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이라는 조작
오늘은 카지노 게임. SNS나 뉴스가 아니었다면 모른 채 지나쳤을지도 모를, 내겐 별 의미 없는 날이다. 카지노 게임뿐만 아니라 어버이날, 스승의날, 생일 같은 카지노 게임들이 난 여전히 낯설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 추억
내가 '나'라는 존재를 세상과 분리해 인식하던, 생애 최초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에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셨다. '나'는 자정 너머 새벽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 식당을 운영하지만, 희한하게도 집안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가정의 장남이었다. 부모님은 잦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주기로 부부싸움을 했다. 기울어가는 가세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돌아오는 카지노 게임들을 유독 챙기지 않던 우리 집의 분위기는 지금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카지노 게임 선물을 받아본 적도, 어딜 놀러간 기억도 없다. 생일? 부모님은 아직도 내 생일이 언제인지 정확히 모른다. 어머니는 생일로부터 두 달쯤 지나면 "니 생일 지나갔나?"라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묻곤 하신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문화도 꽤 나중에 알게 됐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케이크를 비롯하여 치킨, 피자, 떡볶이 등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들로 가득한 생일상을 보고서야 "아, 남들은 생일을 이렇게 보내는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됐다.
이처럼 카지노 게임은커녕 대부분의 카지노 게임에 얽힌 추억이 없다 보니, 지금의 나는 남들이 분주히 챙기는 카지노 게임들에 꽤 무심한 편이다. 기념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평일의 지루함을 사랑하는 나여서 기대와 실망의 불균형이 일으키는 파도가 마음을 어지럽히기만 하는 특별한 날들은, 내겐 그저 신경 쓸 게 많은 불편한 날일 뿐이다.
2. 조작
세상 물정을 몰랐을 땐 각종 카지노 게임에 꽤 마음고생을 했다. 생일이나 카지노 게임은 별다른 감정 변화가 없었지만,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혹은 빼빼로데이처럼 뭔가를 주고받는 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추측컨대 그건 다른 날들에 비해 연애와 관련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DNA 때문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이성에게 관심이 많았다. 유치원 때 선생님이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을 묻자, 반에서 가장 예뻤던 피아노 치는 친구와 뽀뽀하고 싶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기면,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대부분 그랬듯 짓궂은 장난으로 호감을 표현하곤 했다.
중학교 이후로는 좋아한다는 카지노 게임로 적절한 '절차'도 없이 무례하게 들이댄 적은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가 생기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 2학년 때 첫 연애를 시작으로 살면서 꾸준히 연애를 해왔다. 하지만 연애 횟수를 얘기할 때면 성인 이전의 연애는 빼놓는다. 워낙에 어리고 미숙했던 탓에, 연애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운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의 감정들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감정의 깊이나 넓이가 얕았기에, 돌이켜보면 그저 순간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소꿉장난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은근히 여자가 많다며 농담 섞인 말을 했지만, 매해 돌아오는 묵직한 카지노 게임마다 난 이상하게도 혼자였다. 한 사람과 오래 사귀는 법을 몰랐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지만, 당시엔 뜻깊은 날에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여자친구와 데이트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리는 친구들이 더 부러웠다. '약속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날'에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왠지 승자처럼 보였다. 그러다 성인이 된 후로는 남부럽지 않은 연애 경험을 이어갔는데, 한때 부러워했던 이들처럼 카지노 게임들을 보내보니, 생각보다 별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랬다. 모든 건 조작이었다.
세상의 모든 카지노 게임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고, 설사 역사적인 날이라 해도 그에 맞는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 법은 없었다.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출처도 명분도 불분명한 관념을 주입한 세상을 탓해보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허락도 없이 머릿속에 들어와 맴돌던 생각들이 어느새 망상으로 변해 나를 괴롭히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내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이기 전에 그냥 12월 25일이었고, 12월 25일은 '12월 25일'이기 이전에 단지 '오늘'이었다. 오늘의 날짜를 기억하는 건 남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한 개인에게 부과된 최소한의 일이니 하는 게 맞지만, 그런 날에 특정 이미지를 덧씌워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건 자기자신에게 고통을 부과하는 일이었다.
카지노 게임을 기념하지 않는 건 다수에게 외면받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지노 게임이라며 어딜 가고 뭘 하려 할 때, 나는 평소처럼 카페에 앉아 이런 글을 쓴다. 글쓰기가 좋아서인 것도 있지만, 지루한 일상이란 갑옷을 입고 나를 지키려는 심산도 있다. 내겐 오늘과 더불어 이제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게 될 모든 날들이 하나 같이 특별한 카지노 게임이다.
CONN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