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술례길] 카지노 게임는 싫고 와인은 좋은 걸요
카지노 게임순례길 23일 차
가장 첫 번째 글 : #1 카지노 게임'술'례길의 시작 https://brunch.co.kr/@2smming/52/
이전 글 : #44 환대 그 자체, 베르데 알베르게 /@2smming/192
카지노 게임 순례길 23일 차
2018. 6. 5. 화요일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 산타 까탈리나 데 소모싸(Santa Catalina de Somoza)
결국 길은 맛집으로 통한다
하루 밤새서 걸은 여파를 몸으로 받은 탓일까. 눈은 떠졌는데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알베르게에서 거의 맨마지막으로 나올 정도로 늦장을 부렸는데도 잠이 달아나지를 않았다. 이럴 때는 바에 가서 맥주 처방을 받아야 한다. 곧장 눈에 보이는 가게로 가 'cerveza jarra jarra(맥주 많이 많이요)'라고 외치니 주인 분이 아침부터 맥주를 시키는 게 요상했던지 'jarra? jarra?'하며 되물었다.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운 하라 사이즈 맥주가 나오자마자 두 손으로 움켜쥐고 반절을 꿀꺽꿀꺽 마셨다. 금방 속이 뜨끈하게 데워지고 이제야 눈이 좀 떠졌다.
점심쯤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은 Astroga라는 마을이었다. 혼자서 늦게 출발한 만큼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보다도 두 시간을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 아직 그곳에 있었다. 카지노 게임가 싫어 내내 쉬고 있다고 했다. 맛집도 찾아놓고 말이다. 우리는 'Casa Maragata'로 갈 거라고 했다. 레온의 전통 음식인 'Maragato'식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마라가토 요리는 요리의 이름이기보다는 하나의 음식 문화로 보는 것이 좋은데, 가장 큰 특징은 디저트부터 시작해 메인 요리로 끝나는 순서다. 그리고 고기의 비중이 대다수다. 초리조 같은 소시지부터, 스페인식 블랙 푸딩인 모르씨야, 소, 닭, 돼지고기까지 다양한 고기로 무게감 있게 구성되어 있다. 곁들여 먹는 채소로는 병아리콩이 대표적이며 감자, 당근 등도 함께 나온다.
제일 좋은 건 코스 자체에 카지노 게임이 포함되어 있어 마음껏 카지노 게임을 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끝없이 안주거리를 할만한 고기 요리가 나오고, 카지노 게임도 무한으로 마실 수 있는 무한 카지노 게임 고기 뷔페와 같은 곳이었다. 천국 그 자체였다.
카지노 게임&고기 무한 뷔페
끝없이 이어지는 고기 행렬을 환영하며 카지노 게임을 연거푸 마셨다. 어쩜 무한으로 나오는 하우스 카지노 게임이 기름기 있는 육류 요리와 페어링이 이렇게 좋은지. 느끼할라치면 카지노 게임이 맛의 밸런스를 톡톡히 잡아주면서도 육향을 더 풍부하게 끌어내고 있었다. 음식과 카지노 게임이 너무 맛있어서 시간을 가지고 음미하는 것에 더불어 메뉴 자체의 양도 넉넉해 음식이 없어지는 속도가 더뎠다. 그러다 시간을 보니 벌써 여기 식당에 들어온지 2시간이 넘어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슷한 시간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역시나 오늘도 그만 걷고 계속 카지노 게임을 마시며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일어나고도 남았을 시간이지만 애써 시간을 못 본척했다. 핸드폰에 손을 대지도 않을 정도였다.
오늘 걷기 싫은 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모두가 자리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앉아있는 건 아닐지 눈치가 보였지만, 아직 저쪽에 앉아있는, 순례자들처럼 보이는 테이블 하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거기도 카지노 게임을 계속 시키고 있었다. 마치 술집의 영업시간이 거의 끝났을 때, 아직 남아 술을 마시고 있는 테이블과 묘한 연대감이 생기는 것처럼 그 테이블을 기준 삼아 눈치를 봤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도 슬쩍 그 테이블을 봤는데 아는 얼굴이 있었다. 종종 만나 열심히 술을 같이 마시던 카지노 게임의 술친구, 아미꼬였다. 이 가게에서 아미꼬를 만나다니! 우리는 빨간 얼굴로 반갑다고 얼싸안았다. 아미꼬도 근사한 점심을 먹고 마신 모양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아미꼬의 제안으로 초콜릿 박물관에 동행하게 되었다. (여기 아스트로가는 초콜릿이 예로부터 유명하다고 한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드문드문하다. 누군가 뭔가를 설명해주시긴 했는데 우리는 자꾸 모든 게 웃겼었다. 시식하라고 주시는 초콜렛 맛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의아해도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농땡이를 피우고 결국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카지노 게임 시작했다. 오늘 안에 숙소에 도착할 수는 있을지 막막했다.
비와 자갈이 함께하는 우중 워킹
땡땡이의 결과로 파워워킹만 남았다. 우리는 깜깜한 밤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숙소로 걸어가야 했다. 술기운을 방패 삼아 빠르게 카지노 게임 시작했는데, 아무리 몸의 온도를 높여도 비바람이 너무 춥게 들이쳤다. 이를 딱딱거릴 정도로 지나치게 추운 날씨였다. 바람이 앞에서 쳤다가 뒤에서 쳤다가 하염없이 몸을 때렸다. 등산화도 젖기 시작했다. 보통날에 비가 올 때는 등산화에 비가 묻는 정도였다면, 오늘은 아예 등산화가 폭삭 젖어버리는 비였다. 우비를 입고 있지만 그 안으로 비가 들이쳐 이미 안팎으로 젖은 지 오래였다. 핸드폰을 꺼내서 위치를 확인하거나 대안을 찾을 겨를도 없었다. 그냥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앞으로 가는 수밖에.
등산화는 빗물을 머금으며 점점 무거워졌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걸음이 불안정해지니 작은 자갈들도 하나씩 등산화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아래로 자갈들이 굴러다니며 물집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느껴졌다. 끔찍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혼자였으면 걸음이 느리게 처져버리거나 다시 아스트로가로 돌아가서 숙소를 찾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다섯 명이 모이니 오히려 힘이 되었다. 누군가가 처지면 응원을 해주고,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며 그렇게 으쌰으쌰 하면서 걸었다. 결국 깜깜해지기 전에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비를 쫄딱 맞고 생쥐꼴이 되어 나타난 우리를 보고 다들 놀랬다. 재차 우리 몸상태가 괜찮은지 물어봐주고, 등산화를 빠르게 말릴 수 있는 신문지도 주고, 젖은 물건들을 말릴 수 있는 곳도 알려주었다.
납처럼 무거워져 버린 등산화를 간신히 벗고, 물집이 터져 달라붙은 양말도 벗고 샤워실에 들어가니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다 풀려 피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일어설 힘이 생길 때까지 샤워부스에 기대 한참을 앉아있었다.
문득 같이 걸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였다면 분명 몇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을 거다. 산티아고순례길을 걷기 전에는 막연히 혼자 걸으면서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같이 걸으면서 느끼는 건, 더욱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상황들과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점점 소중해진다는 것이다. 오늘도 함께 걸어 즐거웠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지지대가 되었다.
물론 우리가 끝까지 함께 걷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른 루트로 걸을 수도 있다.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게 여기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어느 것 하나 단정할 수는 없지만(내가 어떻게 걸을지 또한) 우선은 지금 같이 걸어 좋다.
비 맞고 걷느라 술기운이 다 날아가서, 저녁에도 카지노 게임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