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산문집 <호미 : 열림원(2007)
2025년 새해 처음 읽을 책으로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 <호미를 골랐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박완서 읽기였고, 마침 고향집에 책이 있어서였다. 은근히 기대도 했다. 띠지에 적힌 '깊은 성찰, 묵직한 울림'이라는 수식어처럼 일흔일곱 살 노작가로부터 새해의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삶의 지혜라는 게 책 한 권으로 쉽게 얻을 건 아니지만 박완서 선생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름길로 가겠다는 얕은수였다.
자기 영역을 지키고 확장하려는 욕심은 나무가 사람보다 더 인정사정없다는 건 이 조그만 마당을 가꾸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하긴 나무는 사람이 무료 카지노 게임니까 인정씩이나 끌어다가 이해하려 들 일도 무료 카지노 게임지만. 약자의 편을 드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건 그래도 사람밖에 없으니 어쩌겠는가. 나는 그래서 살구나무가 좀 미워지더라도 라일락 쪽으로 뻗은 가장귀를 왕창 잘라낼 목적으로 튼실한 받침대 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가장귀를 끌어당겨만 놓고 차마 잘라내지 못했다. 나무의 체온이랄까, 살아 있다는 유연함, 피돌기 같은 수액의 움직임, 그런 게 생생하게 느껴질 뿐 무료 카지노 게임라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돌기는 내년 봄에 터뜨릴 꽃망울의 시작이 아닌가. 살구꽃도 벚꽃도 매화도 우리 눈엔 어느 날 갑자기 활짝 피어나는 것 같지만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구나. (34-35쪽)
본인 집 마당에서 흙을 다독이며, 풀과 꽃과 나무를 만지며 풀어낸 깨달음은 정초의 마음결과 나란히 했다. 정갈한 마음으로 60쪽 정도 읽었을까. 갑자기 참여정부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이어 한국 현대사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견딘 데 대한 세월의 자부심까지. 생뚱맞은 흐름에 책을 공손하게 읽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지나 일가를 이뤄온 데 대한 어르신들의 자부심은 불가피하고 존중하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했던 어른의 지침, 울림이 담긴 문장들은 아니어서 아쉬웠다. 그러다가 아래 문장을 읽고 피식했다.
(배경 설명 : 일제 강점기 때 서울 소학교에 진학해 낯선 일본어로 말해야 했던 상황)
일 년을 꼬박 다니고 나서 교과서를 제대로 읽을 수 있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가 없어서 교과서 외의 일본말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고 엄한 가정교육으로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생각을 지어서 말할 자신이 없었다. 말을 못 해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오줌을 싼 적이 다 있다. 운동회 날이었는데 점심시간 빼고는 휴식시간이 따로 없이 온종일 응원도 시키고 출전도 시켰다. 변소에 가고 싶으면 무료 카지노 게임한테 허락을 맡으면 되는데 그 소리가 하기 싫어 주리 참듯 하다가 폐회식을 위해 도열한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꺼지고 싶었고 그걸 목격한 모든 아이들이 다 지상에서 꺼져주기를 바랄 정도로 그 사건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195쪽)
친구들 앞에서 오줌을 싼 심경을 묘사할 때 쓴 단어 '꺼지다'란 표현이 반가워서였다. 점으로 소멸하고 싶을 때 스스로 '아 꺼지고 싶다...'는 자학을 종종 하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도 이런 상스러운(?) 단어를 쓰시는구나. 심지어 '모두 꺼져줬으면...'이란 생각도 자매품으로 하는데 역시나 세트구나. 거침없는 이 단어를 보면서 친근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내가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 2015년 1월 29일 황현산 교수 트위터
황현산 선생님의 위 문장을 떠올렸다. 나조차 물리적 나이와 정신 상태를 동일하게 두기가 힘든데 다른 사람들에게 무얼 기대한 것인가. 어른은 어른답게, 어른으로서, 어른이니까 마땅히 현명할 것이고 어린 사람들에게 전수할 지혜가 있을 거라는 무료 카지노 게임.
이런 류의 고지식함은 삶을 잘 지치게 하는 것 같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까. 마땅히 그럴 것이란 막연한 무료 카지노 게임를 쉽게 하지 말자. 정초에 얻은 첫 깨달음이다. 특히나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는 질서와 약속이 무너지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