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보다 효과적인
13년 차 방송 작가에서 어쩌다 계약직 공무원이 된 게 작년 가을이었다. 겨울을 지나 봄이 막 시작될 무렵 공무원을 때려치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타는 공무원이 최고인 줄 아는 어떤 사람의 한마디였다.
"그렇게 일 열심히 해봐야 다 소용없으니까 윗사람들 비위 맞춰서 계약 연장할 카지노 게임이나 하라고요."
처음에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슬펐다. 슬픔에 잡아먹힐 수는 없어서 의원 면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건 원래 내 자리가 여기라는 무의식이 반영된 걸까. 공무원일 때도 종종 방송일 하는 꿈을 꿨으니 직업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방송 작가인 걸까. 아무튼 좋았다, 처음에는.
방송국 복귀와 함께 왕복 4시간 장거리 출퇴근이 시작됐다. 게다가 방송이 가까워질수록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이건 주말도 예외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막차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전력 질주를 했지만 결국 차를 놓치고 플랫폼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울면서 카지노 게임했다.
'하, 마흔에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나는 막말을 했던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카지노 게임하는 것처럼 공무원만 그렇게 최고는 아니라고. 너 같은 사람은 모르는 훨씬 넓은 세계가 있다고. 나는 너처럼 그렇게 고이지 않을 거라고.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할 복수를 하려다가 이렇게 호되게 당하나, 싶었다.
몸도 마음도 무너진 며칠을 보냈다. 주말이면 카지노 게임한테 들러붙어서 아무 말이나 떠드는 게 사는 낙이었는데 언제 같이 밥을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어제는 지하철이 끊긴 시간에 기차에서 내려 카지노 게임이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차에 타자마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네가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카지노 게임만 해도 눈물이나
힘든 시간 날 지켜준 사람
이제는 내가 그댈 지킬 테니
너의 품은 항상 따뜻했어
고단했던 나의 하루에 유일한 휴식처
나는 너 하나로 충분해
긴 말 안 해도 눈빛으로 다 아니깐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
모든 날, 모든 순간 – 폴킴
카지노 게임은 다음 주에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부탁을 받아 축가를 연습 중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밥은 제때 먹었는지, 대체 언제까지 무리할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았을 텐데 노래만 불렀다.
"여보, 나 왜 우냐."
나도 카지노 게임에게 휴식처가 되려면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백 마디 잔소리보다 노래 한 소절이 더 효과적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