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근육이 사라졌다.
글쓰기 근육이 퇴화되었다.
태어날 땐 뇌를 가지고 태어난 어린 멍게는 바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바위나 해초에 정착한다. 정착한 멍게는 그때부터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다. 이미 안전한 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뇌를 쓰지 않아도 되니 성채가 된 멍게는 뇌를 홀딱 먹어버린다. 말캉한 속살만 가진채 온 생을 그렇게 바위에 붙어 뇌도 없이 속절없이 살다 도망 한번 못 가보고 잡히면 잡히는 대로 횟집 상위에 발가벗겨진 채로 오르는 것이다. 퇴화되어 버린 멍게는 의지도 없고 생각도 없이 그렇게 남의 손에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쓰지 않으면 인간도 역시 점점 퇴화된다.
글쓰기 역시 그렇다.
운동도 꾸준히 하면 근육도 붙고 동작 하나하나가 처음보다는 훨씬 수월해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다 보면 어느새 글쓰기 근육이 붙기 시작한다. 나의 근육들도 조심씩 살이 올라 붙던 시기도 있었다. 일주일에 1편씩 연재하던 브런치였다. 주당 1편이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글 쓰는 그 순간만큼은 늘 설레고 재미있었다.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구성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스토리를 써 내려가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참 내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 팍팍한 인생살이에서 글쓰기란 유니세프 기부보다 더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내 삶의 산소호흡기 같은 취미였다.취미를 열심히 했더니 감사하게도 '다음'에도 노출이 되고 브런치 메인에도 여러 번 노출이 되었다. 소소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들도 생기도 댓글을 통해 받은 응원들을 자양분 삼아 또 글을 썼다.
프리랜서 생활을 접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니 빡빡한 회사 일정에 치여사는 나는 다시 K 직장인이 되어 버렸다. 새로운 환경 적응과 야근, 업무 스트레스는 주 1회 에세이 작성을 주 2회로 바뀌게 되었고 곧 월 1회로 바뀌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건너뛰는 날이 잦아졌고 결국 어렵게 쌓아 올린 나의 글쓰기 근육은 1년 반 만에 흐물흐물 멍게처럼 되어 버렸다.
이따금씩 글을 쓰고 임시저장을 한 글들도 있지만 끝내 발행되진 못했다. 나만의 나름대로의 기준에 못 미치는 글이라 생각했다. 이러다가 진짜 멍게꼴이 날 판이었다. 글쓰기 근육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심폐소생을 해야 했다.평상시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근육세포들을 깨웠다. 위트 있는 글, 감동적인 글, 술술 잘 읽히는 글, 위로의 글들을 읽으며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 세포들을 깨웠다.
마음은 분주한데 노트북 좌판을 두드리는 손은 더디다. 한 줄 썼다가 표현이 재미없어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러다가 한 편이 완성이 될까 싶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발행이다. 다시 시작이다.
폭삭 늘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