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수요일부터 27일 목요일 아침까지
산불이 청송으로 번지면서부터 주체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시가는 주왕산 근처, 거기서 우리 집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군민 대피령 재난문자를 보고는 전화를 걸어 당장 대피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산으로 둘러싸이기는 양가 마찬가지이지만(청송은 모든 곳이 산이다) 대로변에 큰 하천을 마주하고 있는 시가는 카지노 게임 추천이 덜 되었고, 그야말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인 우리 집을 떠올리자 가슴이 턱 막혔다.
엄마에게 전화해 농기계를 반납하러 갔다는 아빠가 돌아오면 바로 동네를 떠나라고 카지노 게임 추천. 아빠는 딸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인지 허허 웃었는데, 나는 10분 안에 출발하라며 소리를 꽥 질렀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콩국과 정성 들여 만든 샐러드를 한 상 차렸지만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에게 돈가스를 잘라주고는 고향 친구와 안동이 고향인 동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휴, 어쩌겠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뿐인데, 제발 잘 넘어가길 빌자."
태평하게 잠든 아이를 보며 침착하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청송 소식을 알 만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산불이 나오는 화면은 보지 않았다. 재난 문자와 뉴스 몇 줄만 보다가 엄마가 다시 집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콩국과 돈가스를 데워주고, 불 이야기를 잠깐 나눈 후 아이 옆에 누웠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드라마를 틀어두고 기사를 확인하다가 잠이 들었다. 강가에 있는 시가 동네는 밤새 불길이 지나갈 때까지 집을 지키는 분위기라 했다. 아마 농약 살포할 때 쓰는 ss기에 물을 가득 받아두고 기다리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다음 날 아침에 전화를 거니, 엄마네 동네는 아직 불에서 멀고, 뒷산과 앞산이 모두 불타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어른들은 마당과 집에 물을 뿌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카지노 게임 추천. 뒷산 불은 지나갔고(불이 진화된다기보다는 산 하나가 다 타고 옆산으로 불길이 이동하는 형세) 강 앞에 있는 산이 아직 타고 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연기가 자욱한 중에도 시아버지는 주왕산 자락에서 지척인 야산 사이에 있는 밭에 다녀왔다고 카지노 게임 추천.
"아이고, 위험해서 어째요."
"밭 앞에 산에도 불이 내려오고 있다더라. 그래도 우리는 괜찮다. 너무 카지노 게임 추천 말아라."
산불 사진과 지도를 찾아보려다가 겁이 왈칵 나서, 머리로 내가 아는 청송의 지형을 떠올려보았다. 저 산을 넘고 그 하천을 지나면 우리 동네까지 이어지는 산 어디에서부터 불에 탈까? 엄마아빠는 어느 길로 나서야 할까? 방류를 시작한다는 성덕댐 아래에 친척이 있으니 그 동네로 가면 되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끊어낼 힘이 없었지만 몸을 일으켜 지난주에 예약해 둔 건강검진을 갔다. 위내시경 수면마취를 하면 30분은 이 생각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겠지. 새로 지은 병원은 시설이 훌륭했고, 직원들도 모두 친절했다. 유방암 검사기에 딱 맞춰 움직이지 못해 간호사 선생님이 상의를 벗은 나를 쭉 백허그 상태로 자세를 잡아줬을 때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데일리친구를 만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고 함께 집에 와서 드라마 핫스폿을 보며 낄낄 웃었다. 학교에 갔던 여름이 돌아와 친구네 놀이터에 가자고 할 때 재난 문자에 엄마네 동네 이름이 등장카지노 게임 추천.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피령 떨어졌던데 영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동네 어르신들은 지금 뭐 해?"
"지금 우리 동네는 밭에 일한다."
"일하고 있을 때야?"
"연기가 보이면 그때 나가려고 준비는 다 해놨다."
