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소비만 하는 시민들... 경제에도 봄이 왔으면
아침 일찍 근처 대형마트에서 카지노 게임을 할인행사한다는 알람이 왔다. 오늘 같은 큰 폭의 할인 행사는 이전에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무수한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물건을 쟁취했을 때의 뿌듯함과 만족감, 이전에 통닭 행사에서는 마감 직전에 간신히 살 수 있어서 더 짜릿했던 기억이다. 그 다음에 참여했던 돼지고기 행사는 오늘과 같이 아침 일찍 시작되는 것이어서 근처를 지나다 얼결에 참여했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대략 가늠을 했다. 이전 행사에서 오픈 10분 전에 100미터 가량의 줄이 늘어섰으니 이번에도 그쯤 도착하면 무리 없이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 3000원 하는 카지노 게임은 1인당 두 판 한정. 적지 않은 양이지만 우리 부부는각각 한도까지 사기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
카지노 게임만 사고 빠지는 사람들
매장에 도착하니 굳게 닫힌 입구에 10미터씩 이어진 서너 줄의 무리가 있었다. 한 줄로 늘어서야 도착 시간에 맞춰 차례대로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우후죽순 줄이 늘어지기 시작하면 이미 공정한 경쟁은 어려워진다. 걱정한 대로 슬그머니 또 다른 줄이 만들어졌고 늦게 도착한 카지노 게임은 새로운 줄을 빠르게 채웠다. 나머지 줄에 서 있던 카지노 게임의 눈총과 개중 참지 못하는 카지노 게임의 날 선 지적에도 그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고 딱히 제지할 수단도 없었다.
5, 6개의 줄이 혼란스럽게 섞이며 다시 새로운 줄을 만들려는 찰나 매장의 문이 열렸다. 먼저 만들어진 줄의 카지노 게임은 나중에 줄을 만든 카지노 게임이 자신보다 먼저 들어가지 못하도록 적대적으로 출입을 제지하며 저마다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나중에 줄을 만든 카지노 게임도 자신들의 위치를 알았다. 부정한 행위로 앞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들은 적당히 무리에 섞여 매장 안으로 밀고 들어갈 기회를 노렸다.
입구에서의 치열하고 맹렬한 소란과는 달리 매장에 들어서니 그 넓은 매장은 텅 빈 것처럼 한산했다. 빠르게 이동하는 카지노 게임도 입구처럼 혼잡하지 않았다. 저마다 행사장을 향해서 지름길을 찾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채로 앞서 가는 카지노 게임을 쫓기 바빴다.
남편과 내가 두 판씩, 총 네 판의 카지노 게임을 받아 들고 나오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고급차도 아니고 명품 브랜드도 아니고 더구나 유정란도 아닌 그저 보통의 카지노 게임 행사에 오픈런이라니. 앞으로 한 달은 너끈히 이 카지노 게임로 충분하겠지만 나와 같이 서 있던 사람들도, 새로 줄을 만들어 눈총을 감당한 사람들도, 그 와중에 어른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며 아빠에게 묻던 초등학생도 모두가 참 어렵게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경기 침체로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는 지표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보도(2025.3.14. MBC)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경제위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지난(3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산업 활동 동향'에 따르면 생산, 소비, 투자 모두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한다. '전산업 생산은 지난해 12월 대비 2.7% 하락'했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2월 이후 가장 큰 감소'라고 했다. '소매 판매는 0.6% 떨어졌으며, 설비 투자는 14.2% 내려갔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감소 지수가 내수 회복의 지연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 때문이라고 진단했는데, '생산, 소비, 투자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는 지난해 11월 이후 두 달 만에 나타났으며, 트리플 감소 현상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세를 보인다는 의미'라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내수 경기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한다. 12·3 비상 계엄 사태 이후 내수 위축, 건설 경기 침체, 청년 고용 부진의 심화는 따로 언론 보도를 접하지 않아도 이미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도다. 게다가 산불 피해 상황도 심각하다. 주요 경제 연구 기관들의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 중반 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이미 서민들은 줄일 수 있는 만큼 소비를 줄이고 있으며 최소한의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누적된 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값싼 달걀, 값싼 고기, 값싼 통닭은 그나마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는 소중한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오픈런을 감행해서라도 꼭 사야만 하는.
싸게 샀는데 개운치가 않다
이날 우리는 목표했던 네 판의 달걀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외에도 오픈런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목표했던 것만 사고 나오는 모습이었는데,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장의 의도는 미끼 상품으로 손님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겠다는 전략이었겠지만, 이미 사람들의 소비 심리는 계획한 것 외에는 지갑을 닫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집에서 나설 때는 제법 추웠는데 오픈런으로 한바탕 뛰고 나오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점퍼 지퍼를 여니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오늘의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지혜로운 소비? 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분명 지혜로운 소비지만 마음은 어쩐지 개운하지 않았다. 분명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쩐지 입이 썼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애순의 말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사계절이 순차적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인생의 사계절은 지루한 장마와 태풍이 이어지는 여름이 계속되기도 하고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 치는 겨울이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고. 애순의 회한 어린 독백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많은 국민을 괴롭혔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며 카지노 게임은 '다시 봄'을 기대한다. 그러나 봄날의 환희는 찰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 찰나는 우리의 마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모진 삶에도 불구하고 잠깐 훈풍이 불어와 몸을 뜨뜻하게 하는 순간, 모든 시름이 기적처럼 잠시 지워지는 순간. 그런 '봄날'의 기적이 부디 구석구석 다 내리쬐기만 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