지노 게임라는 시기를 생각하면 더.

1) 같이 고민하고 의논해

한 학생의 수업 방해, 일탈을 담임 혼자 전담해 골머리 썩고 처벌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반에 들어가는 다른 과목의 전체 선생님들이 다 모여 의논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담임 반의 학생들 전체 이름은 물론 개개별 성향도 어느 정도 안다는 가정에서 가능한, 한국 학교에서는 힘든 현실 반영이다.

물론 토론자가 많다고 항상 좋은, 바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한두 사람의 목소리만 반영되고 그 사람이 권한과 책임을 전담하는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다. 한 학생은 담임 혼자만의 책임만은 아니며, 한 문제는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

2) 다른 계급의 같은 공간 참석


교무회의의 때 선생님들뿐 아니라 학생 대표들도 참여시킨다. 상벌과 퇴학 처리 과정의 적나라하고 민감한 발언까지 고스란히 듣게 하는데 관객이 우려한 그 여파, 부작용까지 보여준다. 그 부작용마저 위선과 허위를 드러내는 도구로 쓴다.

아이가 없어 요즘 한국 학교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내 때에는 분명 없었던, 수업 중의 반항아에 대한 조치도 인상적이었다. 한 학생이 수업 분위기를 계속 흐리고 지적해도 고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그 학생과 계속 대화하면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되고 지도는 감정풀이가 되는 상황이다. 더 심해지면 교권의 추락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게 될지도 모른다. 담임은 학생을 교장에게 인계하고 상담과 처리를 요청한 뒤 남은 수업을 계속하러 간다.

교무실에서 개학 첫인사 때 식당, 청소 직원들도 배석시켜 '고맙다'라는 인사를 하는 장면은 무심하게 아주 짧게 지나가지만, 한국 학교 안의 급식/청소 노동자들도 생각나고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배려가 느껴져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프랑스의 한 학급을 배경으로 만든 2008년도에 제작한 이 카지노 게임는 2025년도 지금의 한국 교실로 바꿔도 오늘, 여기의 이야기 같다.



거꾸로 가는 한국 노동 시간


감독의 데뷔작 <인력자원부는 1999년의 프랑스에서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에 대한 노조의 투쟁을 다룬 얘기라고 한다. 문화적으로는 글로벌 한류, 이제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의2025년에 '주 52시간 근무'를 서민, 노동자 대표를 표방하는 야당 대표가 동의한 게 오버랩되면서 이 카지노 게임를 검색하니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첨부한 노래는 카지노 게임 속 시니컬 학생 에스메랄다가 좋아한다는 메딘의 음악. 그가 타임지에 쓴, "내가 얼마나 더 프랑스인이 될 수 있을까?"는 댓글에 첨부.

자신의 부모와 같은 유색이민자들이 프랑스 사회 안에서 받는 일상적 억압,종교의 침해, 부모와 달리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다른 피부색과 종교 때문에 '백인 프랑스인'과 다른 차별적 취급을 받는 2세대들의 정체성 혼란, 국외 전쟁과 테러, 국내 폭동 사태 발발 시 받는 유색 인종과 이민자들에 대한 프랑스 국가와 시민들의 태도에 대해 생생한 당사자 입장의경험에서나온날카로운 비판의식과 고민이 돋보이는 글이다.


https://youtu.be/aZA48y6vpu4?si=Hrcr33mT7zMOJh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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