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
나는 기대보다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카지노 게임을 보았다.
대화 속에서는 무척 쾌활하고
다정한 카지노 게임이었는데,
막상 마주한 표정은 굳어 있었고,
말끝은 자주 주저했다.
식탁 위 음식은 제법 맛있었지만,
대화는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의자의 나사처럼,
자꾸만 어긋나고 삐걱거렸다.
어색한 공기를 깨보려,
괜히 이런저런 말을 흘려봤지만
그는 대답 대신 물컵을 들었다.
어색함을 다 먹고, 나는 말했다.
"서점에 갈래요? 배도 부르고, 좀 걷고 싶어서."
거리를 걷는 동안나는 몇 번이고,
이 자리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걸려 있었고,
나는 무심히 말했다.
"달이 참 예쁘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짧게 말했다.
"손톱 같네."
딱, 거기까지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다음을 이어주지 않는 카지노 게임이었다.
서점에 도착해 나는 몇 권의 책을 골랐다.
괜히, 손끝이 조금 더 욕심을 부렸다.
책 등을 들춰보다 보니,
어느새 팔에 들린 책이 몇 권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많이? 오늘 저녁값은 훌쩍 넘겠네."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 말에 담긴 잰걸음의 계산이 공기를 식혔다.
내가 쌓아 올린 책 보다
오늘 쌓은 대화가 더 얄팍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나는 굳이 말했다.
"다음엔 제가 밥 살게요."
얻어먹은 자리가 마음에 걸려서라기보다,
서로에게 남긴 공백을 어떻게든
메워보고 싶어서였다.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황급히 올라탔다.
묵직한 가방 안에는 지젝의 책 한 권.
사실, 오늘 그와 나눈 어떤 말보다
그 책장을 펼치는 일이 더 기다려졌다.
버스가 출발할 즈음, 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책한테 졌네."
나는 웃지 않았다.
그 말에 담긴 아쉬움을 알아버린 카지노 게임처럼,
그저 고개를 살짝 숙였을 뿐이다.
어쩔 수 없잖아.
나는, 그런 카지노 게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