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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별 May 12. 2025

내 의지를 카지노 게임하는 카지노 게임자들

카지노 게임자, 카지노 게임견, 카지노 게임식물... 네이버 검색창에 '카지노 게임'를 입력하니 나오는 연관 검색어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카지노 게임를 가지고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혀 카지노 게임커피, 카지노 게임책 등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대체로 따뜻하고 다정한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곁을 내어 준 카지노 게임는 조금 다르다. 회피와 게으름 - '짝이 되는 동무'라는 의미를 떠올렸을 때 '반려회피', '반려게으름'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내 오랜 동무들이다.


반려회피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계획을 펼쳐보려 할 때, 그는 내 어깨너머로 말한다. "꼭 지금이어야 해?" 그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또렷하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해 내 의지를 조용히 묶어둔다. 반려게으름은 조금 다르다. 한낮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소파의 쿠션처럼 포근하다. "오늘은 좀 쉬어도 되잖아." 그 말이 다정하게 등을 밀면, 나는 못 이기는 척 금세 소파에 몸을 눕힌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괴롭히는 고민들도 잠시 잊힌다.


스스로를 비꼬는 마음으로 무려 '반려'라는 단어를 붙여 소개하고 있지만 이들은 늘 내 나약함이자 이겨내야 할 결함, 떨쳐내야 할 습관이었다. 이제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기질이자, 습관이자, 내 일부라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할 수 있는 날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주 이들의 품 안에서 그 시간을 흘려보냈다. 후회는 쌓이고 자책은 버릇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들과의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회피 덕분에 무너지지 않는 때가 있었고, 게으름 덕분에 멈춰 설 수 있었다. 이들은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다.


변화를 꿈꾸기도 여러 번이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밀린 일을 정리하며 속도를 내보기도 했다. 계획을 세우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며 몰입하면서 잠깐은 나도 달라진 듯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다. 작은 균열 앞에서 나는 다시 익숙한 이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조금 지치면, 조금 흔들리면, 다시 반려회피와 반려게으름이 나를 감싸 안도록 내버려 둔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듯너무나 자연스럽게.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들을 내 곁에 머물게 했다. 회피와 게으름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싫은 감정과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존재니까.


'카지노 게임'라는 말은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 한쪽에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侶)'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배반하고 돌아서는 마음(戾)'이 있다. 회피와 게으름이 내 반려이지만, 이들은 내 성장 의지를 자주 반려시킨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이들은 조용히 돌아선다. 그리고 나도 자주 그들을 따라 돌아선다. 변화를 향한 발걸음이 그리도 잦았고, 그렇게도 제자리걸음인 이유다. 이중적인 의미 사이에 서서 이들을 다시 바라본다. 내 곁에 오래 머문 존재들이자 자주 나를 멈추게 만든 존재들. 그들이 나의 일부라면 나의 성장 또한 그 위에 서야 한다.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가끔은 등을 돌리고, 가끔은 의지하면서.


나를 흔들고, 멈추게 해도 결국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인 반려회피, 반려게으름과 함께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조금 더 내 마음의 중심에 가까운 쪽에 서서. 내가 나를 배반하지 않도록,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 작성해야 할 보고서를 2주째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있다.불안해서 악몽도 꾼다. 그래도 시작하지 않고 있다. 회피와 게으름이 양 발을 단단히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두 존재가 나를 붙잡아도 조금씩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아 이 글을 썼으니, 오늘 잠들기 전에 1페이지는 쓰고 자야지. 꼭.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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