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조력자에서 작가로, 그 시작에 있던 오마이뉴스
2017년, 난생처음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써가는 숙제가 있었는데, 수업을 이끌었던 작가님은 쓴 글을 <오마이뉴스에 투고하라고 했다. 그때 난 글이라고는 가끔 쓰는 일기가 다였기에 내가 쓴 글을 누가 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손이 오그라들었다.
작가님은 내 맘을 읽었는지 "지금은 누가 볼까 무섭지만, 나중엔 누가 안 봐서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신화 속 신탁처럼 예언이 되었고 지금 난 "누가 안 보는 게 무서운"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 난 전업주부로 살았기에 무료 카지노 게임 쓸 컴퓨터도 없었고, 당연히 사용 방법도 몰랐다. 집에 컴퓨터는 아들 방에 있었는데, 저녁엔 아들이 게임하느라 내 차지가 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밤 동안 공책에 끄적이다가 아들이 학교 간 틈을 이용해 독수리타법으로 한 자 한 자 쳐서 넣었다.
마침내 글 한 편이 완성되면 숙제를 끝냈다는 안도감과 작가가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순진한(?) 가족들에게 창작의 고통에 관해 부풀려 말하곤 했다. 실은 창작의 고통보다 한컴 타자 연습이 더 고됐으면서 말이다.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으로 등록하고 글을 보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재 제의를 받았다. 정치 경제 사회와 같은 주요 기사였다면 언감생심이었겠지만, 내가 쓸 글은 '사는 이야기' 코너였다(오마이뉴스에는 이런 코너가 있으니 아무나 이곳에 글을 올릴 수 있답니다).
난 당장 홈쇼핑에서 노트북을 주문했다. 그리곤 옷방으로 쓰던 곳을 정리해 작업실 공간도 마련했다. 내 방에 노트북까지 생기니 남편이랑 아이들과 같은 집에 살아도 독립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시작한 연재는 이런저런 글로 파생되면서 3년 넘게 이어졌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생활에서 자기만의 시선을 끌어내는 일은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인간은 자기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더니, 쓰다 보니 자꾸 나를 포장하거나 콘텐츠가 떨어져 자기 복제하는 일도 생겼다.
또 남다른 사유를 풀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다소 억지스럽게 무료 카지노 게임 끌고 가거나 뜬금없이 계몽(?)적인 결론에 편집기자님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상천지에 계몽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걸 왜 자꾸 까먹는 걸까(이건 정말 나에게 하는 말임!).
이럴 땐 지레 부끄러워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를 읊조리며 이번 주까지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주가 되면 또 다음 주로, 그렇게 계속 미루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글이 쌓였다. 초짜라서 그런지 글에 '좋아요'가 많으면 좋은데, 적으면 의기소침해졌다. 이런 내 마음의 근원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던 모양이다.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누구에게라도 인정받아야 안심되는 나약한 성정이 문제였다.
'좋아요' 숫자에 따라 내 심장이 출렁이는 것을 오랫동안 경험하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컸다. 그래서 글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오력'했다. 그렇다고 내 분신과도 같은 글에 어찌 신경이 가지 않겠는가.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부정맥에 걸리지 않고 오랫동안 무료 카지노 게임 쓰려면 내 심장은 내가 지켜야 했으니까.
포털에 글이 실리면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라'는 고견과 '설마 이거 기사임?'이라는 식견들이 댓글에 달렸다. 어떤 땐 글에 '페미(페미니스트)' 묻었다고 공격을 받기도 했다. '페미'가 무슨 흰옷에 튄 고추장이라도 되는지 난리도 풍년이다.
소정의 원고료에 비하면 과한 고견과 식견 대잔치에 소화불량이 걸려 위장약을 삼킬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어 심각하게 절필을 생각했는데 이런 내게 친구가 말했다.
"살도 빠지고 좋잖아. 그리고 무플보다 악플이 낫지! 이런 기회가 아무한테나 올 것 같아? 닥치고 써!"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한 달은 절교해야 분한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무던히도 부대끼며 글을 기고하다 보니 마법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2018년 '올해의 뉴스 게릴라상'을 받은 거다(이 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해 시민기자 대상이다). 학교 다닐 땐 개근상도 못 받아봤는데, 대상이 웬 말이냐!
게다가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도 들어왔다. 그렇게 난 3권의 책을 연속해서 출판했다(이건 나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고 많은 시민기자가 그렇게 책을 내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니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꼭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투고해 보시길).
무료 카지노 게임 쓰면서 가장 큰 변화는 인간관계 재편이다. 하루아침에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갔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에 원하지 않은 모임에도 참석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겉으론 반갑게, 속으론 불편한 만남을 이어갔는데, 이런 관계들이 모두 정리되었다. 이런 내 마음 기저에는 혼자 외톨이가 되거나, 무리에서 고립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했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혼자 지내는 것도 생각만큼 고독하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적당한 고립은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낭만과 함께할 소수의 친구만 남았고 이 간단해진 관계가 애써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니 한결 편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 쓰면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책도 더 많이 읽고 강연도 들으러 다녔다. 지하철을 타고 왕복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였지만, 행복했다. 내 삶을 내가 온전히 운영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었다.
그동안 나는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아 키우느라 늘 누군가의 조력자였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 사느라 정작 내 인생에 난 맨 꼴찌에 있었다. 그렇다고 억울하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너 없었으면 우리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겠냐!"란 말을 동력 삼아 열심히.
그러다 드라마에 나오는 위기의 중년들처럼 어느날 깨닫고 말았다. 내 인생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한번 깨닫고 나면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에겐 이 사실이 그랬다.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난 방황했고 그제야 나를 찾기 위해 글쓰기 교실 문을 두드렸던 거다.
그게 시작이었다면 글을 꾸준히 쓰게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오마이뉴스다. 아무런 스펙도 이렇다 할 경력도 전무한 무지렁이에게 용감하게도 지면을 내어주었으니까.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때의 나처럼 삶의 탈출구가 필요한 누군가 있다면, 내 글을 보고 용기를 얻길 바라는 마음. 내가 방황했던 시절 내 손을 잡아줬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 나는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느라 잠시 <오마이뉴스를 떠나 있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 돌아온 탕아처럼 다시 돌아와 대한민국 미술관 여행을 연재하고 있다. 더불어 장편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유명 영화사와 손을 잡고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이 모든 시작에 <오마이뉴스가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3년을 매주 한 편 이상의 글을 썼기에 쓰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되어있었고, 이게 바탕이 되어 다른 장르의 글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내게는 친정 같은 <오마이뉴스에 더 많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한다. 창립 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땡큐! 오마이♥"
덧: 이글은 창사 25주년을 맞이한 오마이 뉴스 특집 기사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