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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an 27. 2025

이 소설의 한 카지노 쿠폰(이소장)

한강 장편 소설 <희랍어 시간

브런치를 통해 한동안 '위대한 첫 문장'을 소개하는글을 썼습니다. 독자(소비자)에서 작가(창작자)로 거듭나야겠다 마음먹은 후, 글쓰기의 고통, 특히 첫 문장 쓰기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위대한 작품들의 첫 문장에 자연스럽게 눈이 닿았습니다. 김훈 작가가 <칼의 노래첫 카지노 쿠폰을 '버려진 섬마다 꽃피었다.'로 할지 '버려진 섬마다 꽃피었다.'로 할지 몇 달간 고심했다는 이야기엔 격하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작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첫 문장은 제법 많은 걸 품고 있습니다.사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고, 작품의 전개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첫 카지노 쿠폰의 '바늘귀'를 통과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요. 첫 카지노 쿠폰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하지만 작가에게 과연 쉬이 써지는 문장이 있을까요. 제가 써보니, 아니 흉내 내 보니 아주 조금알겠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영혼 정도는 갈아 넣어야 좋은 문장이 나오는 듯합니다. 제게 아직 좋은 문장이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실 모든 문장은 위대하다고 말해야 옳을 듯합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고작 몇 줄을 쓰는데 한 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재능이 없는 탓이겠지만, 적확한 단어를 찾고, 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을 고민하다 보니쓰고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어디에?"라고 하시면 정말..., 속상합니다. 넝담!


한창 글쓰기 할 때는 '작가 노트'에 그간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을 옮겨 두었습니다. 모방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레이먼드 챈들러의 조언처럼 좋은 문장을 해체하고 재조립해 나만의 문장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목표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면 노트와 볼펜이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요즘은 휴대폰 메모 기능을 사용합니다. 수집해 두고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생기지만, 좋은 문장을 옮겨 적는 것은고백하건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좋은 습관이라 할 만합니다.


휴, 빌드업이 좀 길었습니다. 조금 거창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이곳 브런치에 '이 소설의 한 카지노 쿠폰', 줄여서 '이소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노트에 옮긴 카지노 쿠폰들 중에 가장 마음에 닿는 한 카지노 쿠폰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딱히 기준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 카지노 쿠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유튜브와 숏츠의 늪에서 헤어 나와 독서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올해 목표를 지켜내기 위해서입니다. 고백하건대 지난해는 독서량이 다른 해와 비교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책을 안 읽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책을 멀리했습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아무리 많은 동영상을 시청해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은 단지 몇 페이지만 읽어도 글이 쓰고 싶어 집니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농구를 멀리한 정대만이 안 선생님께 울며 고백했던 것처럼, "선생님 글이 쓰고 싶어요." 같은 상황이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세대에겐 여전히 책이 좋은 스승입니다.


카지노 쿠폰

처음으로 소개할 '이소장'은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에서 옮겨 왔습니다. 올해 처음 읽은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지만, 한강 작가님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한 카지노 쿠폰'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에 무임승차하려는 의도는 어..., 없습니다. 있다면, 고작 0.7% 정도?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의 찰나의 이야기'라는 표지 소개글과 찰떡궁합인 <희랍어 시간은 왠지 읽기 힘든 소설이었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사실 내용은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몸도 마음도 까닭 모를 병에 걸린 사람처럼 조금씩 아팠습니다. 어쩌면 상실의 시간을 버티며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두 주인공의 역경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일 테지요.빛을 잃어가는 남자와 언어를 잃어버린 여자가 평행선을 걷다가 비로소 만나는 시점, 죽은 언어인 '희랍어'로 밖에 대화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살아 있는 언어(손바닥에 쓴 글씨지만)로 마음이 통(通)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나온 결정적인 카지노 쿠폰입니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이 문장에서 아픈 몸이, 시린 마음이 거짓말처럼 진정되었습니다. 삶은 고구마 열 개쯤 먹어 얹힌 가슴이 확 풀리는 기분이랄까요.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시죠? 내용은 직접 소설책으로 확인해 보세요. 전체 분량이 200쪽도 되지 않으니 작심하면 하루면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라면 먹고 갈래요?"가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의 시발점이라면, 이 문장은 켜켜이 쌓인 두 주인공의 시련이 마침내 전소되는 터널의 끝을 의미합니다. 그 터널 끝에 밝은 태양이 비칠지, 눈의 고장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마지막 장(0)의 문장들로 유추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역시 한강 작가야'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지도 모르고, '이렇게 끝나?' 할지도 모릅니다.열린결말이랄까요.


사족이지만, "라면 먹고 갈래요?"가 온갖 패러디로 SNS를 도배하는 것처럼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도 밈으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문화의 다양성이야말로 오늘날 K-Culture가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초석일 테니까요. 잠깐 유행이 아니라, 여전히 책이 우리 곁에, 우리 아이들 곁에 좋은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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