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만드는 걸까. 팔리지도 않는데.
십분의일은 굿즈를 만든다. 왜 만드는 걸까. 팔리지도 않는데.
몇 주 전 또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만들었다. 이번엔 마스킹테이프다. 성냥, 뱃지에 이은 세 번째 굿즈. 구태여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만들자!라고 결심한 2022년 이후 매년 한 개 꼴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만들어 내놓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여력이 된다면 다섯 번째 굿즈까지는 비슷한 텀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이종범 웹툰 작가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굿즈란 이거 왜 샀어? 라는 질문이 통하지 않는 물건, 쓰임새가 완전히 없는 물건인데 서사를 사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제목이 이종범의 스토리캠프) 맞는 이야기다. 어쩐지 쓰임새도 주고 싶어 성냥, 테이프 같은 걸 만들었고 실제로도 쓰기도 하고 싶지만 흔히 말하는 굿즈의 본질은 딱히 쓰임이 없는 무언가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 하지만 십분의일 굿즈가 어떤 서사를 가득 담은, 일종 스토리 브랜딩 차원이라고 하기엔 글쎄 조금 거창하다. 물론 십분의일이 나름의 히스토리는 확실한 곳이다만 매장이 하나뿐인 와인 바고 애초에 그렇게 브랜딩이 잘 된 곳도 아니다. 요즘 컨설팅을 받고 만들어지는 깔끔한 카페들, 그래서 톤앤 매너를 엄격히 맞춘 그런 곳이 아니기에 굳이 그런 연결선상에서의 굿즈가 필요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스토리 마케팅이 필요하면 차라리 블로그에 글이나 더 열심히 쓰면 된다.
처음 굿즈를 만든 건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름 5년이 넘은 곳이니 그런 것쯤 하나 매장에 두고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었다. 대단한 이유나 전략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이 귀찮고 돈이 되지도 않는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왜 이걸 하고 있는지 조금 알게 됐다. 한 개의 매장을 수년째 하다 보면 결국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손님을 맞이하고 와인을 꺼내고 치즈를 썰어서 플레이팅하고 그렇게 오픈하고 마감하고. 또 오픈하고 마감하고. 조금 바빴다가 많이 바빴다가. 반복되는 패턴을 겪으며 계절을 스치다 보면 어느새 아주 바쁜 연말이 찾아오고 또 한 해가 넘어간다. 변화를 주자고 굳이 잘 팔리고 있는 메뉴를 주기적으로 갈아엎을 수도 없고 공들여해 둔 인테리어를 바꿀 필요도 없다. 그저 유지 관리를 성실하게 잘해주면 된다. 아 당연히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마음가짐이 처음과는 달라지고 물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굿즈를 만드는 행위는 오래된 와인 바가 매년 옷을 갈아입는 행위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이 지루하다.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비슷하다. 좋아하는 공간을 계속 잘 유지해 가려면 주기적으로 새 옷을 해 입는 행위가 필요하다. 같은 일을 잘 반복하기 위한 우리 식의 의미부여인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이 그런 자신만의 의미부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십분의일에게 굿즈는 그런 차원에서의 소소한 의미부여다.
수십 년째 한 곳에서 국밥집을(또는 그 무엇이든) 운영하는 어머님, 아버님들은 어떤 의미부여를 가지고 있을까. 새삼 그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의미부여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좋은데
이왕 만든 거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더 팔렸으면 좋겠다.
모두 아직 재고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