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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Mar 01. 2025

안녕하세요, 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수'입니다!


과식하면 다들 어떻게 소화를 시키시는지? 주변에 보면 몇 시간씩 걷는다는 사람도 있고 그냥 누워 잔다는 사람도 있고 하루종일 굶는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떠오른다. 나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서 실컷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다. 이 방법은 효과가 거의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에 목을 약간 희생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면 고음이 꽤 잘 올라간다. 언제부턴가 서서히 그렇게 되어 가더니 제법 자신이 붙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체득한 느낌이다. 예전에는 고음을 내려면 목을 쥐어짜듯이 해서 누가 봐도 안타까움 내지는 웃음을 유발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음들을 쉽게 내지른다. 가성으로 편안하게 낼 수 있는 음역대도 같이 올라갔다. 신기한 일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맺은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매일 꼬박꼬박 새벽 기도를 다닐 정도로 열성적인 신도였던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말이다. 그때부터 나의 유년 시절 전부라고 해도 좋을 시절에 독실하고 완고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녔다. 그 교회는 성도가 모두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교회라서 한 명 한 명의 성실한 참여가 무척 중요했다. 게다가 목회자는 아빠였다. 엄마는 사모님이자 찬송가 반주자였다.


나는 그들의 첫째 자녀로서 예배에 헌신하며 동생들 및 다른 교인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예배 중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티가 나는 일은 찬송가 부르기였다. 열심 성도인 척하기에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일종의 기독교적 열정을 어설프게 흉내 내어 외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런 연기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의 내용은 늘 똑같으니 말이다. 게다가 몇 번 시도해 본 결과, 나는 연기에 재능이 별로 없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찬송가는 사정이 달랐다. 찬송가는 600곡이 넘고 그때그때 부르는 곡이 달라졌으며, 처음 불러보는 곡이 나오면 심지어 반갑기까지 했다. 오, 이 노래는 뭘까? 1절은 다른 성도들의 노랫소리를 심혈을 기울여 듣고 2절부터 작은 소리로 따라 부르다 보면 3절에서는 제법 자신이 붙었고 4절은 마치 원래 알던 노래처럼 부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찬송가는 4절에서 많으면 5절까지 있었고 아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절만 부르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기에 나는 그런 식으로 찬송가를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매주 일요일 예배 참석은 비록 강제적이기는 했지만, 그 시간에서마저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와 재미를 찾아냈다.*


*부디 이 철없는 유년의 기억이 교회를 진지하게 다니고 있는 수많은 신앙인에게 모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에도 지금도 신앙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알기 어려워서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교회를 갈 수밖에 없었던 어린 아이에게는 그저 지루한 시간을 버티는 것만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은 부른지 오래되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찬송가에는 좋은 노래가 꽤 많다. 하루종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될 만큼 중독성 있는 곡들도 있다. 찬송가 계의 빌보드 탑텐이라고나 할까. 그런 곡들은 교회와는 별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멜로디 정도는 안다. 가사의 의미를 떠나 노래 자체가 좋고** 부르다 보면 저절로 내면의 어떤 신성함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어딘가로 서서히 날아오르는 듯한 고양감을 준다. 게다가 부모님은 내가 찬송가 부르기에 그토록 열정을 바치는 모습에 흡족해하셨기에, 드물게 부모님과 나 모두가 윈윈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부모님 기분을 좋게 해 드리려는 마음으로 알 수 없는 신에게 찬송을 바쳤다.


** 여기에서 이렇게 빈곤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달라. 문외한이라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해보자면 그런 곡들에서는 곡의 멜로디, 리듬, 형식과 구성이 잘 짜인 오래된 원목 가구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빈틈 없이 촘촘하면서도 유유히 드넓은 바다로, 바다로 계속 흘러가는 강물 같은 느낌이다. 찬송가는 어쩐지 복잡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다.


어려서부터 찬송가를 열심히 불렀던 탓일까. 열세 살 때 친구를 따라 처음 가 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 없이 친구들끼리 시내버스를 타 본 적도, '시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해 본 적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장소는 그저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의 일부였을 뿐, 그 공간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는지 전혀 몰랐던 내게 그 친구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많이도 열어 주었다. 일찍이 노는 재능에 눈 뜬 그 친구 덕분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오락실, PC방, DVD방, 캔모아***까지 수많은 장소들을 들락거리며 그곳의 문법을 배웠다. 어른들의 세계에 당당히 입성한 듯한 착각이, 왠지 모를 금기를 위반한 것처럼 짜릿하고 달콤했다. 나는 그때 처음 입성한 여러 장소들 중에서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특히 더 이끌렸던 것 같다.


