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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형 Feb 20. 2025

빨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앤이라면

《빨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시공주니어)

고백하건대, 어릴 때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통해 만난 앤은 그저 시끄러운 아이였다. 혼자서만 쉴 새 없이 떠드는 친구는 버겁게 느껴진다. 새벽 호숫가에 앉아 물안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면 옆에 와서,

“나는 새벽 호수가 좋아. 물안개를 보면 실컷 자고 잠이 깬 요정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아. 요정은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 잘 들어 봐, 요정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니? 안 들려? 상상력을 발휘해 봐!”

하는 식의 밑도끝도없는 소리를 하며 다그칠 것 같았다. 나에게 빨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앤은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아이로 다가왔다.


세월이 흐르고 마릴라 아주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비로소 《빨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앤》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친구’, 빨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앤을 만났다. 어쩌면 나는 앤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시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앤과 나는 여러 가지로 닮았고 많이 달랐다. 앤처럼 툭하면 울고 엉뚱한 상상을 잘했던 나는 앤과 다르게 그 정서를 숨기고 싶어 했다. 책에서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에 눈물이 나려고 하면 누가 볼세라 꾹꾹 참으려 노력했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야기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꺼이꺼이 울다가도 누군가 들어오면 재빠르게 현실 세계로 돌아오곤 했다. 이건 아마도 가정교육의 결과였던 것 같다. ‘울면 지는 거’라는 가르침과 감정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건 미성숙한 일이라는 가르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번번이 울었고 아무 데서나 감정을 들켰고, 그런 내가 싫었다. 같은 상황에서 앤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너무 아름다운데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몽글몽글 달콤해요. 이게 슬픔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지금 슬픔에 빠져 있어요. 이럴 때 배가 고프다는 건 낭만적이지 못 한 일이지만 마릴라 아주머니, 저녁 식사로는 산딸기 케이크가 어때요?”


자기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떻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초록 지붕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누리는 앤은 자연에게서 받은 대로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때로는 앤에게 말실수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때로는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알고 있다. 앤의 자기애는 이렇듯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과 사랑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기차역 판자더미에 앉아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는 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 좋은 통증을 느끼는 앤, 나무들이 잠자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 앤, 코델리아라고 불리고 싶은 앤, 끝에 이(e)가 있는 앤(Anne), 퍼프소매 드레스를 입은 앤, 제라늄에게 ‘보니’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앤, 다이애나와 우정을 맹세한 앤, 자수정이 착한 제비꽃의 넋일 것 같다고 말하는 앤, 10월이 있는 세상에서 사는 게 좋은 앤, 길버트가 좋아하는 앤, 기하에 자신이 없는 앤, 빨간 머리를 파랗게 염색해서 속상한 앤, 유령의 숲이 무서워진 앤, 지붕에서 떨어져도 입은 다치지 않은 앤, 빨간 머리라도 괜찮은 앤, 앤이 아닌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은 앤, 그리고,


내가 호숫가에 앉아 물안개를 보고 있다면 가만히 다가와, 언제까지고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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