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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별 Feb 03. 2025

외면했던 카지노 게임 혹은 추억을 꺼내 오늘을 쌓았다.

한 번 손에서 놓은 루틴들이 사라져 가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소한 습관을 지키며 탄탄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데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든다.


글도 쓰지 않고, 책도 많이 읽지 않고, 그간 쌓아왔던 좋은 습관들을 무너트리는 데엔 몇 달이면 충분했다. 대신 나는 손쉬운방법을 꺼내 들었다. 손가락만 까닥하면 1초 만에 있는 각종 유튜브와 끝나가는 시즌을 아쉬워하지 않을 만큼 연작이 은, 넷플릭스의 긴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따윈 들지 않을 만큼 마음껏 게으르고 더는 들어갈 곳 없을 만큼 긴 동굴로 숨어들어, 긴긴 겨울을 보내다 보니, 어느 날엔가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글을 써 볼 요량도 피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글은 외면하려 했던 나의 기억을 꺼내 들면서부터 시작될 수 있었다. 3년 간 꽁꽁 묶어두었던 기억이다. 다시 추억하려 하면 너무 아플까 봐, 다시 내가 다칠까 봐 감히 엄두도 내 볼 수 없었던 기억, 또는 그때의 추억.


(겉보기엔 아늑한) 나만의 동굴에서 무위도식하다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 추억들은 여전히 생생했다. 어느 날의 습도와 공기, 방 안의 풍경이나 다정한 말소리, 그때의 표정이나 사소한 동작들까지 모두 재현해 낼 수 있을 만큼.


어떤 카지노 게임들은 그래서 되려 외면되고 만다. 꺼내기가 두려울 만큼 아름답거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꽁꽁 묶어두려 해도 그것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다. 언제든, 얼마든지 빠져나와 속삭인다. '어디 한 번 외면해 봐! 그러긴 쉽지 않을 걸.'


과거의 추억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강한 신념마저 가진 듯하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꺼내어보았더니 추억할 수도 있겠다는 결심이 섰다.


전, 사진첩을 지울 엄두조차 나지 않아 아예 스마트폰을 통째로 바꿔버렸었지만. 이제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추억을 소환해 낸다.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이전 인스타그램을 보다 조심스럽게 과거의 사진들을 다시 다운로드했고,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카톡 프로필에 올릴 수도 있었다. 그것들은 외면한다고 해서 없어져버릴, 사라져 버릴, 기억들이 아니었다. 외면한다고 해서 아프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플 만큼 아프고되새겨지고, 조금씩 씹어 삼켜서 소화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 작업들을 나는 여전히 조금씩, 시간을 들여 공들여하는 중이다. 지난 과거를 과하게 미화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싶다.


하루하루의 사소한 습관들을 쌓아서 단단한 오늘을 만들어가듯이,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과거를 제자리에 돌려주고, 충실히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을 쌓아간다면, 그 시간들이 모여서 재현될 오늘의 기억들이 슬프지만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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