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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가용 Apr 28. 2025

카지노 쿠폰에 대하여 9

투도어 냉장고의 카지노 쿠폰

식구가 적어 투도어 냉장고로 충분했던 때, 카지노 쿠폰가 냉장고 지도를 그렸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내용물의 배치도를 A4에 그려 냉장고 문에 붙것이다. 지도를 그리기 위해 먼 옛날 누군가는 발품을 팔았듯, 카지노 쿠폰는 큰 마음먹고 냉장고의 가장 아래 칸부터 맨 위까지 몇 번을 오르내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었다.


분명 물리적인 공간들을 칸칸이 오르내렸는데 카지노 쿠폰는 시간 여행을 마치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맨 아래 칸에서 화석처럼 변한 삼겹살 두 줄이 나왔는데, 그건 적어도 2년 전 한창 삼겹살에 꽂혔을 때 고기를 굽고 굽고 굽다가 지겨워져서 일단 다음에 먹자고 남겨 둔 것이었다고 카지노 쿠폰는 설명했다.


2년 전 한창 꽂혔을 때? 아니다. 카지노 쿠폰는 기억을 편집하고 있었다. 우린 원래 삼겹살을 많이 먹었다. 처음 카지노 쿠폰가 자기 동네까지 바래다주도록 허락해 준 날도 우린 삼겹살집에서 밥을 먹었고, 장모님께 카지노 쿠폰를 달라고 하던 그 식당에서도 삼겹살이 구워지고 있었다. 장모님은 그날 몇 조각 드시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 앓아누우셨다.


그런 장모님이 결혼 후 가장 중요한 삼겹살 공급원이 되셨다. 딸과 사위에게 바리바리 싸주시는 음식들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만큼 꼭 얼린 삼겹살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구울 때 떼기 좋으라고 한 겹 한 겹 비닐 포장을 해서였다. 딸 부부 좋아하는 음식 잘 아시는 모습이었다. 장모님이 주신 삼겹살은 날 거절하셨을 때의 마음처럼 해동시켜 구우면 맛이 배가됐다.


달그림자처럼 얼어붙은 호떡 한 팩도 나왔다. 언제 우리 냉동고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처는 장모님일 수밖에 없었다. 대형 마트 식품 코너에서 호떡을 구우시는 장모님은, 가끔 남는 것들을 싸가지고 집으로 오셨다. 고 달콤하고 기름진 맛을 본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참새처럼 입 벌리고 달려드는 걸 큰 낙으로 여기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 식습관 들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카지노 쿠폰에게 이는 별로 달갑지 않은 행사였다. 기어이는 단 거 주지 말라는 카지노 쿠폰와, 뭐 어떠냐 어쩌다 한 번인데, 라고 하는 장모님은 크게 부딪혔고, 장모님은 더 이상 호떡을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 우리 결혼처럼,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지 못하셨다.


오랜만에 발굴된 호떡은, 장모님이 잠깐 누리셨지만 잊힌 낙의 기록일 뿐, 음식의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좀처럼 전수되는 일 없는 부모의 낙이라는 게 이렇게 하나 자식에게 상기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없지 않다고, 나는 호떡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알려줬다.


냉장고 한쪽 구석엔 ‘아빠님표 마늘장아찌’라는 라벨지가 붙어 있는 김치통이 자리를 잡았다. 영어가 미래 자산이라며 식구들을 무리해서 외국으로 보내놓고 근 십 년 한국서 혼자 지냈지만 요리를 도저히 익히지 못했던 아빠가 직접 담근 빨간색 마늘장아찌가 반쯤 들어 있었다. 김치찌개로 10년을 살았다 하시는데, 난 그게 과장이 아님을 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카지노 쿠폰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빠를 아버님이 아니라 아빠님이라고 불렀다. 전화번호도 그렇게 저장되어 있다. 혼자 산 세월이 너무 길었던지 끝내 가족과 합치지 못하고 홀아비가 된 아빠에게 ‘님’까지 붙여가며 가장 통화를 많이 하는 것도 카지노 쿠폰였다. 어느 날은 아빠가 나한테 전화를 해놓고는 “야야 끊어라 며느리한테 한다는 걸 너한테 잘못 걸었다”라고 하기도 했다.


아빠 음식을 잘 아는 나는 김치통을 꺼내 라벨지를 떼고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아까 호떡 버렸던 음식 쓰레기봉투를 찾았다. 하지만 카지노 쿠폰가 통을 다시 원상 복귀시켰다. 상하지도 않았고, 가끔 느끼한 거 먹을 때 하나씩 먹으면 맛있단다. 하지만 난 안다. 카지노 쿠폰는 느끼할 때 탄산음료를 먹는다는 걸. 이걸 며느리 입장에서 당당히 버리려면 아직 맛을 더 숙성시켜야 하나보다.


아직도 우리 집 냉장고에서는 까마득히 잊혔던 것들이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이게 뭐였더라, 언제 넣었더라, 라는 질문을 우리끼리 하는데 대부분의 답은 ‘어머님 혹은 아버님이 언젠가 보내셨던 거’로 정리된다. 부모는 계속해서 자식 집 냉장고에 살고 있다. 내 미래 집도 거기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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