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학생이 되다.
2005년 9월
개강일.
편입이다 보니 거창한 입학식 같은 건 없다. 그래도 오늘은 개강에 맞춰 오픈캠퍼스가 있는 날이다. 쭈뼛쭈뼛 상기된 얼굴로 먼저 학과 사무실을 찾았다. 첫 번째로 만난 교수님은 동네의 흔한 아주머니 같은 인상의 여성이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쓰는 억양이 너무 고급진 상류층의 것이라는 점. 대학에 오니 심지어 학생들도 상류층 억양을 쓰는 아이들이 많다. 맨날 맥도널드에서 흑인아이들에게 런던 슬랭이나 듣던 내 귀가 싸악 정화되는 기분이다. 정확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식 억양은 자꾸만 듣고 싶을 정도로 듣기 좋은 소리다. 나도 얼른 따라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상냥한 표정으로 나와 상담을 이어가던 교수님은 자못 진지하게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지원했던 교육트랙이 지원자 미달로 없어졌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전한다. 지원자가 나 외에 한 명밖에 없어서 전공과 개설이 취소됐다는 것. 그러면 내게 미리 알려줬어야 하지 않나?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다. 우리나라도 일반 학부로 입학한뒤에 전공을 정하듯이 여기서 교육전공을 하겠다고 선택하고 온 터였다. 그런데 그게 없어졌으니 2년 동안 특정 전공 없이 모든 과목을 자유롭게 전부 수강할 수 있다며 그리 나쁜 건 아니라는(?) 회유 아닌 회유가 이어졌다. 잠시잠깐 벙 쪘지만 이미 학비내고 입학한 건데 뭐 어쩌겠냐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복잡한 문제에 컴플레인을 할 만큼 내 영어실력이 따라주지않는다. 그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는 수밖에... 결국 차차 방법을 생각해 보자며 스스로를 설득하기로 했다. 어려운 상황마다 발휘되는 내 특기인 합리화가 힘을 쓴 순간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학과 건물 앞 야트막한 동산에 가보니 학생들이 전부 잔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 이런 게 대학생활이지. 해가 잘 나지 않는 이 도시엔 이렇게 날이 좋으면 다들 일광욕에 정신이 없다. 나도 음료수 하나 집어 들고 그들 틈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한국말. "저기 혹시 한국인이세요?"
앳되보이는한 남자아이가 기대감이 배어 나오는 얼굴로 날 반갑게 쳐다본다. 그는 이 학부의나 말고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느라 휴학 후 올해 복학을 했다는 그 아이는 다른 한국 학생을 만날 줄 꿈에도 몰랐다며 너무 반가워한다. 대뜸 누나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구니 나도 금세 마음을 열게 되었다. 중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홀로 유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아이는 참 해맑았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 그 특유의 치열한 경쟁심리와 독함, 아집, 의심, 눈치 그런 것들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 덕분에 편입생으로서 겪어야 할 좌충우돌의 시간들을 좀 줄일 수 있었다.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학교의 시스템이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려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이렇게 또 좋은 인복 덕을 본다.
그러나 나의 학교 생활은역시나 녹록지 않았다. 일단 카지노 게임 사이트아이들 특유의 경계심으로 낯선 내게 곁을 잘 내주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껏 노동만 하며 배운 내 영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그들의 일상 대화에 참여하기엔 한참 모자랐다. 시험을 준비하며 어려운 단어는 많이 외웠지만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어떻게 끼어들어서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자연스러울지 생각하느라 머리를 한참 굴리다 보면 이미 말을 할 타이밍은 훨씬 지나가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다 가까스로 내뱉는 말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좋은 생각이다'가 전부였다. 그룹프로젝트가 많은 시스템상 아이들과 자주 모여 논의를 해야 했고 그때마다 내 속은 타들어갔다. 무기명으로서로 상대방의 기여점수를 매겨야 하는 그룹프로젝트에선 점수를 잘 받으려면 뭐라도 해야만 했기에 토론 내내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도 했다. 그런 내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건 일단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던어느 날,학교 밖에서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도착할 생각으로 여유 있게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고 있던 참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가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창밖을보는데 아뿔싸! 날 기다리고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헉! 뭐지 이건? 아직 10분이나 남았는데!' 10분쯤 지각은 우습게 생각하는 코리언 타임에 나도 너무 젖어있던 걸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의 시간관념은 한국인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가장 빨리 도착할 것이라고 착각하며한껏 늑장을 부렸던 나는 그 날일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다. 팀에 기여하는 바도 별로 없으면서 그 아이들을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 한참을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댔다. 물론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건만 그 이후로 나는 약속시간에 노이로제가 생겨버렸다. 최소 약속시간 20분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하다. 그리고 정시에 도착하지 못하면서 미리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을배려가 없다며 경멸하게 되었다. 물론 속으로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하루는 교수가 면담 중에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지난번에 왜 수업을 다 마치지도 않고 나갔냐는 꾸짖음에 하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계속 일을 하게 되면 너 분명 제때 졸업하기 힘들 거라며 일을 그만두라며 엄포를 놓는다. 어떻게 풀타임 대학생이 과제할 시간도 모자란데 일주일에 20시간씩 일을 할 수 있겠냐며 말이 안 된다고 힐난한다. 그 순간,주 20시간이 아니라 실제는 40시간을 일하고 있고,일을 그만두는 순간 졸업이 아니라 다음 학기 등록을 못하게 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는 아마도 여느 아시아 유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처럼 나도 분명 집에서 지원을 받는아이라고 생각하고 한 말일 것이다. 홍콩, 일본 등의 아시아 학생들이 몇 명 있었지만 나처럼 일을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일본인 여자아이는 제때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2학년을 2년째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집에서 학비,생활비다받아가며 공부만 하면서도 유급을 할 수 있다는 건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대꾸할 말이 목구멍을 넘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교수실을 나오며 잠을 더 줄여서라고 흠 잡히지 않게 학교생활을 잘 해내리라 다짐했다. 물론 그 후에도 찍힘을 당해서인지 이 교수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웠지만 낙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낸 에세이를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가며매번 'It needs refinement'(개선이 필요함)라고 써서 내 기를 팍팍 죽였을 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친한 그룹이 하나 생겼다는 거다. 언어는같지 않아도 생김이 비슷하다는 친밀감에 아시안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일본 친구 둘, 홍콩 하나, 그리고 중국계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 친구 하나. 어쩌다 공강이 되거나 일을 쉬는 날이면 그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음식도 해 먹고 쇼핑도 하고 못 먹는 맥주도 한잔씩 마시면 그제야 내가 대학생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그 외 시간은 모두 도서관에서 보냈다. 한국과 달리 입학보다 졸업이 어려운 것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대학이다. 그 교수의 저주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려면 내게 캠퍼스의 낭만은 그저 사치로 남아야만 했다.
그렇게 매일 한 손엔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들고 도서관과 강의실, 일터를 오가며 하루를 보낸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할 일로 꽉 찬 나의 삶은 마치 강력한 모터를 단 듯 내 인생을 앞서서 견인해 나간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오늘에 충실한 나를 미래가 배신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