***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생과일 디저트 전문점이다.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춘 카페 같은 느낌이 났는데, 화사하고 은은한 파스텔 톤이 돋보이는 벽지와 패브릭 소재의 커튼, 나무 탁자와 흔들 그네 등이 비치된 인테리어를 갖추었고 온갖 종류의 생과일 주스나 빙수, 파르페 등을 비교적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주문할 수 있었다. 그러면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편안히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심지어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와 생크림을 무한으로 제공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최고로 많이 받아 먹은 건 세 번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가 에코 범벅이 되어 내 것인듯 아닌듯한 음성으로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다란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 방을 채웠던 음성처럼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지금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나를 분명히 사로잡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감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순간이나마 사로잡고 싶었다. 때로는 내 안에 잠겨있던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토해내고, 뒤흔들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노래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공간에 매혹되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매혹하고 싶었다. 어릴 적 부모님께 칭찬을 받으려다가 찬송가의 매력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세계에도 곧 푹 빠져들었다.


틈만 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갔고 친구들과 만날 때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필수 코스가 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마이크에 내 음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를 수많은 반복을 통해 감으로 익혔다. 마이크가 내 목소리를 어떻게 왜곡하든, 거기에 내 목소리를 맞추어 더 매력적인 음색을 흉내 내려 애썼다. 그 일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했다. 처음 만난 친구들과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면 언제부턴가 그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미세하지만 분명히 달라지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하면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은근하고 불투명한 시선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은 노골적일 때도 있었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감탄사를 내뱉거나 대놓고 칭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와. 너 노래 잘한다.” “오올~” 같은 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말들은 나를 충분히 우쭐하고 기쁘게 했다. 그런 날에는 그들만을 위한 라이브 공연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에 취직하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내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어떤 장소인지를 나름대로 정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제 막 알게 되었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사람들(대학 동기들, 동아리 사람들, 직장 동료들…)과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게 될 때 소위 전문가에게 보컬을 배워본 적도, 창법이라는 것이 뭔지도 잘 모르고 기초 지식조차 없는 내가 자신 있게 사람들 앞에서 "저 노래 좀 합니다."라고 말하기는 멋쩍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저 그렇게 잘 부르지는 못해요."라고 겸손을 떨기도 거북스러웠다. 저렇게 말해놓고(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 같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면 대부분 너무나 부담스러울 정도의 경탄 어린 반응이 돌아오는데, 그 상황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내가 노래를 마치고 나면 부러움과 자조가 뒤섞인 말을("아유, 너무 잘 불러서 이다음에는 도저히 못 부르겠다. 저는 듣기만 할게요.") 할 때, 그 말이 내가 성급하게 둘렀던 겸손의 외피를 걷어내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일말의 의미("나 노래 잘 못해. 그리고 너넨 그냥 못해.")를 드러내는 것 같을 때, 마치 내가 거짓말로 저들을 감쪽같이 속여야 성공하는 리얼리티 쇼 출연자가 된 것 같았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사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많이 놀라셨나요. 미안합니다...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소소하지만 사소하지는 않은 실패의 경험을 데이터 삼아, 또 주변에서 놀라울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사람들의 처세술을 어깨너머 배우며,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게 될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제법 능글맞게 스스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수"임을 어필하기도 한다. "가수"라는 말 앞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말을 붙이면 안심이 된다. 절대 가수가 못 될 것이고 가수를 꿈꿔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노래를 아주 잘하지도, 아주 못하지도 않는 애매한 재능을 계발해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공간 안에서만큼은 여러분의 귀를 가수처럼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어요, 라는 정도의 자신감과 포부가 담긴 말이다. 눈을 찡긋하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등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를 곁들여 가볍게 전달하는 것이 포인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특수한 공간 안으로 한정되어 있는, 그러므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바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그 말의 유용성에 대해 생각한다. 한정적이고 유동적인 동시에 틀림없는 나의 일부이자 전부는 아닌 나로 전환되는 순간이 좋아서, 여전히 혼자서 혹은 여럿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가는 일이 즐겁다. 이것이 며칠 전 과식으로 소화불량에 시달릴 때 코인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세 시간 단독 라이브를 펼쳤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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