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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an 17. 2025

카지노 게임 물려줄 유산

- 아빠가 말합니다 "지금은 안돼, 토요일 날 어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고릴라』를 처음 본 건 20년도 더 되었습니다.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그림책인데, 아빠가 고릴라인지, 고릴라가 아빠인지 애매모호한 스토리 구성이 독특해서 구입했던 책이지요. 고릴라를 극진히 사랑하는 주인공 한나는 아빠와 동물원에 가는 게 소원입니다. 그러나 워커홀릭 아빠는 딸과 함께 놀 여유가 없지요. 한나의 생일을 앞두고 아빠는 고릴라 인형을 선물하는데, 그날 밤 그 인형이 진짜 고릴라가 되는 굉장한 일이 벌어집니다. 꿈인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고릴라와의 환상 여행으로 끝이 나는 듯한데, 어라? 다음 날 한나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이 그림책은 주인공 바람이 상상에서 현실로 이어져 다행이라는 결론으로,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으니 카지노 게임와함께 읽어도 좋은 이야기에서 그쳤을 뿐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고릴라』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인생 그림책이 될 줄이야...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이 그림책에 처음으로 고릴라를 등장시킵니다. 『고릴라』이후 고릴라와 침팬지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다수 출간하여 ‘고릴라 작가’라는 별칭을 얻게 되지요. 그가 고릴라를 주요 인물로 선택한 까닭은 아버지가 연상되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크고 강하고 제법 사나운 고릴라의 인상을 닮았으나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섬세한 분이며,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부드러운 면을 가진 분이라고 회상하고 있지요.


나는 한나 아빠와 같은 일벌레는 아니며, 그만큼 고고하거나 혹은 차가운 사람은 못됩니다. 단지 결정해야 하는 일이나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여유가 없어 허둥지둥대며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부모로서 카지노 게임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죄책감이마음을 짓누르고 있을 뿐입니다.

『고릴라』가 나의 육아를 되돌아보게 한 육아서이며, 몇 권 안 되는 인생 책으로 손꼽히게 된 연유는 일하는 아빠의 등 뒤에 서 있는 한나의 외로움을 표현한 장면 때문입니다.


어느 날 밤 아이에게 『고릴라』를 읽어주는데, 거기에 나와 내 아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성찰 모드로 진입하게 되었지요.

카지노 게임바쁜 아빠는 한나와 놀 시간이 없습니다


한나 아빠는 등 뒤에서 놀아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지금은 안 돼. 토요일 날 어때?”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아빠는 너무 지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나 아빠와 다름없는 내 모습이 겹쳤습니다.


그날도 아이는 꼬리를 흔들며 주인 곁을 빙빙도는 강아지처럼 일하고 있는 내 책상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내 다리를 잡고 놀다가 펜을 들고 종아리에 낙서도 하고, 내 등에 붙어서 매직펜으로 등짝에 그림도 그렸지요. 고대 그림문자를 닮은 아이의 낙서로 꽉 채운 당시의 수면조끼는 아직도 옷걸이에 고이 걸려 있습니다.

책상 밑에 앉아서 “엄마 다 했어?”를 반복해 묻다가, “조금만 더 기다려줘”하는 내 말이 떨어지면 펜을 들고 책상 아래쪽 벽면에 그림도 그립니다. 그림책 『고릴라』를 볼 때마다 서재에서 아이와 내가 붙어 있던 그 장면이 떠올라 가슴 한 켠 먹먹해 집니다. 아이 나이 네 살, 그 겨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년까지 직장에 다니셨던 친정 어머니는 아침 식사 때면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식탁 앞에 서서 밥을 드셨습니다. 밥 한 술 후딱 해치우고 자식들이 밥 먹을 동안 주방 정리로, 출근 준비로 종종 거리셨지요. 그걸 보면서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로 서서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서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허걱, 이거 내가 하지 않겠다고 하던 그거 아닌가.’ 그 순간 어쩌면 이 모습을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카지노 게임를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다짐만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육아를 되돌아보게 한 『고릴라』는 다행히 해피앤딩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서서 밥 한 술 뜨는 것을 빼면 내게 좋은 것들을 많이 물려주셨습니다. 도자기와 유기, 꽃 나무와 친숙하도록 해 주셨고, 미술관 나들이를 자주 하여 명화를 감상할 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나도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 유산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분명 가치 있는 것으로 하나쯤 있을 거라는 용기를 내봅니다.


#한줄요약 : 우리의 뇌는 좋은 것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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