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기억나지않는다
12.
다음 날 나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요양원처럼 운치 있는 곳에 있었다. 이런 곳에 병원이 있다니. 아주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묘한 것들이 자주 보이는 것처럼 힘이 빠지는 것도 없다. 할머니가 문 앞으로 나오기로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나는 로지에게 주려고 꽃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꽃집이 없었다. 아니 꽃집이 있었는데 가보니 꽃집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때 병원 문으로 로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로지라고 바로 알아본 건 건물에서 매일 스치는 덩치가 있는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였기 때문이다. 로지는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그래서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자꾸 생각이 났구나. 하는 순간, 나는 로지에게 걸어가는데 걷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로지에게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책 님? 저예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금 좀 이상하죠?
나: 이건 생각 대화?
로지: 네, 생각 대화예요. 하지만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있어요.
나: 내가 지금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님 바로 앞에 있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맞아요. 호호호.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았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로지: 책 님?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책 님은 몇 해 전에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는 바람에 뇌 손상을 입고 입원을 했어요. 뇌는 점점 죽어갔고 심장만 살아있는 상태였어요. 우리는 책 님이 살려고 하는 의자가 매우 강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허락받아서 매일 뇌에 전기적 신호를 보냈습니다. 레이저 같은 것입니다. 단백질의 분리가 된다면 당신의 의지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당신은 전기적 신호를 받은 덕분인지, 아니면 살려는 의지가 강해서인지 죽어가던 뇌가 살아나는 듯했어요. 손가락을 움직였고, 눈동자의 떨림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과 생각 대화를 나눴고 성공했어요. 당신이 말해준 소설과 영화는 시간을 들여 봤고, 그걸 당신과 이야기하면서 즐거웠어요. 이 정도면 당신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우리 연구가 드디어 결심을 맺게 되었다는 것에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어요. 당신은 며칠 전부터 급격하게 신체 반응이 사라지고 있어요. 제 말 듣고 있어요?
이 럴 수 가. 로지가 식물인간이 아니라 내가 식물인간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생각을 하는 나는 누구일까. 뇌에 전기자극을 준 덕분인지 어떤 실험을 해서 나 자신이 둘로 쪼개진 것일까. 죽어가는 나와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있는 나.
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네, 책 님, 저 여기 있어요.
나: 그렇다면 신체가 죽고 나면 지금 생각 대화를 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부분 때문에 당신을 만나려고 한 겁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이 새롭게 살아갈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해요. 언젠가는 저도 그 세계 속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 곁에 있기로 했어요. 육체라는 건 그다지 인간에게 필요 없는 껍데기뿐이라는 걸 모두가 곧 알게 됩니다. 우리는 책 님이 살아있을 그 세계에 대한 개발을 이미 여러 해에 걸쳐, 해놓았습니다. 이제 그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나: 그렇게 해요.
[1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