사과밭에 스프링클러를 틀어놓으면 어느 정도 괜찮을까, 우리 집은 시가와는 차원이 다른 산골이라 불이 들어오면 온마을이 타버릴 텐데, 앞집에 귀농한 청년이랑 옆집에 사는 고향 오빠가 어른들은 챙길 수 있겠지,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은 어쩌려나... 소용없는 카지노 게임 추천이 또 뭉게뭉게 피어났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간단히 소식을 전하고 거세지는 바람을 맞으며 벤치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실컷 놀고 짜장면을 찾는 아이와 친구네 아이까지 넷이서 중국집에 갔다. 밥을 차릴 정신도 기운도 없으니 차라리 잘됐다. 따끈할 때 먹는 짜장면은 맛있었다. 많이 먹으면 체할 것 같아, 아이와 하나를 시켜 나눠먹었다. 엄마아빠는 이제 동네사람들 모두와 경로당에 모여 피난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 했다.
"체육관이랑 학교에는 인원이 많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끼리 움직이려고 한다."
"짐은 잘 챙겼어? 출발하면 꼭 연락해?"
"그래그래."
그 많은 약봉지들은 잘 챙겼는지, 갈아입을 옷과 먹을거리는 챙겼는지, 가스통은 잠갔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겁먹은 엄마에게 아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친구도 영덕 산골에 사는 할머니 카지노 게임 추천에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맛있게 짜장면을 먹는 어린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카지노 게임 추천에 매몰되지 않았다. 어떤 큰일이 나도 8살에게는 짜장면이 중요했다. 입가에 묻은 짜장소스를 닦아주고 밖에 나왔더니 노을이 근사했다. "언니, 나라 카지노 게임 추천에 못 살겠다 하다가도 애들 있어 살아야지 싶다 그렇죠?"
"맞아. 정말 그렇다."
집에 오자마자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진정제를 한 알 털어먹었다. 다음 주에는 새 약을 받아야겠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추천. 몇 년 동안 힘들 때마다 '진짜 힘들 때는 약을 먹으면 되는 거야.'하고 찬장 깊이 넣어둔 약이었다. 약을 털어 넣어놓고 물을 많이 마셨다. 심호흡을 하고 아이와 샤워를 카지노 게임 추천. 엄마아빠는 영천 방향에서 가까운 모텔에 들어가서 집에서 챙겨 온 과일을 먹고 있다고 카지노 게임 추천. 의성 쪽 길이 막혀 구미로 오기도 힘들겠고, 날이 밝아서 불이 안 번지면 서둘러 집에 돌아가 대비를 해야겠지.
아이에게 리모컨을 주고 기모티셔츠와 바지, 한겨울 점퍼를 몽땅 꺼내 거실바닥에 옷으로 산더미를 만들었다. 서울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고, 아이를 재웠다. 실컷 뛰어놀고 만화도 본 아이는 다리를 쩍 벌리고 코를 골며 금세 잠들었다. 남편이 먹을 도시락을 배달시키고 다시 드라마 핫스폿을 틀었다. 기모 티셔츠를 한 장씩 개서 비닐팩에 밀어 넣었다. 오랜만에 먹는 진정제라 그런지, 유통기한이 지나는 동안 발효라도 된 건지 약효가 대단카지노 게임 추천. 불행의 연쇄사고가 멈추었고 하품이 났다. 커뮤니티 정기 줌 모임에 들어가 소식만 전하고 나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하품을 하다가 자리에 누웠다. 일부러 폰은 거실 충전기에 꽂고 탭으로 하우스오브카드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고향집이 다 불에 타면 집을 더 크게 짓자고 해야지,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살게 되면 지지고 볶느라 난리겠지. 그럼 매일 글을 오천 자씩 써서 연재해야겠다. 제목은 '불난리로 시작하는...'
목요일 아침 7시 30분, 엄마아빠는 동네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밤 사이 다른 지역에도 불이 났다는 기사를 보자 다시 심장이 쿵쿵, 서둘러 진정제를 한 알 먹었다. 남편이 안방에서 듣는 뉴스 소리를 피하려고 하우스 오브 카드를 틀어둔 채 어젯밤 하다 만 겨울 옷 정리를 마무리했다. 두꺼운 옷들을 개고 말아 넣고 봉지를 단단히 여몄다. 청소기를 가져와 잘 안 맞는 흡입구를 밀착해서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림책 모임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기 약통에 진정제를 몇 알 넣어서 나가기로 했다. 집에서 불안 공포와 함께 하느니, 믿을 만한 사람들을 만나는 편이 낫다 싶었다. 오늘 만난 베라 윌리엄스의 그림책들과 책방 친구들 덕분에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비를 기다리며, 당연한 정의가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