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일기장
열흘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대형 산불이 진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산불 소식을 알게 된 건 금요일 종례시간 즈음이었다. 종례를 하는데 갑자기 긴급재난문자가 왔고 그 마을에 사는 학생이 얼굴이 하얘져서 집으로 달려갔다. 이때만 해도 모두 그 학생을 걱정했을 뿐 우리 지역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불이 난 곳은 학교와는 제법 떨어진 곳이었고 바로 진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작은 불들이 그래왔듯이.
퇴근한 금요일 저녁,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불이 학교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 상황을 확인했다. 학생들은 무료 카지노 게임를 준비하고 있거나 무료 카지노 게임한 상태인데도 밝고 침착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토요일 오전, 뉴스에서는 산불 진화율이 70퍼센트라고 했다. ‘이제는 꺼지겠구나. 그럼 그렇지.’ 큰일 날 뻔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숨 돌리고 아이와 도서관에 갔다. 점심을 먹고 놀고 있는데 다시 긴급재난문자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다시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이번에 불길이 번진 곳은 내가 사는 마을 근처였다. 우리 마을 앞 산이 불타고 있었다.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데 몇 번의 재난문자가 더 오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혼잡했다. 위험지역에서 빠져나오는 차들, 대피를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마을분들은 다행히 바람의 방향이 우리 쪽이 아니라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시며 모두 산을 보고 있었다.
이제 해가 지고 있었다. 밤에는 헬기도 못 뜨고 진화 작업을 할 수가 없다. 혹시라도 밤에 불이 번진다면? 대피를 하기로 했다. 남편은 재빨리 반려동물이 같이 지낼 수 있는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했다. 딱 한 군데 있었다. 대피를 생각하고 챙길 짐을 생각하니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고양이와 고양이 사료, 노트북, 차 키, 당장 입을 옷가지, 그리고 내가 챙긴 것은 일기장이었다.
집이 불에 타는 상황에서 지킬 수 있는 것도, 챙겨나갈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현금이 들어 있는 금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종이 통장은 큰 의미도 없고, 열심히 만들었던 아이 성장앨범은 그 권수가 너무 많아서 챙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지금 생각하니 챙길 걸 그랬다. 다시 무료 카지노 게임해야 한다면 1,2권이라도 챙겨야겠다.) 평소 여행 갈 때 챙기는 세면도구 가방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 모두 다 부질없었다.
간단한 짐을 가지고 숙소로 갔다. 병원 말고는 밖에 나와본 적 없는 고양이는 계속 불안해하고, 아이는 이상하게 흥분되어 있어 시끄러웠다. 다행히 불은 우리 마을까지 넘어오지 않았고, 우린 불안하고 시끄러운 대피의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은 꺼질 듯 다시 번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열 흘만에야 주불의 진화가 완료되었다.
잔불 처리를 위해 아직도 헬기가 날아다니고 소방관들도 남아 고생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이 꺼졌다. 지난 열흘이 꿈처럼 느껴진다. 매일 구름이 걸린 산을 보면서 아침을 맞이하고 출근했었는데 이제 곳곳이 검게 그을린 나무들로 가득하다. 푸르렀던 산이 까맣게 변한 모습이 아직도 낯설고 슬프다.
대피했던 그날 밤, 내가 챙긴 것은 고작 노트북과 고양이와 일기장뿐이었다. 살면서 모아둔 수많은 물건들, 추억이 담긴 사진들, 책장 가득 꽂힌 책들... 모두 두고 떠나야 했다.
산불이 있기 전, 사춘기도 아닌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삶은 더 복잡해졌다. 책임져야 할 것은 늘고 시간은 부족하다.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중요한 것이 뭔가. 매일 고민했다.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에서 일도 잘하고 싶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있다.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고 싶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가 많다. 일로 머리가 복잡할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고양이와 놀아주는 일은 늘 나중에로 미룬다.
이번 대피로 삶에서 무엇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지 알 것 같다. 처음에 우리 집이 다 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때 생각난 것은 가족밖에 없었다. 남편, 아이, 고양이, 그리고 일기장.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결국 어떤 존재였다. 물건이나 일이 아닌 마음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매일 아침 검게 그을린 산을 보며 출근한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본다. 산불은 많은 것을 태웠지만, 남긴 것도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부모님이 오셔서 다 같이 이야기하고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대식구가 밥을 먹으니 더 맛있었다. 꽉 찬 행복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료 카지노 게임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그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 물건이 아닌 관계를 가꾸는 것. 그리고 매일의 작은 행복을 충분히 느끼는 것.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늘 같은 줄만 알았던 초록 산이 이제는 없다.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 같은 가족도, 다른 사람도, 고양이도 당연하지 않다. 소중함을 알고 아껴야 계속 지킬 수 있다.
앞으로의 일기장은 더 소중한 이야기로 채워보려고 한다. 직장에서의 업무 보다 학생들과 나눈 따뜻한 대화, 아이와 함께한 소소한 일상, 고양이의 그릉그릉 소리, 남편과 나눈 대화들로. 불이 나기 전, 복잡했던 내 마음은 이제 조금 더 명확해졌다. 이제 나는 알겠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랑이다.
*산불 진화를 위해 애써주신, 아직도 애쓰고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